[서울=뉴스핌] 김은빈 기자 = 미국과 중국이 사이버 공간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고 4일 아사히신문이 보도했다.
정부가 나서서 인터넷을 통제하는 중국과 달리 미국은 유럽과도 발걸음이 엇갈리는 상황이라 인터넷 거버넌스(Internet governance) 구축에 있어서 "미국이 뒤쳐지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 '돈보따리' 들고 제3국 포섭하는 中
지난해 12월 중국 저장(浙江)성에서 정부 등이 연 '세계 인터넷 대회'에는 미국 애플사의 팀 쿡 최고경영자(CEO) 등 저명한 인사들이 모였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축전에서 "인터넷 발전은 각국의 주권·안전에 새로운 도전을 초래한다"고 말했다.
신문은 "글로벌 인터넷 거버넌스가 변혁기에 들어갔다는 인식을 드러냈다"고 짚었다.
이 대회에는 브룬디, 에티오피아, 짐바브웨 등 아프리카 국가들의 정보통신담당 정부 간부들이 파견됐다. 시진핑의 싱크탱크로 불리는 당 최고지도부 멤버 왕후닝(王滬寧)은 대회에 태국 부주석에 "인터넷 거버넌스의 체계를 함께 구축하고 싶다"고 요청하기도 했다.
아담 시걸 미국외교협회(Council on Foreign Relations) 디지털 및 사이버 프로그램 이사는 인터넷 공간에서 국제질서 구축을 둘러싼 경쟁에 대해 "미국과 중국이 직접 부딪치고 있다기 보다는, 제3국을 어떻게 포섭할 것인지가 관건인 경쟁"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은 '일대일로' 구상을 통해 IT 인프라개발에도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중국의 IT기업으로부터 경찰용 특수카메라를 구입했다. 에티오피아나 케냐, 브라질의 치안기관은 중국의 안면인식 시스템을 도입하려고 하고 있다.
◆ 美·유럽, '개인정보 보호'서 엇갈려
미국은 일본 등 30개국과 함께 '자유 온라인 연합'을 구성해 중국식 거버넌스를 견제하고 있다. 하지만 시걸 이사는 "보고서를 내는 게 전부인 연합과 달리 중국은 돈을 앞세우고 있다"며 "미국은 뒤쳐지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미국과 유럽의 발걸음이 엇갈리고 있다는 점도 한몫한다. 유럽연합(EU) 회원국 등 유럽 31개국은 지난 5월 개인정보보호규정(GDPR)을 도입했다. GDPR은 이들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의 이름·이메일 주소 등 개인정보를 본인 동의 없이 EU 역외로 유출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한 규정이다.
신문은 "GDPR은 세계에서 가장 엄격하다는 평가를 받는 규제"라고 표했다. 이 규제를 위반할 경우 최고 2000만유로(약 250억원)나 연간 매출의 4%를 과징금으로 물어야 한다.
유럽이 강력한 규제를 도입한 배경에는 '위기감'이 있다. 에드워드 스노든 사건 이후 EU는 "시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대책들이 거의 행해지지 않고 있다"며 규제강화를 요구했다. 여기에 페이스북이 보유한 개인정보가 영국 선거 컨설턴트 회사에 유출됐다는 의혹도 부상하며 경계감이 커졌다.
유럽 측은 개인정보에 있어서 미국 정부에 대한 불신을 드러낸다. GDPR을 추진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인권을 지켜야 할 미국 정부가 기업에 너무 우호적"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중국에 대해서도 "과도하게 중앙집권적"이라며 "우리들과는 가치관이 다르다"고 평했다.
신문은 "유럽은 미국이나 중국과 다른 길인 '유럽모델'을 모색하고 있다는 뜻"이라며 "유럽과 미국의 발이 엉키는 사이 이를 곁눈질하는 중국이 존재감을 키우면서 인터넷 거버넌스 구축을 둘러싼 경쟁이 점점 더 혼돈스러워지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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