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A 전화인터뷰서 말레이 회동 설명…"北, 핵개발 정당성 주장"
[뉴스핌=이영태 기자] 미국 전직 관리들이 지난 21~22일 북한 외무성 관계자들과 가진 말레이시아 회동에서 2005년 9·19 공동성명의 이행을 제안한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은 미국의 '적대시 정책'을 거론하며 핵무기 개발이 자위적 목적이라는 주장을 반복했다.
조지프 디트라니(왼쪽) 전 미국 국가정보국장(DNI) 산하 비확산센터 소장 등 미측 전직 정관계인사들이 지난 2월15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을 만나 면담하고 있다.<사진=뉴시스> |
미국의소리(VOA) 방송은 25일 "조셉 디트라니 전 미국 6자회담 차석대표가 이번 접촉에서 북한이 2005년 6자회담에서 합의한 9·19 공동성명으로 돌아갈 의지가 있는지 알아보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디트라니 전 차석대표는 전날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지난 21일부터 이틀간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북한 외교관들과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탐색적' 대화를 진행했다"며 "9·19 공동성명은 비핵화, 그리고 북한과의 보다 정상적 관계 수립 절차를 담은 포괄적 합의였던 만큼, 북한 대표들과 성명 문구를 되짚어가며 이행 가능성을 타진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회동에서 미국 측 인사들은 북한 측에 핵무기 프로그램과 미사일 발사 중단, 긴장 완화 필요성 등에 대해 얘기했다며 "다만 이번 대화에서는 그런 방향을 검토하면서, 완전하고 검증가능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타협점(middle ground)을 찾는 데 무게를 뒀던 만큼, 보다 구체적 논의 단계까지 간 것은 아니었다"고 선을 그었다.
아울러 "북한 대표들은 안보관련 우려를 표명하면서, 특히 미-한 연합군사훈련에 대해 크게 우려했다"며 "미국과 한국을 북한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고,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은 이에 대한 억제력 확보 차원이라는 오래된 입장을 되풀이했다"고 전했다.
이번 북미 회동의 성격을 민간차원의 '트랙2' 접촉으로 규정한 디트라니 전 차석대표는 "미국 인사들이 북한에 제안할 목록을 갖고 있었지만 미국의 정부 부처들과 이에 대해 사전 협의하거나 의견을 교환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가 이번 회동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그 이상은 개입하지 않았고, 전직 관리들이 정부의 메시지를 들고 가지도 않았다는 설명이다.
그는 또 "미국 정부가 이번 회동에 대한 공식 보고를 요청하진 않았지만 참석자들이 정부 내 인맥을 통해 접촉 결과를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디트라니 전 차석대표는 이번 회동이 한국을 배제한 채 북한과 관여하려는 시도일 수 있다는 일각의 관측을 일축하고 "한때 북한 문제에 관여했던 전직 관리 출신 학자들이 한반도 문제에 대해 큰 우려를 갖고 북한 측과 마주 앉은 것 뿐"이라면서 "'반관반민'이나 민간 대화에서 중요한 점은 마주 앉아 대화를 통해 서로의 의지를 탐색해 보는 것이고, 이런 과정을 거치며 신뢰를 쌓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 접촉을 통해 미국은 북한의 주장과 달리 '대북 적대시정책'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 북한에 전달되기 바란다"며 "이런 대화에서 무엇이 성과인지를 정확히 측정하기 어렵지만, 양측이 매우 솔직한 대화를 통해 서로의 필요와 요구 사안을 들은 뒤 유연성을 발휘할 여지는 없는지 알아보려는 시도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말레이시아 북미 회동에는 디트라니 전 차석대표 외에 로버트 갈루치 전 북 핵 특사와 리언 시걸 사회과학원 동북아안보협력 프로젝트 국장이 미국 측 대표로 참가해 북한의 한성렬 외무성 부상과 장일훈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차석대사 등을 만났다.
[뉴스핌 Newspim] 이영태 기자 (medialyt@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