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안 먹혀..연기금부터 헤지펀드까지 '사자'
[뉴욕 = 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헤지펀드부터 자산운용사까지 선물옵션 시장에서 엔화 상승 베팅이 가열되고 있다.
일본은행(BOJ)의 통화정책 회의 결과 발표를 하루 앞둔 가운데 투자자들은 정책자들이 내놓는 카드와 무관하게 엔화가 상승할 것으로 장담하는 모습이다.
이는 BOJ의 부양책을 사실상 실패로 평가한 것으로, 정책 행보가 외환시장과 투자자들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평가가 정책자들의 보폭을 제한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엔화 <출처=블룸버그통신> |
27일(현지시각)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에 따르면 자산운용사의 엔화 상승 포지션이 약 4만 계약으로, 하락 포지션과 같은 수준을 기록했다.
지난해 말 하락 베팅이 상승 포지션에 비해 6만계약 웃돌았던 것과 커다란 대조를 이루는 모습이다. 올들어 하락 베팅이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 반면 상승 포지션이 두 배 늘어난 셈이다.
헤지펀드를 포함한 투기거래자들의 엔화 포지션은 이미 연초 상승 베팅이 하락 베팅을 앞지르며 역전을 이룬 데 이어 격차가 가파르게 확대되고 있다.
이날 업계에 따르면 상승 포지션이 8만계약을 넘어선 반면 하락 포지션은 4만 계약으로 떨어졌다.
이번 회의에서 BOJ가 또 한 차례 과격한 통화완화 정책을 내놓을 것이라는 기대가 번지고 있지만 투자자들의 엔화 상승 전망은 오히려 고조되는 상황이다.
이달 들어 엔화는 달러화에 대해 18개월래 최고치를 찍은 뒤 완만하게 밀렸다. 투자자들 사이에 111엔 선에서 거래되는 달러/엔 환율이 100엔 선까지 밀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상태다.
앨런 즐래터 본토벨 애셋 매니지먼트 멀티애셋 헤드는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인터뷰에서 “일본의 경상수지 흑자가 높아지고 있어 BOJ의 통화완화 정책의 효과가 희석되면서 엔화가 상승 탄력을 받고 있다”며 “엔화는 앞으로 상승 강도를 더욱 높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엔화 상승을 점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운용사는 물론이고 연기금과 보험사 등 장기 투자자들의 엔화 매입이 날로 늘어나고 있다고 업계 관계자는 전했다.
일부 투자자들은 엔화 강세에 대한 시장의 기대가 오히려 BOJ의 비전통적 통화정책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시장의 힘에 의해 엔화가 정책 의도와 상반된 방향으로 움직일 경우 결국 정책자들이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다만, 일본 국내 투자자들의 해외 자산 매입이 늘어날 경우 엔화 상승에 제동이 걸릴 수 있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 3월 일본 투자자들의 해외 금융 자산 매입이 5조8000억엔(522억달러)에 달했다. 이는 최소 10년래 최대 규모에 해당한다.
이들의 해외 투자가 늘어날 경우 엔화 매도 및 달러 매수가 증가해 엔화 상승이 제한될 수 있다.
[뉴스핌 Newspim] 황숙혜 뉴욕 특파원 (higrac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