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2000년대 이후 수요 측면이 유가 변동에 크게 기여"
[뉴스핌=정연주 기자] 최근 저유가가 경제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향후 이같은 전개가 지속될 가능성이 있어 국제유가 근본 동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은행이 15일 발표한 '저유가의 성장에 대한 영향 점검' 자료에 따르면 수급요인별로 유가하락의 경제적 영향을 실증분석한 결과 "최근 저유가의 긍정적인 영향이 가시화되지 않는 것은 글로벌 수요부진이 유가하락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 데 기인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자료제공=한국은행> |
보고서는 평균 60달러 이하 수준의 저유가 상황이 지속되고 있으나 경기흐름의 개선이 가시화되고 있지 않은 점에 주목했다.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평균 두바이유가는 배럴당 54.6달러로 집계됐다.
과거 1970년대 석유파동 경험을 토대로 보면 유가변동이 다양한 파급경로로 분명한 영향을 미쳤으나 최근에는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실제 2000년대 중반에는 유가가 큰 폭으로 상승해 실물경제에 부정적인 영향(bad shock)을 줄 것으로 예상됐으나 세계경제는 성장세를 보였다.
따라서 보고서는 우리 경제의 제반 여건을 과거 유가 급락기와 비교해 최근 저유가의 긍정적인 영향이 가시화되지 않은 원인을 살펴봤다. 우선 일반적인 국제유가 하락은 대외부문의 외생적인 충격으로 국내 경제성장에 대한 영향이 긍정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예를 들어 국내물가 경로 측면에서 유가 하락은 수입단가와 함께 국내물가를 하락시켜 실질소득의 증가를 통한 소비 증가를 도모하고 이자율의 하락(피셔효과)을 통한 소비 및 투자를 증가시킨다. 또 수출단가의 하락을 통한 수출 증가 등 경제성장을 제고할 수 있다.
그러나 국제유가의 하락이 세계경제 성장세의 부진으로 나타난 내생적인 현상인 경우에는 경제성장에 대한 영향이 불분명할 소지가 있다는 분석이다.
방홍기 한은 조사총괄팀 과장은 "유가하락이 국내물가 경로 등을 통해 미치는 간접적·내생적인 영향과 세계경제 성장세 부진의 직접적·외생적 영향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작용했다"며 "국제유가 하락이 경제성장에 최종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유가하락의 근본 요인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으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이에 현재 지난해 하반기 이후 54.5% 하락한 현재와 비슷한 수준의 낙폭을 보인 1990년대 초반 걸프전(-51.6%), 2008년에는 글로벌 금융위기(-68.8%)당시를 분석해 본 결과 2000년대 이후 유가 하락이 과거처럼 공급 요인이 아닌 수요 요인이 주 원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국제유가 하락의 절반 또는 그 이상이 수요 요인에 기인한다고 평가했다.
방 과장은 "유가변동이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은 유가변동 자체와 더불어 그 변동을 둘러싼 제반 경제여건에 따라 다를 가능성이 있다"며 "국제원자재가격은 2000년대 들어 상당히 높은 수준의 공행성을 지속하고 있는데 이는 국제원자재가격이 각 원자재시장의 요인보다는 공통의 수요 요인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자료제공=한국은행> |
우리나라의 경우 1980년대 중반에는 견실한 세계경제 성장세를 바탕으로 우리경제에 대한 대외 수요여건이 우호적인 가운데 원유공급 증대로 유가가 하락하면서 저유가의 긍정적인 영향이 나타났다.
그러나 2008년과 최근에는 유가하락이 수요 요인에도 상당 부분 기인함에 따라 대외 수요여건의 부진이 저유가의 긍정적 효과를 상쇄하는 것으로 분석됐다.더불어 최근에는 유가하락에 따른 원유수출국의 경제상황 악화로 해당 국가들에 대한 수출도 부진하며, 불확실성 증대로 투자 등 내수의 본격적인 회복이 지연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보고서는 2000년대 이후 유가변동의 요인에 대한 충격분해를 실시한 결과 최근의 유가하락은 글로벌 수요 감소의 영향에 상당 부분 기인하며 원유 공급충격은 과거에 비해 변동성이 축소된 가운데 유가에 미치는 영향도 작아진 것으로 분석됐다.
방 과장은 "그 결과 글로벌 수요 감소에 따른 유가하락 충격은 GDP성장률의 하락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GDP성장률에 대한 글로벌 수요의 직접적·외생적 영향이 유가변동을 통한 간접적·내생적 영향을 상쇄 내지 압도한 결과로 최근의 연구결과와 부합한다"고 말했다.
이어 "반면 원유시장 공급 증가에 기인한 유가하락 충격은 GDP성장률의 상승으로 이어졌다"며 "유가하락 충격의 원인이 수요와 공급으로 복합적일 경우에는 저유가에도 불구하고 경제성장에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못할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세계여건이 부진하고 변동성이 커진 최근의 글로벌 환경 속에서 국제유가의 동인 원인을 근본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향후에도 국제유가의 하락이 글로벌 수요 요인에 크게 영향을 받는 경우 유가하락의 경제성장에 대한 긍정적인 영향이 뚜렷하게나타나지 않을 가능성이 있어서다.
방 과장은 "향후 수요와 공급요인이 어떻게 작용할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물론 유가 하락이 경제 성장에 긍정적인 것은 맞지만 수요 저조로 인한 부정적인 요인이 상쇄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다만 수요요인이 지속적으로 작용할 시에는 경제성장에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정연주 기자 (jyj8@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