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최헌규 중국전문기자] 영화 부용진(芙蓉镇 푸롱전)은 이 영화 제작 25년뒤 나온 ‘5일의 마중’과 마찬가지로 중국 현대사의 비극 문화대혁명(문혁)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겉으로 볼 때 두 영화는 공통적으로 중국 인민들이 겪어낸 문혁이란 혹독한 정치적 시련을 그리고 있지만 이를 다루는 관점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우선 영화 ‘부용진’에서는 문혁이 끝나면서 새시대가 밝아오고, 사회와 인민들의 일상은 모두 제자리로 돌아간다. 이와 달리 ‘5일의 마중’에서 문화대혁명은 두고 두고 사람들에게 떨쳐내기 힘든 상처를 가져다 주었다. 문혁이 끝나고 개혁개방시대가 도래했음에도 인민들은 여전히 고통과 좌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또 부용진은 문혁을 현재와 동떨어진 과거의 어느 역사적 순간으로 치부하는데 비해 5일의 마중은 광기의 문혁이 남긴 파장을 그다지 동떨어지지 않은 과거사로 조명해보이고 있다. 부용진이 문혁시대 인민들의 삶을 두리뭉실한 풍경화로 묘사했다면 5일의 마중은 당대 사람들의 깊숙한 내면을 현미경처럼 세밀하게 들여다본 것 같다는 느낌이다.
시대적으로 영화 부용진은 대약진(1958년~1960년) 실패로 1961년 무렵 류샤오치(劉少奇)와 덩샤오핑(鄧小平)의 실용주의 파가 득세하면서 자영업이 다시 허용된 시점에서 시작된다. 1963년 주인공 호옥음은 장터에서 쌀국수 가계를 운영하며 행복한 소시민 생활의 꿈을 키워간다. 공유화와 집단화의 퇴조로 자영업을 하게되면서 장터에는 활기가 넘치고 쌀국수 장사를 해 번 돈으로 호옥음은 번듯한 집도 한재 장만한다.
하지만 마오쩌둥의 반격이 시작되면서 실용주의가 후퇴하고 다시 예전의 좌편향 이데올로기가 활개를 친다. 1950년대 반우파 반주자파 운동이 다시 기승을 부리고 부용진 마을에도 공무당의 이 반장(이국향) 같은 문혁앞잡이가 들어오면서 ‘혁명’의 붉은 기운이 스며든다. 생산활동과 효율, 시장, 자본, 사적소유는 모두 반동의 산물이다. 주인공 호옥음은 화의 근원인 돈을 감추지만 이는 또다른 재앙을 부르고 혼란속에 남편을 잃고 만다.
1966년 마침내 10년 문화대혁명이 발발하면서 부용진 거리는 ‘자본주의를 추종하는 주자파’ 호옥음과 반역자 진숙전, 곡물상인 곡연산 등을 처단하라는 구호로 들끓는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은 이웃을 음해하고 친지마저 반동으로 고발한다. 농사꾼과 노동자만이 당당히 대로를 활보할 수 있는 ‘진골신분’이며, 빨간 수첩의 마오쩌퉁 어록이야말로 화를 면하는 복음이다.
호옥음과 진숙전에게는 네가지 구악을 쓸어버리라는 4구 청산의 의미로 거리 청소의 처벌이 내려진다. 미망인 호옥음과 교사출신의 반동분자 진숙전은 매일 아침 함께 거리 청소를 하던 도중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진숙전은 호옥음과 결합을 위해 죄를 인정하는 자술서와 혼인 허가서를 제출한다. 당 기관은 결혼을 승락할 생각은 않고 당 허락전 두사람이 육체 관계를 가졌는지를 캐물으며 탄압을 일삼는다.
진숙전은 “닭과 개도 자유롭게 짝짓기를 하는데 사람 세상에서 사랑하는 연인끼리 맘놓고 결혼도 할 수 없는 세태”라며 한탄한다. ‘사상이 불순한’ 진숙전은 노동개조소 10년 유배에 처해진다. 호옥음은 난산 끝에 호옥음의 아이를 출산하는데 위험을 무릅쓰고 출산을 도와준 곡연산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곡씨 성을 붙인다.
1978년 세상이 바뀌고 개혁개방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영화 부용진이 그리는 바에 따르면 문혁직후 인민생활의 모든 것은 문혁 이전의 원래 상태로 회복됐다. 노동개조소로 쫓겨갔던 진숙전이 돌아왔고 압수당한 집도, 빼앗겼던 1500위안도 모두 돌려받았다. 이숙향에게도 진숙전은 이제 타도의 대상이 아니라 존귀한 신분인 ‘동지’가 됐다. 금수처럼 비천하지도 않고 더이상 반동분자도 아닌 온전한 사람의 모습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개인 상업활동, 즉 개체호(個體戶) 자영업이 허용되면서 호옥음은 다시 ‘호씨 쌀국수 상점’을 열어 개혁개방으로 빛나는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 대열에 합류했다. 다만 중국은 부용진이 만들어진 1988년만 해도 쉽게 문혁을 얘기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었다. 4반세기후 문혁 영화 5일의 마중과 비교할 때 문화대혁명에 대한 중국사회의 집단적 기억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를 더하는 영화다.
[뉴스핌 Newspim] 최헌규 중국전문기자 (chk@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