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 환변동보험 늘지 않고, 은행 대출과 환관리로 대응
[편집자] 은행권이 엔저(底) 쇼크로 고통받고 있는 중소 수출기업의 구원투수로 나서며, 생존권 방어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조사 결과 거래 시 감내할 수 있는 100엔/원 환율인 ‘924원’보다 더 떨어져 904원(15일)까지 되자, 은행들의 대출과 외환관리 노하우가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정부가 지난해 내놓은 1차 엔저대책의 핵심인 환변동위험보험 가입 촉진책이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민간금융이 큰 역할을 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과정에서 은행도 우량 중소기업을 고객으로 확보하고 수출관련 금융서비스가 발전하는 계기로 삼고 있다. 엔저에 은행권과 중소 수출기업이 공동으로 대응하는 상생 노력을 총 5회에 걸쳐 소개한다.
[뉴스핌=한기진 최영수 기자] # 일본에 자동차 액슬(차축) 부품을 수출하는 부산 소재 A 사는 “엔화 값이 워낙 떨어지자 일본 자동차 제조회사들이 자국 내 협력업체로 갈아타면서 수출에 타격이 크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리어액슬 단가를 5만원에서 3만원으로 깎아올 것을 요구했는데, 들어줄 수가 없어 바이어를 잃었다는 것이다.
이 회사 재무담당 김모 부장은 “단가인하를 요구받는데 정부의 환변동보험은 소용이 없었고 당장 급한 것은 회사의 급한불을 끌 수 있는 자금이었다"면서 “다행히 은행이 엔저 피해기업용이라며 시설자금을 2%대로 대출해줘서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엔저로 고통받고 있는 중소 수출기업들의 현안으로 자금난 해소와 환관리가 떠오르면서 은행권의 특별대출과 환관리 노하우 제공이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반면 정부가 엔저대책으로 내놓은 환변동보험은 기업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8일 한국무역보험공사에 따르면 올해 엔화표시 환변동보험 가입 실적은 12일 현재 641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728억원에 못 미쳤다.
무역보험공사 관계자는 “3~4월 들어 원/엔환율이 급격히 하락하면서 저점이라는 인식으로 반등 기대심리가 작용해 환헤지 수요가 감소했지만 5월에는 엔화변동성이 확대되면서 청약수요가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5월 가입규모가 156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 52억원보다 3배나 증가하는 등 긍정적 신호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금융권은 기본적으로 수출중소기업들이 엔화 결제보다 달러 결제를 늘리는 식으로 대처한다고 보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일본에 수출해도 결제통화는 미 달러화가 많고, 최근에는 엔화가 약세이다 보니 가능한 한 달러화를 요구하는 일이 늘어, 엔저 손실을 막을 환보험에 가입하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민간부문에서 협력은 강화되고 있다. 엔저 피해를 당한 기업에 금리를 내려주면서 대출이 늘어나고 있다. 부산의 A사가 이용한 것도 우리은행이 제공하는 담보 신용대출로 금리가 연 2.82%(6월 10일 기준)로 금리가 가장 낮은 주택담보대출 수준이다. 1년간 수출실적이 50만달러 이상이면 이용할 수 있다.
대출 말고도 수출 대금을 떼일 것에 대비한 수출대금회수위험 방지 단체보험 등의 인기가 많다. 원래는 보증서 발행 금융비용이 많이 들지만, 은행이 지원해주면서 문턱이 낮아졌다. 외환은행의 경우 2013년에는 2000개, 2014년에는 4400개 거래 중소기업이 이 서비스를 이용했다.
정부도 이런 현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달 내놓을 2차 엔저대책은 금융지원책보다 달러를 국외로 퍼내 원저를 유도하는 외환대책으로 알려졌다. 우리 기업의 해외직접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 해외직접투자 사전신고액(50만달러 이상)을 상향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행 외국환거래법상 해외직접투자 시 50만달러 미만의 경우 사후보고만 하면 되지만 50만달러 이상은 주거래은행에 사전신고를 해야 한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해외직접투자 사전신고기준을 상향 조정할 경우 기업들이 대규모 투자를 보다 신속하게 결정할 수 있게 된다"면서도 "동시에 해외 도피수단으로 악용될 우려도 있는 만큼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뉴스핌 Newspim] 한기진 기자 (hkj7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