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소심서 징역 10월·집행유예 2년 선고받아…박창진ㆍ김도희 민사소송 촉각
[뉴스핌=정경환 기자]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구속 수감된 지 143일 만이다.
22일 서울고등법원 제6형사부(재판장 김상환) 심리로 열린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재판부는 항로 변경에 대해 무죄로 판단, 조 전 부사장에 대해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로써 조 전 부사장은 지난해 12월 30일 구속 수감된 후 약 5개월 만에 석방, 가정으로 돌아가게 됐다.
◆ 최대 쟁점 항로 변경 혐의 '무죄'
항소심 재판부는 가장 큰 쟁점이었던 항로 변경 혐의에 대해 원심과는 달리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항로의 사전적 의미는 항공기가 통행하는 공로로, 항공보안법 등에 별도의 정의가 없다"며 "입법자가 달리 뚜렷한 의미를 제시하지 않는 한 문헌의 가능한 범위 내에서 해석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램프리턴 발생 계류장은 자체 동력이 아닌 토잉카에 의해, 비교적 자유롭게 이동하는 곳으로서 이를 항로로 볼 수 없다"며 "항로의 의미에 공로뿐만 아니라 계류장에서의 이동도 포함하는 것은 법규를 지나치게 확장,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난다"고 강조했다.
다만, 항로 변경을 제외하고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항공기안전운항저해 폭행, 업무방해, 강요 혐의에 대해서는 원심의 판단을 유지했다.
재판부는 "항공기안전운전저해 폭행, 업무 방해, 강요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한다"면서 "매우 부적절한 행위이긴 하나, 피고인은 당시 자신의 지위, 업무 등에 따른 정당한 행위라고 생각한 듯하다"고 언급했다.
1심에서 무죄로 판단한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혐의에 대해서는 원심의 판단을 수긍, 이 부분 검찰의 항소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국토부 조사 결과가 검찰 수사 결과에 다소 못 미쳤다 하더라도 국토부가 나름 조사한 것을 바탕으로 형사 고발까지 한 이상 국토부의 조사 업무가 실질적으로 방해됐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설령 방해됐다 해도 그것이 조 전 부사장과 여 모 전 상무의 위계행위에 의한 것이라고 보긴 어렵다"며 "국토부가 조 전 부사장의 항공기 내 폭언 등의 사실관계를 밝혀내지 못한 것은 불충분한 조사에 의한 것이지 조 전 부사장 등의 허위 진술 때문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 범죄 인식 여부, 개전의 정 등 참작
범죄 혐의에 대한 유죄 여부 판단과 더불어 조 전 부사장 개인의 사정도 양형에 고려됐다.
재판부는 양형 이유에서 "행위에 대한 비난가능성 외에 범죄 행위 자체에 대한 비난가능성도 따져봐야 한다"며 "비교적 안전한 계류장에서 토잉카에 의해 22초간 17미터 움직였을 뿐이고, 사무장이 내린 뒤에도 최소 승무원 수를 충족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피고인의 범죄 행위로 인한 위험이 객관적으로 보아 비교적 경미한 것으로 보이고, 유형력 행사도 비교적 경미하다"고 했다.
개전의 정도 참작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피해승무원의 잘못을 탓했을 뿐, 자신의 행위에 대한 범죄성을 깨닫지 못했다"며 "1, 2심 받는 동안, 이 사회 가장 낮은 곳에서 5개월 가까이 구금생활 하면서 진지하게 성찰하고 반성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했다.
또한, "피고인은 범행 전력이 없고, 어린 자녀를 둔 어머니"라며 "큰 비난 받을 범죄 행위를 한 것은 맞지만, 새 삶을 살아갈 한 번의 기회마저 외면할 정도는 아니라면 이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박창진 사무장 등 피해자들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박 사무장 등 피해자들에게 용서 못 받은 것은 불리하나, 금전 공탁 이후에도 피해자들에게 사죄 의사를 밝히고 있고, 용서받고자 나름 노력하고 또 앞으로도 성실히 응하겠다고 거듭 밝히고 있다"며 "피해자의 정신 및 재산상의 손해도 회복 가능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날 조 전 부사장은 살이 많이 빠진 모습이었지만, 비교적 여유가 있어 보이는 표정으로 법정에 출두해 재판에 임했다.
▲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22일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석방됐다. <사진=뉴시스> |
◆ 여 모 전 상무도 집행유예, 김 모 전 감독관은 무죄
아울러 항소심 재판부는 이날 조 전 부사장과 함께 재판을 받은 여 모 전 대한항공 상무에게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김 모 전 국토부 감독관에게는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여 전 대한항공 상무에 대해 "아직 박창진 사무장으로부터 용서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검찰 수사 때까지도 아래 팀장들을 움직여 조사를 방해한 점 등 비난가능성도 높다"고 말했다.
다만, 재판부는 "피고인의 그 같은 행위는 회사의 엄격한 상하관계, 경직된 조직문화 때문으로 볼 수 있다"며 "상사인 조 전 부사장의 잘못을 드러내는 경위서 등을 작성하게 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어 "피고인은 당시 박 사무장 등 승무원을 해당 항공기에 배정한 당사자로서 인간적인 미안함이 있었던 것 같고, 그들이 추가 징계를 받지 않도록 노력한 점도 보인다"며 "연로한 노모와 미성년인 두 자녀를 둔 상황까지 고려하면 오히려 징역 8월 실형은 지나치게 무겁다"고 덧붙였다.
김 모 전 국토부 감독관의 공무상비밀누설 혐의에 대해서는 원심을 뒤집어 무죄 선고를 내렸다.
재판부는 "전후 사정, 사실관계로 따져봐도 피고인이 유죄라는 확신에 이르지 않는다"면서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또한, "여 모 전 상무의 진술 내용 등과 여 모 전 상무가 국토부 조사결과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감안했을 때, 피고인이 조사결과를 알려준 것이라기보다 조사결과에 대한 피고인 자신의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대한항공 객실안전팀 부장으로부터 조사결과를 알려달라는 간곡한 사정에도 피고인은 이에 불응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토부 향후 조사계획 누설 부분은 원심과 마찬가지로 이미 공개된 것으로서 비밀이 아닌 것으로 인정된다"면서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로서, 무죄다"라고 판시했다.
◆ 형사 일단락, 거액 민사소송 남았다
이날 항소심 선고로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에 대한 형사소송은 일단락되는 모양새다. 다만, 아직 상고 가능성이 남아 있으므로 단정할 순 없다.
지난해 12월 5일 미국 뉴욕 JFK공항에서 인천으로 향하는 KE086편 항공기에 탑승한 조 전 부사장은 마카다미아 서비스 방식이 매뉴얼과 다르다며 사무장과 승무원을 강하게 질책했다. 동시에 이륙을 위해 활주로로 향하던 항공기를 갑자기 탑승 게이트로 돌려, 탑승하고 있던 사무장을 기내에서 내리게 한 후 다시 출발케 했다.
이 일이 알려지면서 국내외에서 비난 여론이 들끓었고, 이에 검찰과 법원은 속전속결로 수사와 재판을 진행했다.
지난해 12월 30일 조 전 부사장을 구속 수감한 검찰은 1심에서 조 전 부사장에 대해 징역 3년을 구형했고, 1심 재판부는 항로 변경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이에 조 전 부사장 측과 검찰 측은 모두 항소, 검찰은 다시 징역 3년을 구형했고, 이날 항소심 재판부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며 재판을 마무리지었다.
이제 여론의 관심은 김도희 승무원과 박창진 사무장이 미국에서 추진 중인 민사소송에 모아질 전망이다.
'땅콩 회항' 사건 당시 조 전 부사장에게 마카다미아를 서비스했던 당사자인 김 승무원은 지난 3월 미국에서 조 전 부사장과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한항공은 현재 변호인 선임계를 해당 법원에 제출한 상태다.
김 승무원은 항소심 선고를 며칠 앞둔 지난 주말 조 전 부사장을 엄벌에 처해 달라는 탄원서를 재판부에 제출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 승무원에 이어 지난달에는 박창진 사무장도 미국 뉴욕에서 500억원 대 규모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기 위해 변호사들과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변호사는 "항로 변경이 사무장이나 승무원의 피해와는 별 관계가 없는 것으로 보이고, 폭행이나 강요 등의 기본적인 사실관계는 변함이 없어, 이번 형사소송 결과가 손해배상소송에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 같다"면서도 "무죄 판단이 추가된 것 등을 고려하면 배상액 산정 등에서 조 전 부사장 측에 조금 유리하게 작용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뉴스핌 Newspim] 정경환 기자 (hoa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