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규제기요틴'서 한의사도 현대의료기기 사용 추진
[뉴스핌=김지나 기자] 한의사에게 엑스레이, 초음파 등 현대 의료기기 허용 여부를 놓고 한의사와 의사간에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가 지난달 28일 규제기요틴(단두대) 민관합동 회의를 열고 한의사들의 현대 의료기기 허용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빚어진 밥그릇 싸움이다.
대한한의사협회는 14일 오전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의사가 진단의 정확성과 진료 과정에서 환자의 예후를 정확히 관찰하기 위해서는 과학적 진단장비의 활용이 우선돼야 한다”고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 당위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서양의학을 전공한 의사들은 ‘한의사의 현대의료 기기 사용은 무면허 의료행위’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의사들을 대변하는 대한의사협회 추무진 회장도 이날 같은 시각,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에 방문해 항의 표시로 입장을 전했다.
◆ 한의사, 더 정확한 진단 위해 현대의료기기 사용해야
김필건 한의사 협회 회장은 “한의사가 한의의료행위를 하면서 환자를 더 정확하게 진단하고, 치료 후 예후와 경과를 관찰하는데 있어 기기의 사용에 제한을 받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다”고 포문을 열었다.
한의사들에 따르면 한의의료기관이 다루는 대표적인 질환 하나가 발목을 삐었을 때다. 발목 염좌는 한의의료기관에 내원하는 환자들 중 네 번째로 높은 다빈도 질환이자 연 425만건의 진료가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현재 한의사들은 엑스레이(X-ray)를 사용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김 회장은 “한의사는 아픈 다리를 이끌고 내원한 환자의 골절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양방병의원에 보내고 이분들이 다시 한의원에 내원하고 있는 불편이 발생되고 있다”고 말했다.
환자는 아픈 다리를 끌고 병원을 왔다갔다 고생할 뿐 아니라 진료비도 이중으로 부담하고 있고, 건강보험재정 역시 이중으로 낭비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6년의 한의대 및 의대 교과과정은 커리큘럼 75% 가량이 일치하고 기초과목도 동일하게 배우기 때문에 의료기기의 판독에도 문제가 없고 주장했다.
한의학이 세계 전통의약 시장에서도 국부를 창출하려면 과학적 토대로 현대 의료기기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은 이미 중의사들에게 의료기기를 쓰게 하고 보다 과학화, 객관화해 연간 수십 억 달러의 국부를 창출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의사 “현대의학-한의학 원리 달라...진단기기 엄격 구분해야“
의사단체는 "면허 반납까지 불사하겠다"며 정부 방침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 비의료인의 의료행위 허용 등은 현행 의료체계를 부정하는 것일 뿐 아니라, 국민건강 위해와 국민의료비의 증가, 의료의 질 저하 등의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의사들은 “환자를 진단할 때 현대의학의 해부학, 생리학, 병리학적 원리와 한의학의 기본원리인 음양오행 이론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의료현장에서 사용되는 진단기기는 엄격히 구분되어 적용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헌법재판소가 지난 2013년 12월 한의사들의 손을 들어준 것도 ‘공정성이 결여된 판결’이라고 지적했다.
당시 헌재는 의료기기로 안질환 등을 진료한 혐의로 기소유예처분을 받은 한의사가 청구한 헌법소원 사건에 대해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기소유예 처분 취소를 결정했다. 의사협회는 이에 대해 “당시 헌재가 심리과정에서 의사협회나 안과학회, 안과의사회 등 전문가단체의 의견수렴을 전혀 거치지 않아 절차적 공정성이 결여된 판결이었다”고 말했다.
신현영 의사협회 홍보이사 겸 대변인은 “의료인이라고 해도 의료체계가 이원화되어 있고 그 업무영역이 구분되고 있어 의사에게 허용되는 업무영역이 단순히 동일하게 한의사에게도 허용된다고 볼 수 없다”며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 문제를 편향된 여론조사와 검증되지 않은 경제논리로 국민 건강과 안전을 단두대에 올리는 것은 매우 큰 위험에 직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복지부는 올 상반기 안에는 한의사들이 사용할 현대의료기기 가운데 어느 선까지 허용할 것인지 결정짓는다는 계획이다.
한의약정책과 관계자는 “총 5000개 의료기기가 있는데 일반적 허용은 아니고, 한의학 관련 판례들을 보면서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김지나 기자 (fres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