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거래 중 '유통융자'는 증금이 의결권 보유
[뉴스핌=홍승훈 기자] 최근 한 코스닥 투자자 정모(43세)씨는 의결권 행사를 위해 주주총회에 참석했다 황당한 경험을 했다. 보유주식 수가 10만주인데 의결권은 3만5000주만 인정됐기 때문이다. 1년 가까이 투자해 온 주식인데다 마지막 매수 시점도 주주명부 폐쇄 한참 전이어서 문제될 게 없다고 봤다. 회사측에 항의해봤지만 거래 증권사나 한국증권금융에 문의해보라는 답만 돌아왔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이 투자자는 주식 일부를 증권사 신용거래, 즉 '신용'으로 해당 주식을 샀기 때문에 의결권을 행사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증권사의 직무유기와 한국증권금융의 소위 '갑질'에 해당하는 관행이 어우러진 결과였다.
<그래픽=송유미 미술기자? |
자기융자는 의결권에 어떠한 제한도 없지만, 유통융자는 투자자 의결권이 상품 특성상 증권금융으로 넘어가게 된다. 이를 사전에 인지하지 못한 이 주주는 결국 주총장에서 이 일을 겪고나서 거래 증권사에 여러차례 문의를 한 끝에야 겨우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됐다.
이 주주는 뉴스핌 기자와 전화 인터뷰에서 "현금이든 대출이든 결국 주식의 소유권은 돈을 주고 산 투자자에게 있는 게 일반상식 아니냐"며 "때문에 의결권도 당연히 본인에게 있는 것으로 알았다"고 전해왔다.
더욱이 신용거래시 자금 조달처가 증권사의 자기융자인지, 증권금융의 유통융자인지 어느 곳에서도 알려주질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 알 수 있겠냐는 불만을 토로했다.
◆ "신용거래 절반이 의결권 제한돼"
투자자가 주식에 투자하는 자금의 출처는 다양하다. 보유 현금일 수도 있고, 은행에서 대출받은 돈일 수도 있다. 또 주식담보대출도 있고 신용거래일 수도 있다. 물론 어떤 방식이던 주주로서 권한을 행사하는데는 문제될 게 없다. 다만 현행 제도에 따르면 유일하게 신용거래, 그것도 증권금융에서 조달한 유통융자인 경우에만 의결권이 제한된다.
문제는 투자자들이 자신이 투자한 돈이 자기융자인지 유통융자인지를 처음부터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 증권사가 임의로 고객 융자의 종류를 결정하고 이를 적극 공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A증권사 관계자는 "고객으로선 자기융자이든 유통융자이든 금리가 동일하게 적용되기 때문에 상관없고, 신용을 쓰는 고객들의 주된 목적이 단기차익이기 때문에 의결권 여부에 대해선 관심이 없다"며 "때문에 고객에게 융자의 종류를 알려주지 않아왔던 것이 관행"이라고 해명했다.
B증권사 관계자는 "지금껏 관련업무를 오랜기간 해왔는데 신용으로 주식을 산 고객이 의결권 문제를 거론했던 적은 3~4년전 딱 한 번 있긴 했다"며 "다만 고객에 이를 공지할 경우 전체적인 신용거래 서비스가 불편해지는 측면이 있어 관행대로 해왔고, 사실 이 같은 공지를 미리 해주는 증권사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게다가 투자자들이 신용으로 주식을 매수하고 한 차례 연장하면 6개월까지 주식을 보유한다는 점에서 단순히 신용매수는 단기차익이 목적이라는 관념도 잘못된 것일 수 있다. 이 정도 투자 기간이라면 의결권 행사가 안 된다는 것은 항상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고객의 신용거래 요청시 융자의 종류(자기융자와 유통융자)를 결정하는 기준은 어느 증권사에도 특별한 기준이 없었다. 의결권 여부가 갈리는데도 불구하고. 보통은 당시 자금상황에 따라 자금에 여유가 있으면 자기융자를, 반대의 경우면 유통융자를 써왔다는 게 관련업무 담당자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고객으로선 동일한 금리가 적용되지만 증권사로선 자기자본을 활용한 자기융자보다 증권금융에서 조달하는 유통융자 금리가 더 높을 때도 있다. 유통융자를 굳이 쓸 이유가 없는 셈이다. 또 유통융자를 쓸만큼 자금사정이 급한 상황이 그리 자주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 물론 이 때문에 증권금융 유통융자를 활용하지 않는 증권사도 있지만 상당수 중소형 증권사들은 이를 활용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와 증권금융에 따르면 지난 13일 현재 5조2000억원 안팎에 이르는 신용거래 중 유통융자 잔액은 2조6000억원을 웃돈다. 신용거래로 매입한 주식이 절반가량으로 이 부분의 의결권이 제한될 수 있다는 의미다.<표참조>
<한국증권금융 제공> |
이에 대해 C증권사 관계자는 증권금융과의 특별한 관계를 털어놨다.
그는 "사실 증권금융 등 유관기관과는 여러가지로 업무가 얽혀있고 거래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며 "그쪽(증권금융)의 요청도 있고 거래관계상 써야할 때가 있다"고 귀띔했다.
이 같은 배경에 대해 묻자 여타 증권사들 역시 이를 인정했다. 대부분 중소형사였다.
D증권사측은 "자기융자와 유통융자를 정하는 것은 자금담당부서인데 사실 기준이나 메뉴얼은 크게 정해진 게 없다"며 "타사도 비슷하겠지만 고객이 출처를 모르는 이상 증권사로선 거래 비즈니스 차원에서 관계가 얽혀있는 증권금융의 자금을 어느정도는 써줘야 나름 편의를 볼 수 있다. 증권금융 입장에서도 이 담보주식을 활용한 비즈니스가 있는 것으로 안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이 회사는 신용대출 잔액이 수천억원대인데 이 중 증권금융을 통해 조달하는 유통융자가 70%에 달했다.
◆ "고객 요청시 의결권 넘겨줘" VS. "의결권 제한 사실 모르는데 어떻게 요청하나"
유통융자의 경우 배당이나 유상증자 신주 인수 등 여타 권리는 인정됨에도 유독 의결권에 대해서만 투자자의 권리가 배제된다. 이는 주주명의가 투자자가 아닌 증권금융에 있기 때문이다. 물론 증권금융도 투자자가 요구할 경우 일련의 절차를 거쳐 주주에게 넘겨주고 있다는 입장이다.
증권금융 임경호 시장지원팀장은 "유통융자인 경우 명의가 증권금융으로 넘어오지만 고객이 의결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안내를 하고 있고, 그렇지 않을 경우 우리가 권한을 행사한다"고 답했다.
김형만 홍보차장도 "과거엔 드물었지만 최근 들어선 투자자들의 의결권 행사 요청이나 신청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고 답했다. 다만 구체적으로 과거대비 늘어난 규모나 추이에 대해선 함구했다.
하지만 증권사 취재 결과, 증권금융의 이 같은 답변은 다소 신빙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증권금융으로부터 유통융자를 쓰고 있는 증권사 3곳에 확인해보니 어떤 곳도 지금껏 증권금융에 고객의 의결권을 요청한 곳이 없었다.
B증권사 관계자는 "신용으로 주식을 산 고객이 의결권을 요청하면 관련신청서를 따로 작성해 우리가 증권금융에 넘겨주고, 그 쪽(증권금융)에서 회신을 하면서 권한이 넘어오는 구조"라며 "하지만 수년간 한 번도 이 같은 서류를 요청한 적이 없었다"고 답했다.
D사 역시 "고객이 유통융자인지 자기융자인지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의결권을 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라며 "간혹 관련문제에 대한 고객 질의는 있었지만 증금에 이를 요청한 적은 없다"고 언급했다.
그는 이어 "의결권한을 행사하는 경우는 보통 주주총회인데, 이는 고객들이 예탁결제원을 통해 주총참석장 등을 받고 있어 구조적으로 우리가 줄 수 있는 게 아니다"며 "이를 개선하려면 시스템 자체를 바꿔야 하는데 결국 의결권을 대신 갖게되는 증권금융이 전용선을 연결한다던지 데이터를 관리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드는데 적극 나서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증권금융 김형만 차장은 "결국 신용거래는 남의 돈으로 주식을 매수하는 것이고, 이런 이유로 (의결권 등) 권리가 소멸되면 본인이 권리를 행사하겠다고 의사표시를 해야하는 것 아니냐"며 "사실 신용거래를 할 정도의 고객이면 이 정도 사실은 알고 있을테고, 그럼에도 문제가 있다면 사전 투자설명서 등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증권사의 업무태만"이라고 되받아쳤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전문가들 역시 제도개선 필요성을 피력했다.
황세훈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사실 유통융자로 신용매수했을때 의결권이 제한되는 사실 자체를 몰랐다"며 "상식적으로 융자일지라도 소유권이 고객에게 일단 넘어오면 주식관련 모든 권한이 고객에게 있어야 하며 그렇지 않은 상황일 경우 증권사든 증권금융이든 고객에게 이를 사전에 공지할 필요가 분명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이는 분쟁의 소지가 있다"고 조언했다.
한편, 취재 결과 대형증권사들 일부는 증권금융으로부터 조달하는 유통융자 방식을 쓰지 않고 있지만, 업계 전반적으로 얼마나 많은 증권사들이 유통융자를 이용하고 있는지 등에 대해선 확인되지 않았다. 증권금융측은 유통금융 상위 10개사 및 미사용 증권사 규모 등에 대한 자료 요청에 '고객정보 유출 불가'를 이유로 공개를 거부했다.
[뉴스핌 Newspim] 홍승훈 기자 (deerbear@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