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 명령이 법인 조직문화, 오너리스크 증폭
[뉴스핌=강소영 기자]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리턴' 사건으로 국내 대기업의 '황제경영' 관행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웃국가 중국에서도 대기업 사주의 독단적 경영에 경종을 울리는 보도가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중국판 '황제 경영'의 대명사로 불리고 있는 기업은 다름아닌 중국 거대 식품 회사 와하하(娃哈哈). 이 회사는 최근 몇 년간 매출 급감에 신규 사업 부진으로 경영에 큰 위기를 맞고 있다. 올해 매출은 지난해보다 7% 이상 하락이 확실시되면서 시장의 충격이 더욱 크다. 와하하는 캉스푸(康師傅),농푸산취안(農夫山泉)과 함께 중국 음료수 시장의 절반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기업이다. 현재 종업원만 3만 명에 연간 매출이 13조원이 넘는 초대형 식품 '공룡' 기업이다.
신제품 개발력 약화, 전략 실패 등 와하하의 실적 급감에 대한 다양한 원인 분석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15일 중국 경제전문지 신금융관찰(新金融觀察)은 전직 고위 임원과 전직 직원의 발언을 인용, 와하하의 위기가 쭝칭허우 회장의 독단적인 경영에서 비롯됐다고 보도했다.
◆ 매출 급감, 신제품 전략과 사업 다각화 실패
아직 와하하가 2014년도 영업실적을 공식 발표한 것은 아니지만, 매출 부진 소식은 쭝칭허우(宗慶後,사진) 와하하 회장의 입에서 직접 나왔다.
내부 업무회의에서 쭝 회장은 "올해(2014년)는 와하하의 영업실적이 가장 부진한 한 해가 될 것"이며 "매출 감소폭이 7%에 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와하하의 실적 내림세가 이미 2012년도부터 시작됐다는 점이다. 와하하의 매출은 2011년을 정점으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쭝 회장은 2012년 매출목표를 850억 위안으로 정했지만, 실제 매출은 전년보다 6.23%나 줄어든 636억 3100만 위안에 그쳤다.
실적 하락의 표면적 이유는 신제품 개발 부진과 다업 다각화 전략의 실패다. 와하하는 최근 2년 산소 충전 음료 푸양수이(富氧水), 타우린 음료 치리(啓力) 등 다양한 신제품을 출시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분유사업과 고량주(바이주,백주) 시장에도 진출해 사업 다각화를 시도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이미 10여 년 이상 지속하고 있는 아동복 사업도 지지부진하고, 2012년 쭝 회장의 진두지휘 하에 공격적으로 추진된 종합쇼핑센터 사업도 손실만 눈덩이처럼 키우는 결과를 낳았다.
◆ 회장 명령은 '법', 경직된 조직문화가 위기 키워
와하하가 매출 부진을 타개를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했음에도, 성과를 거두기는커녕 오히려 위기가 가중되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중국 업계 전문가와 언론은 쭝 회장의 독단적인 경영이 위기의 핵심으로 판단하고 있다.
중국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쭝 회장을 중심으로 수직적이고 경직된 와하하의 조직문화는 업계에서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류즈민(劉智民) 전 와하하 판매부서 총책임자는 중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 같은 문제점을 간접적으로 시인했다.
그는 "와하하가 봉착한 위기의 원인은 전략 착오라기보다는 집행과정의 문제에 있다"며 와하하 내부의 의사 결정 시스템에 상당히 문제가 있음을 시사했다.
즉, 전략 설정과 집행 과정에서 실무자들이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낼 수 없고, 쭝 회장의 직감과 명령에 따라 회사 경영이 이뤄진다는 설명이다.
와하하의 한 내부 관리자도 "(와하하의 주력 상품인) 음료수와 분유,고량주는 판매 경로가 완전히 다르다. 예를 들어, 분유를 팔려면 병원, 보건부처, 영유아용품 상점을 통해야 하는데, 이는 와하하가 네트워크를 확보한 음료수 판매 경로와는 완전히 다르다"며 와하하의 사업 다각화의 실패 원인을 지적했다.
또 다른 전직 임원은 "와하하의 사업 다각화는 쭝 회장 개인의 욕심에서 나온 생각"이라며 "사업 다각화는 향후 쭝 회장의 자산 분할을 위한 사전 작업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심지어 "와하하는 소비자의 것이 아닌 철저히 쭝 회장 일가의 자산"이라며 쭝 회장의 경영 마인드를 '폭로'했다.
최근 와하하 그룹에서 단기 연수를 마친 20대 여성도 쭝 회장의 독단적 경영방식과 경직된 조직문화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샤오메이(小美, 가명)는 신금융관찰(新金融觀察)과의 인터뷰에서 "쭝 회장의 강연을 들었을 때, 와하하가 시대에 너무 뒤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문제는 쭝 회장에게 다른 의견을 낼 수 없는 조직문화다. 상품 영업 전략 훈련 과정에서 용기를 내 다른 식품기업이 중요시 하는 소비자 체험 등의 중요성을 언급했다가 고위 임원에게 야단만 맞았다"고 덧붙였다.
샤오메이는 "와하하는 철저히 가족문화를 지향한다. 회의와 훈련시간에도 쭝 회장이 '가장' 역할을 하며, 모든 직원은 그의 말을 들을 뿐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없고, 이는 고위 임원 역시 마찬가지"라며 딱딱한 조직문화에 적응할 수 없어 회사를 그만뒀다고 밝혔다.
[뉴스핌 Newspim] 강소영 기자 (jsy@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