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우수연 기자] "가계부채가 가계의 소득을 제약하는 임계 수준에 가까이 가고 있는 게 아닌가 우려가 든다." (27일 국회 종합국정감사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성장 위주의 정책을 펴는 정부와는 달리 한은은 '안정'을 목표로 움직이는 기관이다. 한은법이 명시하고 있는 한은의 존립 목표에는 '물가 안정'과 '금융 안정'의 두 가지 책무가 놓여 있다.
경기부양이 최우선 목적인 정부에게 한은은 장기적 안목에서 조언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잦은 스테로이드 주사가 결국 몸을 해칠 수 있음을 경고하는 소신 있는 의사가 돼야 한다는 얘기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가계의 소득은 전년보다 4.1% 늘어난 반면 부채 증가율은 6.0%를 웃돌았다. 가계의 소득보다 부채가 급격하게 늘고 있다.
LTV·DTI 규제 완화에 금리 인하까지 더해지면서 가계부채는 급속도로 늘었다. 올해 8월과 9월 두 달 동안 가계부채는 11조원 급증했다.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7개월간 가계부채 증가분(19조8000억원)의 절반가량이 최근 두 달 사이 늘었다는 의미다.
하지만 정부가 간절히 오르기를 바라는 주택매매 가격 대신 전세가만 치솟고 있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9월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대비 전셋값비는 64.6%로 13년래 최고치에 육박했다.
급격히 늘어나는 가계부채에 국회와 학계에서도 경고에 나섰다. 하지만 정부와 통화정책 당국은 "괜찮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지난 27일 종합 국정감사에서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가계부채가 다소 늘더라도 그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같은 자리에서 이주열 한은 총재도 현재 가계부채가 거시적인 금융안정의 차원의 문제까지 번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가계부채 문제가 소비를 제약하는 수준까지 가까이 가고 있다는 우려를 내비쳤다.
거시적인 틀에서 문제가 없다면, 미시적으로 돌아올 가계의 고통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다는 말인가. 빚을 내줄 때는 온화하다가 갚으라고 독촉할 때는 냉랭해지는 두 얼굴의 은행을 우리는 이미 숱하게 겪었다.
하지만 한은은 여전히 가계부채 문제에 소극적인 모습이다. 오히려 한은은 올해 들어 두 차례나 금리를 인하하며 정부의 가계부채 자극 정책에 장단을 맞췄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한은이 금리를 내릴 것이라는 전망은 소수에 그쳤다.
우리나라 거시경제의 양축이라고 불리는 한은이 통화정책뿐만 아니라 금융안정에서도 독립성을 찾지 못하고 있는 점이 아쉽다. 이 총재는 가계부채에 대한 우려를 흘리듯이 말할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지적해 내야 한다.
1년에 두 번 국회에 보고하는 '2014년 10월 금융안정보고서'가 30일 정오에 발표된다. 이번 보고서를 통해 가계부채 실태와 관련한 한은의 소신 있는 판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뉴스핌 Newspim] 우수연 기자 (yesim@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