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경제패권 다시 줄 수도…미 기업실적 악화도 '우려'
그나마 제로(0) 수준까지 기준금리를 급속히 내리면서 전 세계의 동참을 이끌었고 막대한 돈을 풀어 경기를 살려놓은 것은 다행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는 동안 꽤 상당기간 '매복'해 있었던 달러화 가치가 요즘 다시 오르고 있다. 미국 경제의 부활을 알리는 듯 말이다. 유로화와 엔화 등 6개 타 통화에 대한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 주는 달러화 지수(U.S. Dollar Index)는 올해 들어 3분기까지 7.7% 상승했고 4년 여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라섰다.
달러화 강세는 사실 과거를 긴 시간으로 놓고 보면 놀라운 일이 전혀 아니다.
1995년 6월부터 2001년 6월까지를 돌아보자. 미국 경제의 급팽창과 함께 달러화 가치는 46% 치솟았다. 이 기간동안 뉴욕 증시 스탠다드 앤드 푸어스(S&P)500 지수는 배로 뛰었다. 폴 볼커가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을 맡아 인플레이션 잡기에 여념이 없었던 시절엔 더 했다. 1980년 6월부터 1984년 12월까지 달러화 가치는 무려 78%나 급등했고 S&P500 지수는 46% 상승했다.
(출처=CNN머니) |
물론 그 시절과 지금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2분기 기준으로 2.1%에 불과하며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도 잦아들었다. 경제가 성장세를 나타내고 있긴 하지만 내년 3% 정도가 예상된다. 그래도 경제 상황이 나아지고 이에 따라 돈에 대한 이자(금리)가 오를 것이 예상되는 것이 달러화 강세의 가장 큰 배경이다.
우리 언론들은 갑자기 강해진 달러화 때문에 '호떡집에 불난 듯'하다. 이렇게 급속하게 달러화 가치가 오르면 상대적으로 돈값을 많이 쳐주는 이머징 시장에 몰려 있던 글로벌 투자자금이 갑자기 빠지게 될 것이고, 그래서 우리 증시도 이렇게 타격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또한 우리나라는 예외지만 달러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락하게 되는데 이 원자재 수출에 의존하는 이머징 국가 또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달러화 가치가 떨어질 때는 또 어땠나. "미국의 경제 패권이 무너진다"며 조롱하다가 보니 일본도 돈을 찍어 마구 풀어대고, 이 때문에 원화가 달러화나 엔화 대비 비싸지면서 수출 경쟁력이 떨어진다며 호들갑이었던게 바로 어제 오늘의 일이다.
미국 언론들은 강해지고 있는 달러화가 가져올 효과에 대해 생각보다 신중하게 보도하고 있는 편이다.
(출처=LA타임스) |
또한 달러화 강세와 함께 공급 증가로 인한 국제유가 하락이 미국 경제에 힘을 더욱 안겨줄 것이란 기대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일반 소비자들의 경우 주가가 뛰고 유가가 내려가면 상황이 개선되고 있다는 '부의 효과(Wealth effect)'가 생기면서 꼭꼭 닫았던 지갑을 열 수도 있다. 그동안 미국답지 않게도(?) 저축률이 상승하는 중이었다.
메이플라워 어드바이저스의 래리 글레이저 매니징 파트너는 "일단 단기적으로는 달러화 강세와 유가 하락이 소비를 부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월마트 같은 내수 기업들에겐 달러화 상승이 반갑다.
일부에선 달러화 강세로 수입물가가 떨어지게 되면 인플레이션에 대한 걱정을 크게 벗게 돼 연준이 금리인상 시점을 더 미룰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달러화 강세가 미국의 수출 기업들에 가져올 타격을 우려하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가뜩이나 미국 대기업들 대다수는 해외로 사업장을 다각화해놓고 있어서 오히려 달러값이 뛰는 게 달갑지 못하다. S&P500 기업 순익의 3분의 1이 해외로부터 나오고 있다. 즉, 이걸 달러화로 환산해 미국 내로 들어오면 자산이 오히려 감소하는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바클레이즈의 조너선 글리오나 스트래티지스트는 "강한 달러화 때문에 기업들의 분기 매출 증가율이 절반 수준까지 뚝 떨어질 것이며 이 때문에 기업들이 실적 목표치를 맞추지 못하는 현상이 이번 분기 꽤 많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그래도 달러화 강세를 우리는 우려섞인 시선으로 지켜봐야 할 것이다. 금융위기 이전 미국이 갖고 있던 경제 패권을 다시 한 번 공고히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과 일본 경제는 지금도 어쩔 수 없이 돈을 풀어대야 할 만큼 약골이 됐다. 그러나 미국 경제는 어쨌든 살아나고 있다. 그리고 시장이 움직이는 걸 보면 전 세계 기축통화로서의 달러화의 힘이 아직도 이만큼 크다는 것을 결과적으로 과시하고 있다.
반면 달러화 강세, 그리고 공급 증가로 인해 유가 하락까지 나타나 산유국 경제가 받는 타격은 생각보다 크다. 러시아는 재정 수입의 절반 가까이가 유류 수출에서 나오는데 최근 계속해서 생산량을 늘려오고 있었다. 그렇잖아도 미국의 강공으로 위축돼 있는 중동 역시 마찬가지다. 리비아의 석유 생산이 재개되면서 최근 생산량이 하루 92만5000배럴로 14개월만의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석유 가격 결정력은 더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러면 미국의 정치력이 더 커질 수 있다.
진짜 몰래 웃고 있는 곳은 유럽일지도 모른다. 달러화 강세로 인해 유로화 가격이 떨어지면서 이에 따라 달러화로 환산되는 유럽산 원유 수출 가격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달러화 약세에도 그랬듯 강세에도 우리 금융시장에 악재라며 '호들갑'을 떠는 것은 믿음직하지 못하다. 이보다는 냉정하고 입체적으로 환율 동향과 이것이 중장기적으로 실물 경제에 가져 올, 그리고 국제 경제와 정치 구도에 가져올 파장을 분석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한 때다.
[뉴스핌 Newspim] 김윤경 국제전문기자 (s914@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