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영업, 운용사 부진 지속에 기금 쪽 집중"
[뉴스핌=이에라 기자] # A증권사 리서치센터에는 '국민연금 당번'이 있다. 투자전략, 기업분석 애널리스트를 망라해서 순번을 정해놓고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를 방문한다. 법인영업부 국민연금 담당자가 약속을 잡으면 해당 애널리스트가 방문해 프리젠테이션(PT)을 하는 게 정석이지만 이걸로 만족할 수는 없다. '수퍼갑' 국민연금에 잘 보이기 위해서는 무조건 들어가서 눈도장을 찍어야하는 것이다.
# B증권사 C이코노미스트는 최근 2개월새 국민연금을 7번이나 방문했다. 1주일에 한 번 꼴이다. 회사를 옮기고 첫 보고서를 낸 후라 여기저기 PT 일정이 많았지만 국민연금 약속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증권사 법인영업의 국민연금 편중이 심화되고 있다. 국민연금의 자산 규모가 세계 4대 연금에 꼽힐 정도로 성장하는 것도 이유지만 주식펀드를 운용하는 자산운용사들의 부진도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투자금액은 약 73조원 수준으로 직접 운용이 37조9000억원, 위탁운용이 약 35조4000억원을 기록했다. 이 규모는 향후 5년간 20% 이상 늘어날 계획이다.
반면 펀드평가사 제로인 기준 현재 국내주식형펀드(인덱스펀드·ETF제외)의 설정액은 44조7965억원으로 지난해 말 49조5465억원 대비 5조원 가까이 감소했다.
주식형펀드 시장 전체적으로 수탁고가 감소하고 있는 가운데 지수가 2000선을 넘으며 환매 물량까지 가속화돼 대표적인 기관투자자인 자산운용사들이 위축되고 있다.
이에 연기금과 자산운용사, 은행, 자문사 등 기관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증권사 법인영업은 국민연금에 집중하고 있다. 위축되는 자산운용사보다 주식투자 금액이 늘어나고 있는 연기금 쪽에서 더 많은 수수료 수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펀드 환매가 계속 나오고 있어 증권사 법인영업 입장에서는 주식투자 운용 규모를 생각해 국민연금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며 "일부 리서치센터 팀장급 인력들은 PT 약속이 잡히지 않아도 국민연금 근처 커피숍에서 우선 대기하기도 하더라"고 전했다.
다른 증권사 연구원은 "공모형펀드들은 돈이 말라 있는 상황에서 자금력을 갖춘 곳은 국민연금, 우정사업본부 등 밖에 없다"며 "법인영업 답당자들이 결국은 돈 나오는 곳에 업무 역량을 집중시키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거래대금 감소 등 전체 시장 부진으로 인해 담당 인력을 늘리거나 하는 투자를 하진 못하지만 국민연금을 포함한 기금 쪽에 기울이는 집중도가 높아지고 있는 분위기다.
증권사 한 법인영업 담당임원은 "운용사 비중이 적어지다 보니깐 자연스레 영업이 잘 되는 쪽으로 집중할 수 밖에 없다"며 "시장 전체 파이가 줄어들어 기금 담당 인력을 늘리는 것은 힘들고 그 쪽 비중을 확대하거나 방향을 이동시키고 있다"고 전했다.
일각에서 국민연금 등 연기금으로의 집중도 심화로 과열경쟁이 불거지는 것 아닐지 하고 우려도 내놓고 있다.
이 관계자는 "연기금이 영업 경쟁을 격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시장 전체의 무게중심이 한쪽(운용사)이 낮아지니 다른 한쪽(연기금)이 높아지는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최근에 연기금에 더 집중한다는 것보다는 '슈퍼갑'인 국민연금은 이전부터 늘 신경써야 하는 곳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4분기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일반거래 증권사는 총 40곳이다. 사이버거래 증권사와 인덱스거래 증권사는 각각 8개사, 15개사다.
[뉴스핌 Newspim] 이에라 기자 (ERA@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