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지난 6월 이후 이머징마켓 통화가 크게는 20% 급락했지만 수출을 늘리는 효과는 지극히 제한적일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수출을 필두로 한 실물경기의 부양 효과는 미미한 채 통화 가치 하락에 따른 인플레이션 리스크가 높아질 것이라는 얘기다.
(출처=AP/뉴시스)
1990년대 후반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이머징마켓에서 글로벌 유동성이 썰물을 이룬 데 따라 이들 국가의 통화 가치가 일제히 급락했고, 이는 수출을 진작시키는 효과를 이끌어냈다. 외환위기에 따른 침체의 강도를 일정 부분 상쇄한 셈이다.
하지만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자산 매입 축소 움직임에 따른 이머징마켓 통화 급락은 경우가 다르다는 지적이다.
6일(현지시간) 업계에 따르면 골드만 삭스와 모간 스탠리 등 주요 월가 투자은행(IB)이 올해와 내년 이머징마켓의 성장률 전망치를 크게 낮춰 잡고 있다. 수출 주도의 경기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브라질의 농업 부문 수출이 8월 들어 가파르게 늘어나는 등 일부 국가의 수출이 통화 가치 하락의 반사이익을 보이고 있지만 월가의 전망은 비관적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메릴린치의 데이비드 호너 이머징마켓 외환 및 채권 헤드는 “교과서적으로 볼 때 통화 약세는 수출에 호재이지만 문제는 경상수지 적자가 통화 가치 하락만큼 빠른 속도로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국제 유가가 여전히 강세 흐름을 유지하고 있고,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의 수요가 충분히 살아나지 않는 점도 수출 전망을 흐리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UBS의 바누 바베자 이머징마켓 전략 헤드는 “신흥국 제조업계의 가장 커다란 시장인 미국의 수입 수요가 뒷받침되지 않고 있다”며 “미국의 수요는 중장비 기계와 셰일 가스 운송관 등 신흥국 기업들이 주력하지 않는 분야에 집중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2008년 미국 금융위기 이후 경기 회복은 제조업이나 수출이 아닌 신용 증가가 주도했고, 이 같은 성장 자체가 꺾일 리스크에 직면한 상황이라고 시장 전문가는 주장했다.
일부 투자자들은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과 함께 이머징마켓의 시장금리가 동반 상승하고 있어 통화 가치 하락에 따른 수출 증가 효과가 일정 부분 가시화된다 하더라도 이들 국가의 국내 수요가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플레이션의 가파른 상승도 악재로 꼽힌다. BOA-메릴린치에 따르면 대부분의 에너지를 수입하는 터키의 리라화가 10% 하락한 사이 인플레이션이 15~20% 상승한 것으로 분석했다. 통화 가치 하락에 따른 가격 경쟁력 향상보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손실이 더 크다는 얘기다.
상황은 인도도 마찬가지다. 달러화에 대해 루피화가 1루피 떨어질 때마다 에너지 부문에 대한 정부의 보조금 부담이 800억루피 늘어나는 것으로 집계됐다.
HSBC의 필립 풀 전략가는 “신흥국의 통화 약세는 양날의 검”이라며 “인도를 포함해 수입이 비탄력적인 국가의 경우 국제 유가가 상승한 데 따른 인플레이션 상승 및 정부 부담 증가가 오히려 성장을 저해하는 실정”이라고 주장했다.
[뉴스핌 Newspim] 황숙혜 기자 (higrac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