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E정책 축소 시점 주목…일본·신흥국 '정책결정'도 변수
2013년 상반기 세계 경제와 금융시장은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미국 시퀘스터, 유로존 위기, 중국 경착륙 위험 등 중요한 위험 요소들이 충격을 주지 않고 비껴갔다. 경제 회복 속도는 느리지만 완고한 개선 추세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미국의 장기금리가 정상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채권시장이 동요하고, 신흥국으로 유입되던 자금이 방향을 틀고 있다. 일본의 새로운 실험 '아베노믹스'의 성공이 불확실한 데다 중국 새 지도부의 완고한 개혁 의지가 새로운 위험으로 부상하고 있어 한국 경제와 금융시장에 적잖은 부담이다. 이 가운데 뉴스핌은 상반기 추세를 점검하고, 하반기에 주목할 추세, 위험요인을 점검한다. [편집자 주]
[뉴스핌=주명호 기자] 상반기 세계 환율시장의 이목은 '엔화'에 집중됐다. '아베노믹스'로 대변되는 일본의 공격적인 통화정책으로 엔화가치는 무서운 속도로 하락하며 환율 변동의 중심에 섰다.
반면 하반기는 미국 달러화가 다시 환율시장의 주인공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양적완화 정책 축소가 가시화되면서 세계 주요 통화들은 일제히 달러화대비 약세로 전환했다. 전문가들도 미 통화정책의 향방이 하반기 세계 환율흐름을 결정지을 것이라 내다보고 있다.
◆ 상반기, '아베노믹스' 돌풍…신흥국 통화도 약세로
상반기 환율시장은 일본 엔화 약세가 달구었다.
"윤전기로 돈을 찍어내겠다"고 공언한 아베 신조 총리의 취임 이후 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 엔화가치 약세를 예상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아베노믹스'로 불리는 적극적인 경기부양 정책을 펼치면서 달러/엔은 전망치를 훨씬 뛰어넘는 수준을 보였다.
작년 말 당시 전문가들의 달러/엔 전망은 대부분 85~90엔 수준에서 머물렀다. BNP 파리바의 경우 75엔을 전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달러/엔은 1월부터 90엔을 돌파한 후 줄곧 고공행진을 지속해 5월에는 103엔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6월달 크게 조정을 받으며 92엔까지 내려가기도 했지만 여전히 연초대비 10% 이상 상승한 상태다. 미국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의 통화정책 축소 시사 이후엔 다시 달러화대비 약세를 나타내고 있다.
달러/엔 환율 추이 <출처 : MarketWatch> |
◆ 강세 보였던 신흥통화 점차 약세로…자국 상황도 영향 미쳐
상반기 신흥국 통화는 전반적으로 선진국 통화 대비 강세를 보였지만 추세적으로는 점차 평가절하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5월 이후 연준의 통화정책 우려가 높아지기 시작하면서 신흥국들의 통화가치는 급격히 하락했다. 달러화 대비 인도 루피화는 연초보다 약 7%, 필리핀 페소화는 약 5% 절하됐다.
자국 상황의 변화도 신흥국 통화가치에 큰 영향을 미쳤다. 대표적인 국가는 터키다. 6월 초부터 시작된 반정부 시위 이후 터키리라화 가치는 큰 폭으로 하락했다.
다만 터키 중앙은행이 통화시장에 적극적인 개입을 보여주면서 다른 신흥국 통화에 비해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밖에 말레이시아, 인도, 싱가포르 통화가치도 연초보다 달러화 대비 2~3% 하락했다.
◆ 하반기 환율시장, 미국 통화정책이 좌우…달러화 강세 전망
하반기 세계 환율시장은 미국의 통화정책 향방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준이 연내 통화정책을 축소할 것이라는 우려는 이미 상반기부터 지속돼 왔다. 그런 상황에서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후 버냉키 의장이 국채매입 축소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내놓자 주요 통화들은 달러화대비 일제히 약세로 전환했다.
심지어 '아베노믹스' 실망감에 6월부터 다시 강세를 보였던 엔화가치도 방향을 튼 모습이다. 최근 증시가 조정 이후 큰 반등을 보이지 못하고 있음에도 달러/엔 환율은 상승분위기를 이어가고 있다. 5월 92엔까지 떨어졌던 달러/엔은 현재 98엔선까지 회복한 상태다.
주요 투자은행들도 대부분 3개월내 달러/엔이 100엔을 돌파할 것이며 최대 107~8엔까지 오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달러화는 강세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연준은 그동안 국채매입 축소 시기에 대해 가능성만 제시해왔다. 하지만 이번 통화정책회의를 통해 축소 시작 시점이 '올해'가 될 수 있다고 명확히 밝힘에 따라 국채 수익률 상승과 함께 달러화가치는 오름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다만 버냉키 의장이 축소 조건으로 내건 고용시장 등 미국 경제개선 상황을 꾸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내셔널 호주 은행의 가빈 프렌드 외환 투자전략가는 "투자자들은 값싼 유동성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경제지표가 개선될 경우 달러화는 더욱 강한 상승 추이를 나타낼 것"이라고 내다봤다.
연준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인 미국 실업률은 꾸준히 하락하면서 현재 7.6%를 기록 중이다. 연준은 6.5%를 실업률 목표치로 제시한 상태다.
달러화대비 강세를 나타냈던 유로화는 연준의 발표가 있었던 20일을 기점으로 약세를 이어가고 있다. 유로/달러 현재 1.30달러선까지 빠진 상태다. 미국 국채 수익률의 상승세가 지속되는 이상 유로화가치도 상대적으로 약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전문가들을 보고 있다.
심지어 최근 유럽중앙은행(ECB)이 검토 중인 마이너스금리가 도입된다 하더라도 약세를 멈출 수 없을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소시에테 제네랄의 세바스찬 갈리 환율부문 투자전략가는 "마이너스금리는 오히려 유로화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럽내 불안한 정치상황도 유로화 움직임의 변수로 꼽힌다. 그리스, 이탈리아 등 주요국에서는 여전히 정치적 불안이 이어지고 있다. 최악의 실업난을 겪고 있는 스페인 또한 불안 요인 중 하나다. 그리스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최근 11%를 웃돌고 있으며 이탈리아, 스페인 10년물 수익률도 5%대를 나타내고 있는 상황이다.
주요 투자은행의 하반기 달러/엔 및 유로/달러 전망 |
◆ 신흥국도 연준 영향력에 약세…각국 정책 결정에 주목
신흥국 통화 또한 연준의 '연중 국매채입 축소 가능' 발언에 일제히 약세를 보이고 있다. 발표 후 인도 루피화와 필리핀 페소화는 약 4%씩 절하됐으며 브라질도 3.4% 떨어졌다. 태국 및 말레이시아, 남아공 등도 2% 이상 가치가 하락했다.
이중 브라질과 인도의 경우 투자심리 약화로 이미 2011년 이후 달러화대비 약세를 지속해왔다.
2010년 이후 달러화대비 인도 루피화(붉은선) 및 브라질 헤알화 환율 변동 추이 <출처 : MartketWatch> |
최근 외환시장의 핵심 변수는 미국 국채 수익률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입장이다.
웰스 파고의 닉 베넨브룩 외환 투자전략가는 "수익률은 상승 추이를 지속할 전망이며 이에 따라 신흥시장 통화에 대한 강한 하락 압박이 당분간 유지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향후 신흥국 통화는 대체적으로 약세를 펼쳐갈 것으로 보이지만 각국이 어떤 통화정책을 내놓느냐도 환율 변동의 요인으로 꼽힌다.
실제로 터키는 리라화 가치가 하락하자 외환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어느정도 효과를 보기도 했다. 터키 중앙은행은 이달 초 환율 방어를 위해 2억 5000만 달러를 시중 은행에 투입했다.
인도네시아는 루피아화 약세 지속을 막기 위해 기준금리를 0.25%p 올린 6%로 인상했다. 이에 앞서 인니 중앙은행은 FASBI(오버나잇 예금제도 금리)도 4.25%로 0.25%p 깜짝 인상을 단행하기도 했다.
브라질 중앙은행은 최근 강경 시위로 헤알화 가치가 4년래 최저점을 찍자 환율시장 개입을 결정했다. 브라운 브라더스 해리만(BBH)은 이번 시위가 브라질 통화정책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다. 전문가들도 올해 말까지 브라질 금리가 9%까지 인상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호주 또한 약세를 지속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크레디트 아그리콜은 호주의 주요 수출국인 중국의 경기 전망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하락 압박은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뉴스핌 Newspim] 주명호 기자 (joom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