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 때 이른 긴축에 나섰다가는 경제 회복을 저해하는 한편 인플레이션을 더 큰 폭으로 떨어뜨릴 수 있다.
# 앞으로 수개월 사이 자산 매입 속도를 늦출 수 있다.
온전한 매도, 비둘기도 아니었다. 22일(현지시간) 의회 상하원 합동경제위원회 경제 전망에서 벤 버냉키 의장은 향후 통화정책 방향에 대해 비둘기파와 매파의 색채를 동시에 드러냈고, 금융시장은 냉탕과 온탕을 오갔다.
◆ QE 축소, 자동적-기계적 긴축 아니다
이날 버냉키 의장이 양적완화(QE)의 수위 조절과 관련, 가장 크게 무게를 둔 것은 고용 회복 여부다.
앞서 실업률이 6.5% 아래로 떨어질 때까지 자산 매입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힌 데 이어 고용시장의 회복 여부를 정책 판단의 결정적인 변수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킨 셈이다.
버냉키 의장은 “고용시장이 일정 부분 회복을 보이고 있으며, 연준 정책자들 사이에 회복 기조가 지속될 것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며 “추이를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자산 매입을 줄이더라도 과거와는 다른 형태로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과거 QE는 자산 매입 규모와 기간을 사전에 정한 후 시행했고 이 때문에 자산 매입이 일시에 전면 중단된 한편 시기가 예측 가능했다.
반면 매월 850억달러 규모로 진행되는 기존의 QE는 종료 시기가 정해지지 않았고, 과거와 같이 일시 중단하는 형태를 취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버냉키 의장은 “자산 매입을 줄이는 과정이 자동적이거나 기계적으로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산 매입 속도에 상당한 유연성을 둘 것이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고용을 포함한 경기 회복이 보다 뚜렷해질 경우 자산 매입 속도를 늦춘 뒤 금융시장 및 실물경기 추이를 지켜보고, QE 규모를 축소한 상태를 유지하거나 축소 폭을 늘릴 수도 있고 반대로 자산 매입을 다시 확대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 금융시장 출렁, 연준이 원하는 것은?
금융시장은 버냉키의 ‘입’에 촉각을 곤두세운 채 다소 혼란스러운 움직임을 드러냈다. 투자가들과 주요 외신의 해석도 다소 엇갈렸다.
의회 증언 초반 미리 준비한 연설에서 비둘기 파에 무게를 둔 발언을 내놓았을 때 주가는 강세를 나타냈고, 달러화는 약세 흐름을 탔다. 10년물 미국 국채 수익률은 1.9% 아래로 떨어졌다.
하지만 증언 후반 질의응답 시간에 향후 몇 개월 사이 자산 축소를 단행할 가능성을 제시하자 상황은 역전됐다. 주가는 약세로 전환했고, 10년물 수익률은 2%를 뛰어넘었다.
하이 프리퀀시 이코노믹스의 짐 오설리반 이코노미스트는 오는 9월 자산 매입의 축소를 강하게 확신했다.
그는 “버냉키 의장의 이날 발언은 9월부터 양적완화(QE)를 축소하기 시작할 것이라는 당초 예상과 맞아떨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BNY 멜론 캐피탈 마켓의 댄 멀홀랜드 트레이더는 “국채시장이 패닉에 빠진 것은 아니지만 변동성이 대폭 확대된 것이 사실”이라며 “투자자들은 버냉키 의장의 발언 한 마디 한 마디를 해석하는 데 분주한 한편 QE 축소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면서 수익률이 치솟았다”고 설명했다.
버냉키 의장의 발언 자체에 대한 불만 섞인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향후 통화정책 방향과 관련된 불확실성을 오히려 가중시켰다는 얘기다.
미츠비시 UFJ 증권의 토마스 로스 디렉터는 “버냉키 의장의 이날 발언 의도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렵다”며 “자산 매입 축소에 대한 의견을 미리 준비한 연설문이 아닌 질의응답을 통해 밝힌 점도 석연치 않은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헤지펀드 업체인 나인알파 캐피탈의 제이슨 에반스 펀드매니저는 “연준이 QE를 줄이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버냉키 의장은 시장의 과민반응이나 충격을 방지하는 데 만전을 기하려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뉴스핌 Newspim] 황숙혜 기자 (higrac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