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도 나도 '코드 맞추기' 고민
[뉴스핌=이강혁 기자] 재계가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동반성장 정책방향에 잇따라 동참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삼성그룹이 창조경제 관련 투자계획을 내놓자마자 LG그룹도 미래 융복합 기술 투자와 내부거래 개방 카드를 꺼내들었다.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경제의 불확성으로 올해 투자 규모를 대외적으로 공표하지는 않았지만 지난 4월 말 1조1200억원의 통 큰 신규투자를 통해 창조경제 정책에 부응하면서 고용 확대에 화답의 메시지를 보냈다. SK그룹도 ICT(정보통신기술) 융합에 1조2000억원을 투자키로 한 상태다.
주요 그룹들의 이같은 동참행렬은 재계 전반적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지난달 24일 창조경제특별위원회를 발족시킨 이후 산업간 융복합 과제, 인재 육성 등 창조경제 문화 확산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중이다.
이와 관련, 재계 관계자는 "30대 그룹들이 창조경제에 부응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면서 "창조경제와 동반성장의 정책기조에 발맞추기 위한 발표들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승철 전경련 상근부회장은 지난 13일 방미 경제사절단 활동 브리핑에서 삼성의 창조경제 발표와 관련, "다른 몇몇 기업들도 준비를 하고 있다"며 재계의 분위기를 전한 바 있다.
◆4대 그룹, 창조경제·동반성장 발맞추기 분주
21일 재계에 따르면 창조경제 부응에 가장 발빠른 움직임을 보인 곳은 삼성그룹이다. 이미 1조5000억원 규모의 미래기술육성재단을 설립하기로 했고, 소프트웨어 분야의 발전 대책도 내놨다.
이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귀국하면 동반성장 등 삼성의 새로운 가치창출을 위한 창조경제의 추가 대책도 조만간 발표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삼성은 특히, 글로벌 전략의 일환으로 인재 육성 등에 투자를 진행하던 기존 분위기에서 올해는 창조경제와 국가 경제 발전 전략에 더 높은 비중을 두는 모습이다. 최근 발표된 현안들 대부분은 삼성의 국내 사회공헌 활동과도 맥락을 같이한다는 평가다.
LG그룹도 전격적인 창조경제 활성화 대책을 내놨다. 그룹 계열사 간 4000억원 규모의 내부거래를 중소기업에 개방키로 하면서 창조적 동반성장의 기본 틀을 갖춰가기로 했다. 또, 서울 마곡산업단지에 건설할 계획인 'LG 사이언스 파크'를 확대해 전자와 화학, 통신이 결합된 융복합 연구단지로 육성할 계획도 발표했다.
창조경제의 핵심인 연구개발과 인재 육성, 여기에 대중소기업의 동반성장 코드까지 적극적으로 화답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앞서 현대차그룹도 창조경제에 부응하기 위해 지난달 말 1조2000억원의 신규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연 100만톤(t) 규모의 특수강과 연 2만5000톤 규모의 철 분말을 양산하겠다는 것이다.
이로 인한 생산유발 및 부가가치 창출 효과는 6조1000억원, 신규 고용은 2만2000명에 달할 것으로 현대차그룹은 전망하고 있다.
글로벌 자동차산업 침체 여파로 고민이 깊은 현대차그룹에게 이같은 투자 발표는 적잖은 고민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양적성장보다는 내실경영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에서 주저할 수 있는 투자 카드를 적극적으로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은 이와 별도로 계열사에 몰아주던 광고·물류 일감 6000억원 규모를 개방해 중소기업에 나눠주기로 했고, 창조경제 활성화에 힘을 보태기 위해 수소전지연료차 등 미래형 자동차 개발에 집중적인 투자를 계획 중이다.
SK그룹은 창조경제의 핵심인 융합 코드에 팔을 걷었다. 기존 ICT에 첨단산업을 결합하는 ICT융합사업에 3년간 1조2000억원을 투자키로 한 것이다. 또, 전통시장에 ICT를 접목하고, 중소기업 지원을 위한 동반성장 펀드도 1600억원 규모로 조성할 계획이다.
◆30대 그룹, 너도 나도 '코드 맞추기' 고민
4대 그룹의 이런 분위기에 30대 그룹들 대부분은 분주한 모습이다. 경영상황이 녹록치는 않지만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 없다는 분위기다.
30대 그룹의 한 고위 임원은 "창조경제 실현 대책은 하나의 트렌드처럼 인식되는 것이 사실"이라며 "기업 사정에서 크게 오버하지 않는 선에서 창조적 가치창출을 위한 다양한 방안들이 논의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다른 임원은 "요즘의 흐름은 다소 이벤트 성격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니겠냐"면서 "창조경제 실현이나 대중소기업 상생, 지역 활성화, 고용 창출 등 기존에 다양한 방향에서 진행되고 있는 사업들을 좀더 확대하거나 하는 쪽에서 생각해 봐야 할 것"이라고 의견을 나타냈다.
이런 분위기는 사실 남양유업 사태 이후 식음료업계 전반에서 가장 큰 고민으로 떠오른 상태다.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경영관행이 기업의 지속가능한 경영에 얼마나 큰 후폭풍을 몰고 올 수 있는지 절실히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한 식품사 관계자는 "갑을관계 청산의 측면에서 동반성장 코드나 공익성이 강조될 수 있는 창조경제의 토대 마련 방안들이 이야기되고 있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회사나 업계 전반적으로나 지금은 몸을 바짝 낮추고 숨죽여야 하는 상황이어서 누가 먼저 대책을 내놓을 지 눈치보는 경향도 있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이강혁 기자 (ik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