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만삭스·노무라 대비 너무 작아 경쟁상대 안돼
[뉴스핌=김동호 기자] # 동양그룹이 동양매직 매각을 위한 주간사로 골드만삭스와 동양증권을 선정했다. 동양그룹 은 골드만삭스를 선택한 이유로 동양매직의 향후 성장성과 브랜드 등 기업가치에 대해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는 점을 꼽았다. 여기에 골드만삭스의 강력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감안했다. 동양증권이 동양그룹의 계열사임을 감안하면 국내 증권사의 IB 경쟁력은 골드만삭스에 밀린 것이다.
# 지난 1월 중국 최대의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는 기업공개(IPO)를 위한 주간사로 골드만삭스와 크레디트스위스를 선정했다. 알리바바는 올해 홍콩증시에 상장해 30억~40억달러를 조달할 예정이다. 국내 금융시장 침체로 인해 수익성 악화를 겪고 있는 국내 증권사들은 해외 먹거리를 찾아 나서고 있으나 이러한 대규모 딜에 참여하지 못했다.
'한국형 골드만삭스'를 키우려는 노력은 수년째 이어져왔다. 브로커리지 위주의 사업구조를 가지고 있는 국내 증권사들은 새로운 수익원으로 글로벌 투자은행(IB)의 육성을 내걸었다.
그렇지만 답보상태다. 무엇보다도 골드만삭스와 같은 글로벌IB들과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해선 국내 증권사들의 규모(자기자본)가 지금보다 더 커져야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1년여전 자본시장법 개정안의 통과를 염두에 둔 국내 대형 증권사들은 상당 수준의 유상증자를 통해 자기자본을 늘렸다. 삼성과 대우, 현대, 우리투자, 한국투자증권 등 국내 5대 대형 증권사들의 평균 자기자본 규모는 3조 5000억원 수준으로 늘었다.
여전히 중과부적이다. 35조원 규모의 자기자본을 보유하고 있는 일본의 노무라증권이나 81조원에 육박하는 골드만삭스와 경쟁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투자은행업을 하기 위해선 최소 20조원은 필요하다고 강조했던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의 말이 다시금 생각나는 대목이다. 당시 박 회장은 "문제는 자본력"이라며 "투자은행업은 자기자본으로 승부해야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최소 20조원이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 대형 투자은행(IB) 육성, 선택 아닌 필수
IB 업무의 성격을 감안할때 자본 확충이 필연적인 선택이라는데는 이견이 없다. IB의 기본적인 역할은 투자자와 기업을 연결해주는 것이다. 바꿔말하면 증권사들이 시장 조성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시장 조성자가 되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자기자금을 투자하고, 이 투자에 따른 위험(risk)를 안고 가야한다. 헌데 국내 대다수 증권사들은 이 같은 리스크를 안고 가기엔 자기자본의 규모가 너무 작다. 이로 인해 작은 변동성이나 위험에도 몸을 사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내 한 증권사 사장은 "외국 투자은행(IB)들은 FICC 부문에서 몇십조원 단위의 돈을 벌고 있는데 반해 국내 증권사들은 자기자본 규모가 너무 적어 이 같은 투자를 할 수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서보익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 역시 "한국 IB 시장은 인수 주선과 증권의 발행, 그리고 약간의 자문 역할에 그치고 있다"며 "아직 한국의 IB 시장규모가 협소하고, 이에 따라 수익기여도도 자기자본 대비 4% 미만으로 낮은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글로벌 IB의 육성은 금융투자업계 발전 뿐만 아니라 국내 기업들의 해외 진출 활성화를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과의 대규모 해외 프로젝트 수주 경쟁에서 대형 IB의 존재는 수주 경쟁력 확보에 도움이 된다는 설명이다. 특히 많은 자금이 투여되는 프로젝트일 경우 글로벌 IB를 통한 자금 조달은 필수적이다.
이 외에도 중소기업과 벤처기업 육성을 위해서도 대형 IB의 존재는 도움이 된다. 사업성에 있어 다소간의 리스크를 갖고 있는 정보기술(IT) 및 바이오기술(BT)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이들 기업들에 과감한 투자를 할 수 있는 자본력을 갖춘 IB가 필요하다는 것. 이는 새 정부가 추진하려는 국정과제 중 '자본시장제도 선진화'에 포함돼있다.
김석동 전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지난해 9월 자본시장연구원 국제컨퍼런스에 참석해 "자본시장 개혁이 시급하다"고 강조하며 "한국형 투자은행(IB)을 육성해 우리 기업들의 해외 프로젝트 수주 활동을 지원하고, 창업 초기의 중소기업에 '모험자본(risk capital)'을 공급해 역동적인 중소기업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 자발적 증자·M&A 난항...정부 나서야
대형 IB 육성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국내 증권사들이 선뜻 자기자본 확대를 통한 IB 강화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로는 증권사의 지배구조가 꼽힌다. 국내 증권사들은 대부분 금융지주사 혹은 대기업 계열사에 속해 있어 자기자본 확대를 위한 대규모 증자를 하려면 대주주가 동의해야한다.
대주주들이 경영권을 유지하기 위해 증자에 참여하려면 상당한 자금 부담을 떠안아야한다. 증자 이후 수익성 확보가 낙관적이라면 대주주들이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하지만 3조원대로 증자한 대형 증권사들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은 5% 미만으로 하락했다. 대주주가 증자에 참여하지 않으면 지분율이 하락하고, 경영권이 위협 받을 상황에 몰릴 수 있다. 이래저래 대주주가 대규모 증자에 소극적일 수 밖에 없다.
강한 지배구조는 증자 뿐 아니라 증권사들 간의 인수·합병 역시 가로막는 원인으로 지적받고 있다.
여기에 국내 증권사들의 사업모델이 대부분 유사한 것도 증권사들 간의 합병을 통한 대형화의 걸림돌이다.
서보익 애널리스트는 국내 증권산업 내의 인수 합병이 잘 이뤄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 증권사 대주주들의 강한 지배구조와 금융당국의 정책적 한계, 동일한 사업모델 하에서의 합병 시너지 부재 등을 꼽았다.
그는 특히 "대형 또는 중형 이상 증권사는 대부분 은행 또는 그룹 계열화가 이뤄져 있어 모그룹이 경영난을 겪지 않는 한 증권사 라이센스를 쉽게 포기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2000년 이후 증권업계의 구조재편은 자생적이라기보다는 모그룹의 경영난에 따른 증권사 매각이 주된 요인이었다. 이 경우에도 시너지가 약한 증권사 간의 합병 보다는 신규 진입을 도모하는 금융자본 또는 산업자본이 인수 주체가 됐다.
또한 은행, 보험 등 타 금융권 또는 산업자본의 증권사 라이센스에 대한 잠재적 수요 역시 증권사들간의 M&A를 막고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이로 인해 일부에선 정부가 지분을 보유한 증권사 및 금융사들 간의 합병을 통한 대형 IB 육성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특히 산은금융지주 계열의 KDB대우증권과 우리금융지주 계열사인 우리투자증권의 경우 이미 규모면에서 국내 5대 증권사에 속하고 있다. 이들간의 합병이 이뤄진다면 글로벌 IB들과 경쟁할 만한 규모를 갖춘 대형 IB가 탄생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증권사들 만이 아닌 은행의 IB부문과 증권사가 합병하게 될 경우의 시너지도 상당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우선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야한다"며 "정부가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증권사간 합병 뿐만 아니라 정부 소유 은행의 IB부문과 증권사 간 합병도 검토해봐야한다"고 조언했다.
이 외에도 대형 IB 육성을 위한 정부 차원의 지원도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우선 이미 몇차례 국회에서 연기된 바 있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의 조속한 통과와 함께 증권사들 간의 인수합병을 활성화 하기 위한 M&A 절차 간소화나 세제 지원 등 방안이 요구되고 있다.
[뉴스핌 Newspim] 김동호 기자 (goodhk@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