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엔저쇼크'..길잃은 韓기업 어디로?
원화 강세로 가격경쟁력이 떨어진 수출기업들이 실적악화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생산된 자동차들이 수출선적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
한림인텍은 지난 2010년 일본 닛산자동차의 계열사인 닛산차체와 공급계약을 맺고, 지난해 하반기부터 닛산의 미니밴 모델인 카라반(NV 350)에 들어가는 자동차 내장재를 수출하고 있다.
1995년 한ㆍ일 합작회사로 설립된 한림인텍은 르노-닛산 얼라인언스의 일원인 르노삼성차에 자동차 인테리어 내장재를 공급해 온 중소 자동차 부품회사이다. 작년 기준 매출은 338억원, 당기순이익은 8억원이었다.
김 사장은 “르노삼성의 주선으로 일본 자동차 업체와 공급계약을 맺으면서 결제조건을 원화로 했기 때문에 당장 손해가 나지는 않는다”며 “하지만, 새로운 차종에 대한 도전장을 내야 하는데 엔저로 경영환경이 어려워졌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과거에는 원화에 비해 엔화가 강세여서 제품의 가격경쟁력이 높고, 지리적으로 물류비 부담이 적어 일본 부품 업체들과의 경쟁을 이겨낼 수 있었지만, 원화 강세로 더 이상의 수주를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는 설명이다.
김 사장은 “자동차 부품은 일본 시장을 뚫어야 하는데 환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는 데다 엔저로 경쟁력을 확보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며 “주변 다른 기업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고 말했다.
원고ㆍ엔저가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면서 수출기업들의 경쟁력 약화가 심각해지고 있다. 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이 최근 322개 기업을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원화 강세로 채산성이 악화돼 수출을 중단하거나 포기한 업체 비율이 20%에 달했다.
지난 2010년 말 1380원 수준이던 원엔 환율은 현재 1160원대로, 16% 가량 떨어졌다. 같은 기간원달러 환율도 1150원 수준에서 1080대로, 70원(6.1%) 가량 하락해 가격경쟁력을 무기로 삼아 해외시장 공략에 나선 수출기업들을 옥죄고 있다.
◇ 현대차ㆍ토요타 희비..환율 직격탄
원고 및 엔저로 인해 가장 타격을 입는 업종은 선진국 수출비중이 높은 자동차와 조선, IT 등이다.이들 산업은 대부분 일본 업체들과 수출 경합도가 높아 가격경쟁력, 시장점유율 하락이 우려되는 업종들이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현대차와 토요타이다.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전세계 시장에서 전년 대비 7.9% 증가한 712만대를 판매, 글로벌 점유율을 전년 8.6%에서 8.8%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수익성은 원화강세가 본격화된 지난해 4분기부터 눈에 띄게 약화되고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시장 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환율 악재를 만나 가격경쟁력이 떨어진 때문이다.
현대차는 작년 4분기 22조7910억원의 매출과 1조8319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10.7% 증가한 것이지만, 영업이익은 11.7% 감소한 것이다. 10%를 상회하던 영업이익률은 8.1%까지 떨어졌다.
기아차는 더욱 심각하다. 기아차의 작년 4분기 영업이익은 4042억원으로, 전년 동기(8269억원)에 비해 반토막이 났다. 매출은 2.9% 증가한 11조27770억원이었다.
현대기아차 관게자는 “작년 4분기 영업이익 감소의 원인은 원화 강세 등 환율 변동 요인이 가장 크다”며 “올해 원화강세 기조가 더 뚜렷해 지고, 일본 업체의 공세가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현대기아차의 강력한 경쟁자인 토요타는 엔저를 등에 업고 콧노래를 부르고 있다. 토요타는 지난 5일 오는 3월 끝나는 회계연도 순익을 5년 내 최대인 8600억엔으로 전망했다. 이전 7800억엔보다 늘어난 전망이다. 영업익과 매출액 전망치도 각각 9.5%, 2.3% 상향조정했다.
북미에서의 리콜사태와 대지진 등으로 고전을 면치 못했던 토요타는 지난해 전세계 시장에서 전년 대비 22.6% 증가한 974만대를 판매, 세계 1위 자리를 탈환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일본자동차 업체들은 2004~2007년 사이 엔화 약세를 등에 업고 미국시장 점유율을 큰 폭으로 끌어올린 바 있다”며 “개별 기업은 물론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환율 관리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부품.소재기업도 타격 우려
원화 강세로 인한 수출기업의 부진은 부품과 소재 기업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현대차에 제동장치와 조향장치를 공급하는 만도는 지난해 매출 3조1407억원, 영업익 1285억원의 실적을 올렸다.
이는 전년 동기에 비해 매출은 11.2% 증가한 것이지만, 영업익은 7.4% 감소한 것이다. 만도측은 해외에서의 시설투자와 R&D 투자가 늘어난 데다 200억원 정도의 환차손이 발생해 이익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더 큰 문제는 원화 강세로 현대기아차를 비롯한 국내 자동차 업계의 판매가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이다.
만도 관계자는 “자동차는 일본과 경쟁하는 대표적인 사업으로, 현대기아차의 자동차 판매가 감소하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현대기아차 물량이 감소하면 매출이 줄어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수출기업에 소재를 공급하는 철강사들도 원화 강세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원화 강세로 원자재에 대한 가격부담은 덜어질 수 있지만, 가격경쟁력이 떨어진 자동차와 가전, 조선 등 수요업체들의 제품가격 인하 압력이 거세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주요 철강사들은 지난해 경기침체와 공급과잉에 따른 제품가격 하락으로 실적이 뚝 떨어졌다.
철강사 관계자는 “수출 위주의 포트폴리오를 가진 기업들의 사정이 이해 안 되는 바는 아니지만, 현재 가격 수준도 원가 반영을 다 못한 것”이라며 “여기서 가격을 더 인하하겠다고 하면 우리도 살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김홍군 기자 (kiluk@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