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곽도흔 기자] "재벌총수들이 1%의 지분을 갖고 황제경영을 하는 것에 대해 지분 소유와 경영권 지배가 반드시 일치할 필요는 없다."
얼핏 보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의 주장으로 오해할 수 있지만 기획재정부가 지난 7월 경제민주화 관련 현안에 대해 장관의 대국회·대언론 내부 참고용으로 만든 보고서의 일부다.
재정부가 ‘경제민주화 관련 쟁점 검토’란 보고서에서 정치권에서 나오고 있는 순환출자 금지, 출자총액제한제도 재도입, 재벌세 신설 등 ‘경제민주화’ 관련 정책에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재정부는 대선을 앞두고 충분히 오해를 살만한 보고서를 왜 만들었냐는 지적에 대선이 본격화되기 전인 7월에 만들어졌고 특히 내부용이라며 논란을 잠재우려고 하지만 내용은 다소 충격적이다.
재정부는 경제민주화는 시장경제 질서를 저해하는 않는 범위에서 추진하되 극히 예외적인 경우 최소 범위에서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경제민주화 논의가 대기업 규제를 통한 대-중소기업간 격차 해소에만 치중한다면 대외 경쟁력을 저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순환출자 금지에 대해서도 모든 나라에서 순환출자가 가능하고 이를 법으로 규제하는 나라는 없는 만큼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고 출자총액제한제도 재도입도 부작용을 거론하며 신중한 입장을 나타냈다.
대형마트 영업 규제를 강화하는 것에 대해서는 소비자 편익과 서민 일자리 감소 등 부작용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면서 산업 선진화나 신규시장 창출 등 측면에서 대기업 역할에 긍정적인 측면이 있을 수 있다고 반대했다.
평소 재정부는 언론이나 국회에서 잘못된 정책을 지적하면 자신들은 국회에서 만든 법을 집행하는 기관에 불과하다는 답변을 내놓곤 했다.
그러나 이번 보고서를 보면 그런 것 같지도 않다. 경제 민주화의 흐름속에서 자신의 좌표를 '재벌'방향으로 설정해놓은 소신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보고서 내용의 옳고 그름은 두번째 문제이고 일단 재정부의 주장이 전경련 주장의 복사판같다는 오해를 낳는 것은 공복을 자처하는 엘리트 공무원 입장에서는 달갑지 만은 않을 게다.
야당인 민주통합당 뿐만 아니라 여당인 새누리당 마저 경제민주화를 주요 공약으로 내걸고 있는 것은, 단순히 선거공학적으로 보면 표를 주는 일반 국민들이 원하는 시대의 흐름이 그렇기 때문이다. 양극화, 골목상권 침해, 청년실업, 고령 저출산 등의 시대적 현안을 따질 필요까지 없다.
일각에서는 공무원 세계를 정권 따라 생각이 바뀐다고 해서 ‘영혼이 없다’는 자조 혹은 질타가 나오기도 하는데 이 보고서를 보면 "현 정부의 공무원들은 영혼이 뚜렷한 것처럼 보인다"는 비아냥도 나온다.
하지만 보고서만 보면 이번 대선에서 누가 대통령이 당선돼도 재정부는 심한 곤욕을 치룰 것으로 보인다. 새로 취임한 대통령에게 이 보고서를 올렸다간 호된 질책을 들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등 유력 대선 후보들은 이 보고서와 다소 반댓길을 걷고 있다.
재정부는 지난 총선에서도 각 당의 복지공약에 소요되는 재정을 발표했다가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선거 중립 의무 위반 혐의로 경고를 받은 바 있다.
재정부는 내부 보고서가 외부에 유출된 것에 신경질 내지말고 애초에 보고서가 특정 의도를 설정하고서 혹 만들어지지는 않았는지 한번쯤 자문자답을 해야겠다.
[뉴스핌 Newspim] 곽도흔 기자 (sogood@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