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롬니, 핵심 보수의 가치 구현에 한계 드러내나
'D-53'. 미국 대통령 선거가 7주여 앞으로 다가왔다. 미국은 금융 위기 이후 회복이 주춤한 상황에서 고실업률이 지속되며 민심을 흔들고 있다. 또 과거 감세 정책의 일몰과 재정지출 억제 정책이 겹치는 이른바 '재정절벽(Fiscal Cliff)' 문제는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의 관심사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자 대공황 이래 최악의 시기를 헤쳐온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 가도를 미트 롬니가 추격하고 있는 형국이다. 2012 미국 대선의 구도와 쟁점을 조망해 본다. <편집자 註>
[뉴스핌=유주영 기자] 미국 역사 최초로 흑인 대통령이 된 버락 오바마와 월가 출신의 백만장자 롬니는 그 배경부터 판이하게 다르다.
오바마는 스스로가 ‘서민의 고통을 아는 대통령’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반면 롬니는 자신의 기업창설 경험을 내세우며 ‘미국인이 배워야하는 기본을 거친 사람’으로 자임하고 있다. 오바마는 롬니를 “부자를 위한 정책을 펼 것”이라고 공격하고 롬니는 오바마를 “미국인이 알아야할 것을 전혀 거치지 못했다”고 비난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 [사진=AP/뉴시스] |
오바마는 1961년 미국 하와이에서 케냐 유학생 버락 후세인 오바마와 미국인 캐서린 던햄 사이에서 태어났다. 컬럼비아 대학교와 하버드 대학교 법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이 곳 '하버드 로 리뷰'의 흑인 최초 편집장으로 활동했다. 법학 박사 학위를 따기 전에 시카고에서 지역사회 조직가로 활동했다. 그는 시카고에서 민권 변호사로 일했으며 시카고 대학교 법학대학원에서 1992년부터 2004년까지 헌법학을 가르쳤다.
1997년에서 2004년 사이에 그는 일리노이 상원에서 3선을 했다. 2004년 7월 민주당 전당 대회의 그가 맡은 기조 연설이 황금 시간대에 TV로 방영되는 등 일리노이 출신 상원 의원 선거 유세를 하면서 여러 사건을 통해 그는 전국적인 관심을 끌어 대선 후보로서의 가도를 닦았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의 와중에 공화당 후보인 존 매케인을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돼 2009년 1월 20일 임기를 시작했다. 2009년에는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미트 롬니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 [사진=AP/뉴시스] |
롬니는 디트로이트의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브리경영대를 거쳐 하버드대에서 경영학과 법학을 전공했으며 세계적인 투자 컨설팅회사 베인앤드컴퍼니의 최고경영자(CEO)를 거쳤다.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으로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이끈 뒤 매사추세츠 주지사에 당선되면서 일약 전국구 스타로 발돋움했다. 독실한 몰몬교 신자로 젊은 시절 몰몬교 선교사 생활을 하기도 했다. 2008년 공화당 대선 후보에 나섰다가 고배를 마셨다.
부친 조지 롬니 역시 아메리칸모터스 회장, 미시간 주지사를 역임했으며 1968년 공화당 후보 경선에 도전했다.
롬니의 재산은 8500만 달러에서 2억6400만 달러로 추산되며 미국의 최고부자 3140명 안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한편, 오바마가 출신 의혹 속에서도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되는데 성공했고 위기 상황 속에서 미국적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는데 성공하고 있는 반면, 롬니는 공화당 핵심 보수층에서 약간 비껴난 인물이란 지적이 있다. 월가의 경험도 1류의 경험이라기 보다는 2류 혹은 그 이하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오바마의 연설은 감동을 주는 기질과 실력을 검증 받았지만, 롬니는 자신의 주장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거나 감동을 주는 면이 약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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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유주영 기자 (boa@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