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 Newspim] 오는 17일 ‘그렉시트(Grexit)’ 여부를 판가름할 총선을 앞두고 있는 그리스와 은행권 부실로 구제금융 신청에 나선 스페인 등 유로존 재정위기 여파가 심상찮다.
보수적 시각을 견지할 수밖에 없는 금융당국의 수장마저 최근 “유럽 재정위기는 1929년 대공황 이후 최대 충격”이라는 발언을 내놓는 등 작금의 경제 상황은 살얼음판 위를 걷는 형국이다.
유로존 재정위기가 악화할 경우 국내 경제 전반에도 큰 충격을 줄 것이 분명하다. 이미 각 업계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한 대비에 나서고 있다.
특히 최근 경제위기는 '일본경제 장기불황'의 서곡이나 다름없는 만큼 정부, 기업, 가계 등 모든 경제 주체가 '글로벌 장기불황'에 서둘러 대비해야한다는 게 뉴스핌의 판단이다.
이에 뉴스핌은 ‘유비무환(有備無患)’의 관점에서 최악의 사태를 준비하자는 의미로, 유로존 위기에 따른 국내 금융과 산업 전반에 미칠 영향과 이를 타개하기 위한 당국과 각계의 대응방안 등에 대한 기획시리즈를 마련했다. <편집자註>
[뉴스핌=이기석 기자] 유로존 위기가 스페인의 구제금융 신청 이후 다시 점입가경(漸入佳境)을 이루며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그리스는 지난 5월초 총선거를 치른 이후 좌우파 모두 연정 구성에 실패함에 따라 유로존 탈퇴 문제가 극심한 혼란을 빚는 장본인이 된 상태다.
이런 가운데 그리스가 드디어 오는 17일 2차 총선거를 실시할 예정이어서 스페인의 국채위기로 출렁였던 국내외 불안한 시선이 살얼음판을 걷듯 그리스로 급격히 쏠리고 있다.
이번 17일 치러지는 그리스의 총선거에서는 ▲ 최다 득표를 어느 당이 해서 집권을 할 것인가 ▲ 총선 이후 연정 구성이 가능할 것인가 ▲ 집권 연정이 구성될 경우 정책노선은 무엇이 될 것인가 ▲ 특히 구제금융 조건을 이행할 것인가 ▲ 그리하여 유로존에 잔류할 것인가 탈퇴할 것인가 하는 데 있다.
선거 2주간 여론조사가 공표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지난 1일까지 여론 조사 결과를 보면 긴축안을 찬성하는 신민주당이 3차례 앞섰고, 긴축을 반대하고 유로존 탈퇴 논란을 빚은 급진좌파연합 시리자당이 한번 이긴 바 있다.
만약 구제금융 프로그램 중에서 재정 긴축조건을 충실히 이행하겠다는 친긴축 연정이 구성될 경우 유로존 탈퇴에 대한 우려가 크게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국민들의 불만이나 경제여건 등을 고려할 때 긴축 불이행 위험은 여전하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이다.
◆ 그리스 탈퇴? 유로존 붕괴 리스크, 유럽 단호 조치 촉구 잇따라
이런 가운데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할 경우 유로존 붕괴를 가져올 것이며 유로존의 붕괴 사태는 이탈리아나 독일 같은 중심국들까지 심각한 사태에 직면하게 할 것이라는 경고가 쏟아지고 있다. 특히 유럽 정책지도자들의 신속하고 단호한 조치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는 12일(현지시간)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할 경우 위기전염 리스크가 급상승할 것이라는 경고를 내놨다. 스페인의 신용등급 강등이 구제금융 신청으로 이어진 가운데 이탈리아 등 주변국도 불가피하게 위기에 노출될 것이라는 얘기다.
또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가 가시화될 경우 유럽중앙은행(ECB)가 대규모의 추가 유동성 공급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이탈리아 등으로 퍼진 위기전염 리스크는 독일 등 중심국가들한테도 직격탄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따라 유로존이 경기 급침체의 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라는 최악의 상황에 몰릴 수 있으므로 유럽의 정책자들이 단호하고 신속한 대처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도 유로존의 금융위기 타개를 위해 유럽 정책당국자들이 단호한 조치를 내려야 하며, 공공부채를 줄이기 위한 신뢰성 있는 중기계획을 제시하지 않을 경우 더욱 심각한 조정을 강요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12일(현지시간) 워싱턴 글로벌 개발센터에서 가진 연설에서 “유럽의 지도자들은 수용적인 통화정책, 은행들을 직접 지원하기 위한 공동기금 사용, 재정적으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성장 친화적인 정책 등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닥터둠으로 유명한 미국 뉴욕대의 누리엘 루비니 교수도 독일 빌트지 대담을 통해 그리스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는 것은 유로존 붕괴를 의미하는 것이라며 그리스를 과거 동독에 대해 지원했던 방식으로 유로존에 잔류시키는 쪽이 독일한테 비용을 덜 들이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정부 ‘상시적 위기’ 집중모니터링, 이명박 대통령 "그리스 유로존 탈퇴 대비"
유로존의 위기가 일촉즉발의 상황에 처하게 되고 그리스의 2차 총선이 다가옴에 따라 한국 정부의 위기인식과 대응수위도 한층 높아지고 있다. 유로존 위기가 재발하고 미국 중국 등 세계경제가 둔화되는 우려 속에서 정부의 위기대응 수위를 높인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5일 국무회의에서 "현 상황을 쉽게 생각하지 말라"고 주문했고, 기획재정부는 박재완 장관 주재로 자체 긴급 실물자금시장점검회의를 열면서 실물자금시장에 대한 상시모니터링 체제를 집중모니터링 체제로 강화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 IMF 등 주요 국제기구, 신용평가사와 연락체제를 구축하고 ▲ 국제금융센터 등 활용가능한 정보자원을 총동원해 국내외 실물경제 및 금융상황을 면밀히 점검하는 체제를 마련했다. 또 ▲ 현재 시행하고 있는 컨틴전시플랜을 지속 점검하고 ▲ 필요할 경우 선제 대응을 할 수 있도록 준비태세를 철저히 갖췄다.
정부가 이처럼 유로존 위기에 대해 집중 모니터링 체제를 갖춘 것은 유로존 위기가 단기간에 해결될 사안이 아니라는 점과 더불어 그리스의 2차 총선거를 앞두고 국내외 금융시장의 변동성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재정부 박재완 장관은 지난 7일 위기관리대책회의를 주재하면서 “오늘날의 불확실성은 가끔 발생하는 변수라기보다는 거시환경을 구성하는 상수가 됐다”며 “경제를 안정적으로 운용하는 정부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장관은 최근 유럽재정위기에 따른 세계 경제의 침체 우려에는 "한국경제의 건실함을 바탕으로 모든 경제주체가 자신 있게 대응해야 한다"면서 "위기에 대비해 필요하다면 관계부처간 공조를 통해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명박 대통령은 유로존 위기 대한 집중모니터링 체제 구축보다 한발 더 나아가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탈퇴하는 등 극단적인 상황에 대비하는 위기대응체제를 구축하고 있다고 한 외신과 인터뷰에서 밝혀 주목된다.
또 이 대통령은 유럽연합(EU) 지도자들의 책임이 중요하다며 EU의 대응에 따라 세계경제가 둔화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멕시코 G20 정상회의를 1주일 앞둔 점을 상기시키면서 선진국들이 위기확산을 막기 위해 국가간의 정책조율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12일자 프랑스 르 피가로 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유로존 탈퇴로 이어질 수 있는 오는 17일 그리스 총선에서 세계 경제성장에 새로운 충격이 가해지는 것을 우려한다“며 "한국은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나 스페인 사태 등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대통령은 "2008년과는 달리 선진국들이 조세정책으로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여력이 거의 없어 문제해결이 더욱 복잡해질 수 있다"며 "그리스와 유로존 국가들한테 가장 중요한 것은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재정부의 최상목 경제정책국장은 “유럽의 현재 상황을 보면 유럽연합(EU) 내 정책공조나 글로벌 정책협력이 가시화되고 있지 않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입장에서 글로벌 정책협력을 촉구하는 한편 극단적인 상황에 대비책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부연했다.
[뉴스핌 Newspim] 이기석 기자 (reuhan@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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