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노종빈 기자] 미국 경제에 걸어다니는 시체, 이른바 '좀비(zombie)'들이 활보하고 있어 주의가 요망되고 있다.
무기력하고 무분별한 소비자들을 공포 영화의 좀비로 비유, 경제학에 접목시켜 풀이하는 것으로 유명한 스티븐 로치 예일대 교수는 15일(현지시간) 파이낸셜 타임스(FT) 기고를 통해 이같이 지적했다.
로치 교수의 '좀비학 개론'에서는 "좀비가 나타나면 이는 중요한 사건이 일어날 수도 있는 불안감이 조성된다"고 가르친다.
지난 2008년 초 이후 13개 분기동안 미국 경제에서는 이들 좀비처럼 무기력한 소비자들이 나타나 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강하게 소비 성장세를 갉아먹었다.
이 기간동안 연간 소비 성장은 인플레이션 수치로 보정할 경우 평균 0.5% 수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좀비가 나타난 좋은 예가 일본 경제에서 잃어버린 십년의 고역을 두차례나 겪었던 것을 들 수 있다.
당시 일본 정부와 은행권은 무분별한 대출 확대 정책을 펼쳤고 이로 인해 무기력한 기업들의 구조조정을 지연시켰고 결국 경제의 파국을 피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일본의 생산성 하락은 드라마틱한 좀비들의 결집을 낳았다.
정부 정책적 지원아래 이뤄진 은행 대출로 파산해야 할 기업들이 과도한 노동자들과 잉여 생산설비를 붙잡고 있도록 했다.
결국 이들 좀비 기업들은 버블 직후 일본이 필요로 했던 생기조차 모두 빨아먹었다.
이같은 상황이 버블 이후의 현재 미국 상황에 비교될 수 있다.
자산 위기와 부채 위기의 버블위에 조성된 과잉 소비는 결국 버블의 붕괴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 소비자들은 십년 넘게 지속된 기록적인 소비 몰입에 취해 널부러져 있는 상태다.
하지만 버블로 촉진된 과잉 소비의 숙취에서 헤어나오려면 무척 긴 시간이 걸릴 것이다.
문제는 레버리지 축소와 과잉 채무 변제가 아직도 완전히 시작되지는 않고 있는 것이다.
올해 초 미국 가계별 채무는 가처분 소득의 115% 수준으로 떨어졌다.
지난 1970년대부터 2000년 기간에는 75% 수준이었으나 버블이 붕괴된 지난 2007년부터는 130% 수준으로 급등했었다.
저축 부문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올해 3월과 4월의 가처분 소득 대비 개인 저축률은 4.9% 수준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 2005년 중반 1.2% 수준까지 떨어졌던 것에 비하면 높은 수준이지만 지난 20세기의 마지막 30년간의 8%에 비하면 크게 낮은 것이다.
일본의 금융권과 마찬가지로 미국 정치인들도 경제를 바로잡기 위해 모든 조치를 다 하려고 할 것이다.
연방준비제도는 이미 두 차례의 양적완화를 실시했고 이같은 정책적 지원에 힘입은 주식시장 반등으로 생겨난 재산 효과를 바탕으로 다시 한번 소비자들의 소비를 늘리려하고 있다.
또한 미국 백악관과 의회도 채무 탕감과 주택차압 절차 봉쇄 프로그램 등을 통해 소비 회복을 지원하고 있다.
그 목적은 좀비 소비자들에게 환부를 잊게 하고 소비를 끌어내려 하는 것이지만 이는 거대한 경기침체로 인한 재정 불균형을 회피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시 말해 워싱턴의 정치권은 무분별한 소비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하지만 놀랍지 않게도 미국 소비자들은 이들 정치인들보다는 똑똑한 편이다.
즉 가계 부문은 정치권의 재정 및 통화 정책이 지속가능하지 못한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이에 따라 생계 지원도 단기성에 그칠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저소득 계층, 고실업 및 불충분 고용에 노출된 2400만 미국인들만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는데 밑줄을 긋고 있다.
소비 위축과 레버리지 축소, 그리고 저축만이 유일하게 미국의 좀비 소비자들을 지속시킬 수 있는 옵션이 되고 있다. 이는 노년층이 된 7700만 베이비붐 세대에게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좀비들과 같이 미국의 소비자들에게도 고질적인 약점이 쉽게 종결되지 않는다. 향후 3~5년간은 이같은 고질적인 채무 부담과 저축률 회복이 가능할런지 의심스럽다.
소비는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약 70% 가량을 차지하고 있으며 따라서 미국이 갑작스런 성장해법을 발견하지 않는 한 미국 경제 성장 둔화에 계속 기여하게 될 전망이다.
여기에는 전신마비 증상을 앓고 있는 정치권도 한 몫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글로벌 경제에도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세계 최대 소비자 집단의 갑작스런 몰락과 일본의 취약성, 유럽 채무 위기 등은 수출경제 중심의 국가들에게는 수요처를 잃게 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수 활성화를 통한 경제적 균형을 신속하게 되찾지 않는다면 신흥국들의 성장 신화도 흔들릴 수 있다.
슬프게도 미국의 좀비 소비자들은 과거 일본의 좀비 기업들보다도 경제적으로 더 큰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소비는 전체 GDP의 70%를 차지함과 동시에 지난 1990년대 초 일본 자본소비 규모의 3.5배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버블직후 나타난 좀비의 사례에서 교훈을 찾지 못한다면 미국과 글로벌 경제는 매우 힘겨운 상황을 맞이 할 것이며 금융시장에도 매우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로치 교수는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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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Newspim] 노종빈 기자 (unti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