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김사헌 기자] 지난 주초 브라질 재무장관이 "국제 환율전쟁"이란 표현을 사용한 뒤로 국제기구 및 주요 당국자들 사이에서는 "환율전쟁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논평이 자주 나오고 있다.
하지만 미국 경제 등 선진국 경제가 눈에 띄게 둔화되고 있는 반면 신흥국 경제는 계속 활발한 이상, 하반기 신흥국 통화 절상 속도가 빨라져야 하는데 오히려 느려지고 있는 것은 그 같은 위험을 쉽게 눈감기 힘들게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선진국 경제나 이들의 정책 변화에 따라 발생하는 다양한 정책적 위험을 잘 피해나가지 못한다면 이에 따라 불가피하게 "환율전쟁"이 발생할 수도 있는 위험이 충분하다.
엄밀하게 말해 '정치적 보복'이나 '경제적 복수'가 없다는 점에서 지금 세계 외환당국의 움직임에다 "전쟁"이라는 용어를 동원할 정도는 아니다. 더구나 선진국 경제의 부진과 이에 따른 정책적 과잉대응에 따라 자본이 신흥시장으로 꾸준히 유입되고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정책 당국의 환율 문제에 대한 대응은 납득이 가는 대목도 있다.
문제는 신흥국 정책당국이 당면한 어려움에 있다. 당장 급격하게 유입되는 자본을 억제하면서 또한 긴축정책을 구사하고 나아가 자국통화 가치를 안정시키고자 하는, 이른바 '삼중고(Trilemma)'를 푸는 노력이 요구되는데, 이를 한꺼번에 달성할 수 있는 묘수가 없다.
모간스탠리의 경제전문가 마노지 프라단(Manoj Pradhan)은 지난 8일 제출한 글로벌이코노믹포럼(GEF) 보고서에서 "만약 이 같은 '트릴레마' 속에서 상호 충돌하는 요인들이 좀 더 심화된다면, 정책결정자들이 보다 공격적이고 보복적인 조치를, 따라서 '환율전쟁'과 같은 것을 선택할 여지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 전쟁을 촉발할 수 있는 요인과 관련해 그는 "G10 선진국들의 성장률 쇼크나 신흥시장 경제의 성장률 쇼크 그리고 나아가 이른바 주요 4개국(G4)의 대규모 양적완화 정책 등이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다만 프라단은 모간스탠리 경제팀의 전망으로는 "환율전쟁" 시나리오를 설정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현재 모간스탠리는 ▲ 선진국 경기 침체와 새로운 구제 정책 그리고 신흥국의 리커플링 양상 ▲ 완만한 경제 성장과 온건한 양적완화 정책 ▲ 양적 완화없는 빠른 경제성장 등 3가지 시나리오 중에서도 "미국 경기가 심각하게 하강하지 않은 상황에서 추가적인 양적 완화 정책이 단행되는 것"을 기초 전망으로 삼고 있다고 한다.
이런 경우 신흥시장 경제는 정책당국이 '트릴레마'의 충돌을 잘 헤쳐나가는 이상 당분간 '가장 매력적인 투자처(sweet spot)'로 남을 것이라고 프라단은 예상했다.
프라단은 신흥시장 당국이 과거 말레이시아와 같은 자본통제를 실시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오히려 지금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본통제가 이루어지고 있다면서, 브라질의 채권투자에 대한 세율 배증이나 한국과 인도네시아 등의 외환통제 등을 사례로 꼽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트릴레마'의 첫 번째 희생양은 '통화정책'으로 꼽힌다.
긴축이 필요한 시기에 중앙은행이 금리인상을 연기하고 나아가 평가절상 양상이 지속될 경우 제도적 자본통제보다는 외환시장의 임의 개입을 단행하고 있다. 최근까지 신흥국의 외환시장 개입은 불태화를 통해 외환보유액 증가로 이어지게 되는데, 이는 최근 일본 외환당국이 실시한 일회적인 비불태화 개입과는 대조적인 것이다.
프라단은 "이 같은 불태화 개입은 사실상 비불태화 개입과 같은 보다 공격적인 입장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선전포고과 같은 것이란 지적도 있다"면서, "이 같은 정책적 대응 방식을 쉽게 고치기는 힘들 것 같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