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정국 속에 편입됐던 서울 외환시장의 시계(視界)가 조금씩 확보되면서 방향성을 재탐색하는 국면으로 들어서고 있다. 지난주의 폭등 장세와 같은 흔들림은 일단락된 것으로 진단된다. 일련의 불안감이 채 가시지 않은 측면은 있으나 오버슈팅이후 제자리를 찾아가는 시장 생리가 작동할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 전문가들의 컨센서스는 일단 환율의 '점진적인 하향 안정'으로 귀결되고 있다. 지난주 경험한 사흘간의 폭등에 따른 조정국면에 진입한다는 것. 이같은 예상을 뒷받침하는 요인은 국외적으로는 '글로벌 달러 약세'의 지속, 내부적으로 '달러공급 우위'가 손꼽히고 있다. 특히 이번주 주목해야 할 요인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 이후의 달러 움직임이다. 미국 경제지표와 경기회복 등 펀더멘털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달러화의 궤적을 주목해야 한다. 아울러 국내 외환당국의 '1,170원' 방어 의지에 대한 테스트도 단행될 것으로 보인다. 어느정도 당국도 만족할만한 수준으로 올라선 것으로 관측되는 가운데 하락 기운이 강화될 경우, 어떤 자세를 유지하느냐가 시장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 시장예상환율 1,164.71~1,179.76원뉴스핌(Newspim)이 금융계 외환딜러 및 이코노미스트 17명을 대상으로 환율전망 폴(Poll)을 실시한 결과, 예상 환율의 저점은 단순평균으로 1,64.67원, 고점은 1,179.73원으로 집계됐다. 주중 예상 저점과 고점 가운데 최고치와 최저치를 뺀 나머지 전망치의 평균도 같았다. (※참고: [환율전망표] 주간 환율 전망치)이는 지난주 장중 저점(1,144.80원)보다 높아지고 고점(1,184.40원)은 낮아져 안정세를 찾아갈 것이란 전망. 지난주의 롤러코스터 장세가 다소 진압되면서 방향성을 재탐색하는 기간으로 설정될 가능성이 제기됐다. 조사결과, 아래쪽으로 '1,165~1,166원'까지 하락할 것이란 견해가 6명, 이어 5명이 '1,167~1,168원'까지 하락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1명이 '1,170원'을 하락의 한계로 들어 당국의 낙폭 제한에 따른 더딘 하락이 가장 유력하게 제시됐다. 다만 2명이 '1,160원'을, 나머지 1명은 '1,150원'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지목, 하락 추세가 다시 재개될 수 있다고 지목한 딜러들도 있다. 위쪽으로는 8명의 딜러가 '1,180원'을 이어 4명이 '1,177~1,178원', 2명이 '1,175원'을 상승의 한계로 지목, 물량 부담이 추가 급등을 제한할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각각 1명씩 '1,185원'과 '1,190원'을 고점으로 예상, 지난주 고점을 넘어설 수 있다는 소수의 의견도 있었다. 아직 쉽게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 ◆ 추세 전환여부 '지켜보자', 방향성 탐색최근 추세와 관련, 시장의 답변은 "No Idea"에 가깝다. 환율 하락 추세가 바뀌지는 않았으나 일단 추세의 전진은 주춤한 상태. 지난주 월요일 장중 기록한 1,144.80원이 단기 바닥으로 굳어졌으며 외환당국이 '1,145원'을 강력하게 지지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기술적으로는 지난주 사흘간의 폭등에 따른 조정이 일어난다면 60일선(1,169.80원)과 50% 조정(1,164.60원)이 지지선 역할을 할 가능성도 제기됐다. 위로도 반등이 쉽지 않은 모양새다. 역외의 손절매수가 일단락된 것으로 추정되고 1,180원대 언저리의 매물 부담이 만만치 않기 때문. 이번주는 이래저래 위아래로 막히는 요인들이 있는 가운데 추세 설정보다는 방향성을 좀 더 탐색하는 장세가 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고상준 한미은행 딜러는 "위로 올라갈 요인도 없고 기본적으로 바뀐 것은 없으나 방향성이 헷갈리는 것도 사실"이라며 "결국 방향을 잡아주는 것은 달러/엔이며 달러/엔이 108엔 밑으로 확실히 내려서면 달러/원의 하락 추세도 유효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희준 스탠다드 차타드 딜러는 "이번주는 유심히 봐야 한다"며 "글로벌 달러 방향이나 국내 외환당국의 입장을 재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관망세를 나타내면서 방향을 잡아가는 한 주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반면 JP모건은 지난주 펀더멘털상 원화 강세 추세가 여전하다고 주장했다. 수출 호조, 외국인 주식투자 지속, 아시아 통화 절상 필요 등을 근거로 올해 말 1,120원, 2004년까지 1,000원선까지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 수급상 공급우위, 일련의 역외매수 불안감 수급상 공급우위는 뚜렷해 보인다. "시장이 무겁다"는 것이 시장의 중론. 이는 하향 안정 전망을 뒷받침하는 근거다. 무엇보다 1,180원 언저리에서는 매물 출회의사가 강력하며 최소한 달러를 사야할 이유가 없다고 시장은 읽고 있다. 한주엽 시티은행 딜러는 "한번 더 오를 시도가 있을 수는 있으나 (물량으로 인해) 시장이 무겁다"며 "역외도 급한 매도포지션은 닫은 것 같고 추세가 달러를 사야한다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월말로 차츰 접어들고 있으며 1,180원대에서 명백하게 저항을 확인했다. 업체 네고물량을 비롯 외국인의 주식순매수자금이 출회가 계속될 경우, 환율은 1,170원 붕괴를 시도할 수 있다. 시장에 달러매도(숏)마인드를 다시 강화시키는 변수이며 외국인의 급격한 주식순매도 전환이 아니라면 매물 압박은 환율 하락요인으로 계속 작용할 전망이다. 다만 지난주 시장을 쥐락펴락했던 역외의 손절매수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JP모건은 APEC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실망스런' 발언이 나올 경우, 아직 거대한 주류인 달러 매도초과(숏) 포지션을 정리하기 위한 추가 매수세가 나타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APEC회담에서의 미국이 저자세를 취할 것을 전제로 한 것이라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한편, 론스타의 외환은행 지분 인수대금(1조750억원)은 어느 정도 시장에 소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되도록 시장에 영향을 주지 않는 방향으로 처리하길 바랐던 당국의 의도대로 여러 은행을 통해 분산된 채 처리됐으며 파생상품 시장도 활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 외환당국 vs 시장, "1,170원 접전 예고(?)"이번주 시장과 외환당국간의 일대 접전이 예고되고 있다. 지난달 하순 선진7개국(G7)회담 직전의 수준으로 환율이 오른 데다 추가 급등 또한 바라지 않는 당국의 안심 레벨이 1,170원대로 추정되기 때문. 시장 참가자 중에는 이전 악몽과도 같은 레벨 샅바싸움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일부에서는 달러/엔의 108엔이 무너지지 않으면 당국 개입 등으로 1,170원은 지지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하고 있다. 외국계은행의 한 딜러는 "앞서 1,170원과 1,150원대의 재판이 될 지도 모른다"며 "지난주 후반 1,172~1,173원을 지키려고 애를 쓴 것을 보니 당국은 '1,170~1,185원'을 적당 레인지로 설정한 듯 싶다"고 말했다. '원-엔 디커플링(비동조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지닌 당국을 감안한다면 공격적인 달러매도는 자제될 것이란 전망. 반면 1,170원에 대해 별다른 의미를 둘 필요가 없다고 지적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정인우 도쿄미쯔비시 딜러는 "급락은 없더라도 조금씩 하락세가 강화되면서 '1,170원'은 별다른 의미가 없을 것"이라며 "달러/엔이 아니면 1,180원은 단기 고점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재정경제부는 지난주 노골적인 시장 개입을 하고 있다는 다우존스 뉴스의 칼럼에 대해 반박했다. 재경부가 낸 해명자료는 앞서 역내외 금융회사가 환율의 추가하락을 예상, 막대한 투기적 달러 과매도(숏) 포지션을 보유한 상황에서 달러/엔 상승을 계기로 달러/원 환율이 오르자 숏커버가 촉발되면서 최근의 환율 상승이 나타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우존스 뉴스는 미국 달러 약세의 대상이 중국과 일본에 이어 한국으로 향할 수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최근 한국 정부가 노골적으로 시장에 개입하고 있는 점을 근거로 내세웠다. ◆ 환율전쟁, '현재진행형'미국의 선전포고로 시작된 '환율 전쟁'은 포성은 아직 멈추지 않고 있다. 봉화대에서 여전히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는 것. 부시 미 대통령은 지난주 17일 일본 방문을 시작으로 이번주에도 아시아순방의 연장선상에 있다. 특히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은 주목받고 있다. 이 자리에서는 무역, 테러, 이라크 재건 등이 논의될 예정인데, 환율 또한 빠질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부시의 중국 위안화 압박이 어떻게 드러나게 될 지가 가장 큰 관심사. 일단 지난주말 달러화는 미 경제지표 개선 등에도 불구, 방일중인 부시 미 대통령의 "환율의 시장주의"를 강조한 것이 달러 약세를 유도했다. 부시 미 대통령은 '강달러 정책'의 고수를 확인하면서도 "달러/엔 환율은 시장이 결정해야 한다"고 언급했으며 고이즈미 일 총리는 환율 급변시 개입에 나서겠다는 기존 입장을 유지했다. 시장이 충분히 예견한 수준의 원론적인 언급만 나온 것. 시장 참가자들의 인식은 아직 글로벌 달러 약세가 종결되지 않았다는 방향에 꽂혀 있다. 미 펀더멘털의 개선이 이뤄지고 있지만 쌍둥이 적자 등 구조적인 문제의 해결은 아직 요원한데다 고용시장 개선에 대한 확신이 불분명하다.김영준 동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달러의 추세 전환은 내년 2분기 이후 나타날 것"이라며 "미국이 잠재성장률(3.5%내외)이상의 높은 성장을 3분기 연속 달성하고 고용도 본격적으로 회복세를 나타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번 APEC회담 등에서 환율 문제가 논의되겠지만 시장에 충격을 줄만한 언급은 없을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논의 가능한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시장에 반영된 상태며 원론적인 수준 이상으로 환율 문제가 거론되는 것은 서로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적정선에서 타협을 보는 국제사회의 공감대가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 즉, 미국은 달러가치가 서서히 떨어지는 정도를, 아시아 국가들은 시장 개입을 통해 자국통화의 가치가 급속하게 절상되는 것을 막는 선의 '교통정리'가 무난해 보인다. 미국 경제전망에 대한 낙관론 확산과 관련, 정미영 삼성선물 과장은 "미 경제지표 호전으로 달러 약세 심리가 완화되고 달러가 반등을 시도할 수 있다"면서도 "아시아통화는 미 경제 호조의 직접적인 수혜를 입는 만큼 아시아통화에 대한 미 달러 상승은 제한적"이라고 전망했다. [뉴스핌 Newspim] 이김준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