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PU·데이터·모델 선점…민간은 응용 집중
속도 앞섰지만 인프라·에너지는 다음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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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뉴스핌] 김기랑 기자 = 인도의 인공지능(AI) 생태계가 '속도전'으로 판을 흔들고 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중위권이던 인도는 글로벌 AI 경쟁에서 한국을 제치고 세계 3위로 뛰어올랐다. 정부가 컴퓨팅 자원과 데이터를 선제적으로 깔고, 민간이 그 위에서 응용과 확산을 맡는 국가 주도 모델이 단기간에 성과를 냈다는 평가다.
이 같은 흐름은 AI 경쟁의 초점이 '기술 보유'보다 '생태계 조성 속도'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은 AI 인재와 기초 기술에서는 여전히 강점을 갖고 있지만, 인프라·데이터·에너지까지 아우르는 종합 전략 없이 개별 기술 지원에만 머물 경우 점차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 2년 만에 12위→3위…'활동성'으로 도약한 인도
지난 10일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발표한 '인도 AI 미션 추진 현황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인도는 국가 주도의 '인도 AI 미션'을 통해 컴퓨팅·모델·데이터·인재를 아우르는 AI 생태계를 구축하며 세계적 AI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스탠퍼드대 인간중심AI연구소(HAI)가 집계한 '글로벌 AI 활동성 지수(Global AI Vibrancy Index 2024)'에 의하면 인도는 미국(1위)과 중국(2위)에 이어 세계 3위를 기록했다. 2022년 12위 수준에서 불과 2년 만에 9계단을 뛰어올라 한국(4위)을 앞선 것이다.
부문별로 보면 인도의 강점과 한계가 동시에 드러난다. 연구·개발(R&D)과 인재 부문은 최상위권이지만, 인프라와 정책·거버넌스 부문은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AI 활동은 폭발적으로 늘었지만, 이를 안정적으로 뒷받침할 물리적·제도적 기반은 취약하다는 의미다.
인도 정부는 이런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2024년부터 국가 차원의 종합 전략인 인도 AI 미션을 가동했다. 고성능 컴퓨팅 자원 확보부터 자체 AI 모델 개발, 데이터 플랫폼 구축, 인력 양성까지 AI 생태계 전반을 한 번에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 GPU 3만8000개 확보…'국가'가 깔고, '민간'이 쓴다
인도 AI 미션의 가장 눈에 띄는 성과는 컴퓨팅 자원이다. 지난해 말 기준 인도는 GPU 3만8000개를 확보했는데, 이는 당초 목표(1만개)를 크게 웃도는 규모다. 정부가 민간 클라우드·데이터센터 사업자를 통해 GPU를 확보하고, 시간당 이용료를 보조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시간당 2.5~3달러 수준인 GPU 임대료를 약 0.78달러까지 낮췄다.
이와 함께 인도 정부는 자국 데이터와 언어에 특화된 파운데이션 모델을 개발할 12개 기업을 선정했다. 공공·비개인 데이터를 개방한 국가 데이터 플랫폼 'AIKosh'에는 20개 부문·5500개 데이터셋과 251개 AI 모델이 공개됐다. 의료·농업·기후·행정 등 사회 문제 해결형 AI 응용 프로젝트도 잇따라 추진되고 있다.
이런 구조의 핵심은 역할 분담이다. 국가는 GPU·데이터·기본 모델이라는 기초 인프라를 먼저 깔고, 민간은 그 위에서 서비스와 응용 기술을 경쟁적으로 개발한다. AI를 특정 산업 육성 정책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생산성과 포용성을 끌어올리는 국가 발전 수단으로 설정한 점도 특징이다.

◆ '속도'는 이미 확보…다음 단계는 '에너지·공급망'
다만 인도의 AI 미션이 중장기적으로 안착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옥스퍼드 인사이트의 '정부 AI 준비 지수(2025)'에서 인도는 종합 27위에 머물렀다. 정책 의지는 높지만, 산업 생태계 성숙도와 사회적 수용 기반은 여전히 약하다는 분석이다.
특히 에너지 문제가 부상하고 있다. 최근 인도에는 글로벌 빅테크의 대규모 데이터센터 투자가 몰리면서 전력과 수자원 부담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인도는 향후 2년 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시장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AI 인프라 확대 속도를 에너지·환경 인프라가 따라가지 못할 경우, 성장의 병목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핵심 연산 자원과 반도체 공급망의 해외 의존도도 변수다. 인도는 GPU와 고대역폭 메모리(HBM)를 대부분 해외 기업에 의존하고 있어, 글로벌 통상 환경이나 기술 규제 변화가 AI 생태계 안정성에 직접적인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 단기간의 접근성 확대가 중장기적인 공급망 자립으로 이어지지 못할 경우, 인도의 AI 속도전 역시 외부 변수에 흔들릴 가능성을 안고 있다는 평가다.

◆ 韓에 남긴 시사점…양국 간 '파트너십' 구축 필요
인도의 AI 미션은 한국에 '한–인도 기술경제안보 파트너십'의 실질적 필요성을 분명히 드러낸다. 한국은 AI 알고리즘과 응용 기술, 반도체, 신재생·원전 등 에너지 분야에서 높은 기술 성숙도를 갖고 있으나 내수 시장 규모와 인력 풀에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 반대로 인도는 방대한 인구와 데이터 등을 바탕으로 AI 확산 속도는 빠른 반면 고성능 연산 인프라와 전력·에너지 기반, 첨단 반도체 공급망에서는 취약한 구조를 안고 있다.
이런 상호 보완성은 경쟁보다 '전략적 분업을 전제로 한 협력 모델'을 현실적인 선택지로 만든다. 인도가 추진 중인 AI 생태계 구축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AI 모델 자체보다 이를 떠받치는 컴퓨팅 인프라, 에너지 공급, 반도체 조달 체계다. 이 지점에서 한국이 강점을 가진 기술·에너지·반도체 역량을 인도의 수요와 연결하는 양국 간 파트너십은 단순한 산업 협력을 넘어, 글로벌 AI 공급망 재편 속에서 공동의 전략적 입지를 확보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특히 데이터센터 확산에 따른 전력·수자원 부담이 인도의 AI 성장의 핵심 제약으로 떠오른 만큼, 신재생 에너지와 원전 운용 경험을 모두 갖춘 한국은 인도의 AI 인프라 확장 과정에서 안정적 에너지 파트너로 기능할 여지가 크다. 여기에 고대역폭 메모리(HBM)를 포함한 첨단 반도체 공급망 협력까지 결합될 경우, AI 경쟁은 기술 격차가 아니라 공급망 안정성과 에너지 지속 가능성의 문제로 재정의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인도의 '속도전'은 한국에 선택을 요구한다. AI를 개별 기술 육성 정책으로 다룰 것인지, 아니면 기술·에너지·반도체를 묶은 기술경제안보 전략으로 격상할 것인지다. 이에 한–인도 기술경제안보 파트너십은 인도의 AI 부상을 따라잡기 위한 대응이 아닌, 글로벌 AI 질서 재편 국면에서 한국의 역할을 확장할 수 있는 전략적 카드로 평가된다.
■ 한 줄 요약
인도는 국가 주도의 '속도전'으로 AI 생태계를 단기간에 키웠고, 한국에는 기술·에너지·반도체를 묶은 '한-인도 기술경제안보 파트너십' 전략이 필요하다는 시사점을 남겼다.
rang@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