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뉴스핌] 권지언 특파원 = 미국이 부과한 관세의 비용을 외국이 떠안고 있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과 달리, 실제 부담의 거의 전부가 미국 소비자와 기업에 전가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재정 수입 확대와 외교·지정학적 압박 수단으로 적극 활용해 온 가운데, 이 같은 분석은 무역 전쟁의 실질적 비용 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특히 최근 그린란드 매입을 둘러싸고 유럽을 상대로 고율 관세를 위협하는 국면에서, 관세가 외국이 아닌 자국 경제에 더 큰 부담을 준다면 협상 카드의 실효성이 약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 "관세 96%는 미국 몫"
19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독일의 대표적 싱크탱크인 킬 세계경제연구소(Kiel Institute for the World Economy)가 발표한 보고서를 인용해, 미국의 관세 인상 비용 가운데 96%를 미국 소비자와 수입업체가 부담했고, 외국 수출업체가 가격 인하로 흡수한 비중은 4%에 불과했다고 전했다.
연구진은 2024년 1월부터 2025년 11월까지 약 4조 달러 규모의 교역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년간 관세를 재정 수입 확대와 외교 정책 수단으로 활용하며 "외국이 비용을 부담한다"고 반복 주장해온 논리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번 연구 결과는 예일대 예산연구소(Budget Lab)와 하버드비즈니스스쿨(HBS) 경제학자들의 최근 분석과도 같은 흐름이다. 이들 역시 관세 비용의 대부분이 외국 생산자가 아닌 미국 내에서 흡수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킬 연구소는 관세가 외국 생산자에게 부과되는 세금이라기보다는 미국인에게 부과되는 소비세로 기능했다고 평가했다.
공동 저자인 독일 빌레펠트대의 율리안 힌츠 교수는 "관세를 통해 외국이 미국으로 부를 이전한다는 개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힌츠 교수는 미국이 지난해 관세 인상으로 추가로 확보한 약 2,000억 달러의 세수 역시 거의 전적으로 미국인이 부담한 것이라며, 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미국 내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 그린란드 압박 카드 흔들?…"협상력 약화 우려"
이번 연구 결과는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 정책이 다시 국제 금융시장의 주요 변수로 떠오른 상황에서 나와 눈길을 끈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은 그린란드 매입을 관철하기 위한 압박 수단으로 유럽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를 위협하고 있는데, 캐피탈 이코노믹스는 이러한 관세가 실제로 시행될 경우 유로존 경제 성장률이 0.2~0.5%포인트 하락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관세의 실질 부담이 미국 내부로 귀결될 경우, 이러한 압박 전략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관세는 교역 물량에도 이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관세 인상에 직면한 인도 수출업체들은 가격을 유지한 채 미국으로의 수출 물량을 18~24% 줄였다. 이는 유럽연합(EU), 캐나다, 호주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큰 감소폭이다.
연구진은 외국 생산자들이 가격을 낮추지 않는 이유로 ▲이미 다른 국가에서 새로운 판로를 확보했을 가능성 ▲최종 관세 수준이 변동될 수 있다는 관망 심리 등을 제시했다.
일부 품목에서는 관세율이 50%를 넘어 수익성 자체가 사라졌기 때문에 아예 판매를 중단하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가능성도 언급됐다.
다만 관세 부담의 주체는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질 여지도 있는데, 힌츠 교수는 미국 기업들이 대체 공급처를 확보하게 될 경우, 해외 수출업체들이 관세 비용을 더 많이 떠안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kwonjiun@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