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양섭 산업부장 = 최근 환율이 가파르게 올라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정부와 한국은행이 이 사안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증권사 최고경영자(CEO)들을 불러 외환시장 동향을 점검하고, 서학개미의 해외투자 증가가 원화 약세의 한 요인이라고 지적하는가 하면,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속도 조절 문제까지 언급됐다. 서학개미 과세 강화 여부에 대한 질문에 구윤철 경제부총리가 "여건이 된다면 얼마든지 검토할 수 있다"고 밝히는 등, 정부 대응의 중심에는 '달러 수요 억제'가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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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수출기업의 환전 관행과 해외투자 흐름을 정기 점검하겠다는 방침도 내놓았다. 수출기업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달러를 언제, 얼마나 원화로 바꾸는지 들여다보고, 해외투자 규모와 비중까지 모니터링하겠다는 것이다. 달러 기근 속에서 기업들이 대미 투자 부담을 앞두고 달러를 쟁여두고 있으며, 이로 인해 외환시장의 불안이 가중된다는 판단이 깔린 조치다. 그러나 이는 환율을 결정하는 구조적 요인보다 기업의 환전 타이밍이라는 '행태적 변수'를 문제 삼는 접근으로, 결국 또 다른 책임 전가 논란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기업이 달러를 보유하는 이유는 불확실한 정책 환경과 높은 금리차, 대규모 해외 투자 의무 등 구조적 요인이 명확한데, 이를 마치 '기업의 보유 행태 탓'으로 돌리는 것은 본질을 비켜간 해석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발언도 논란을 더 키웠다. 그는 "이번 고환율은 한·미 금리차 때문이 아니라 해외주식 투자 급증 때문"이라며, "젊은 사람들이 쿨하다고 해외주식을 사는 독특한 상황"이라고 했다. 해외투자를 유행이나 쏠림으로 규정하는 시각은 고환율을 만들어낸 구조적 문제를 '증상'으로만 해석하는 셈이다. 실제로 해외투자 증가는 원화 가치가 하락하는 국면에서 국민이 체감적으로 위험을 인식한 뒤 내린 방어적 선택이며, 환율을 움직인 '원인'이 아니다. 청년층이 해외로 자산을 옮기는 것도 '힙해서'가 아니라 원화 가치 급락 속에서 자신의 부를 지키기 위한 '절박한' 대응이라는 분석이 훨씬 설득력이 크다.
특히 지난 3~4년 동안 한국의 광의통화(M2)는 미국·유럽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증가했고, 풀린 유동성은 생산적 투자보다 부동산·자산 시장으로 몰리며 극심한 자산 편중을 낳았다. 강남 집값은 이미 일반 가계가 접근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이탈했고, 1달러를 바꿀수 있는 원화 가치는 1100원대 초반에서 1470원대까지 떨어졌다. 중산층과 청년층은 원화를 들고 있는 것만으로 '상대적 빈곤'으로 밀려나는 박탈감을 경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해외자산으로 피신하려는 개인의 선택을 문제 삼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원화를 신뢰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든 쪽은 개인이 아니라 정책이다.
환율은 기본적으로 금리의 함수다. 한·미 금리차는 1.50%포인트까지 벌어져 외국인 자금의 국내 유입을 제약하고 있으며, M2 증가율은 장기 평균의 두 배에 달해 원화 가치 하락 압력을 키우고 있다. 여기에 한·미 관세협상 이후 매년 최대 2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의무가 더해지며 달러 수요는 구조적으로 확대됐다.이러한 구조적 요인을 외면한 채 기업과 개인들의 해외투자를 지목하는 것은 문제의 핵심에서 멀어지는 해석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속이나 경고가 아니라 구조적 처방이다. 무엇보다 당국은 '무엇이 통제 가능한 영역이고 무엇이 구조적 한계인지'를 명확히 공개해 정책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국민이 안전하게 원화를 보유하고 장기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가장 근본적인 환율 안정책이다.
경제정책은 결국 신뢰의 문제다. 핵심을 외면한 채 주변부만 억누르는 방식으로는 환율 안정은커녕 더 큰 불안정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정책의 골든타임을 놓치기 전에 정공법으로 돌아가야 한다. 금리·통화·재정·대외구조라는 본질적 요인을 정면으로 다루지 않는다면 지금의 환율 불안은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하다.
ssup825@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