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가 4일(현지 시간) 다시 한 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상대로 강하게 날을 세웠다.
트럼프 대통령의 백악관 재입성 이후 거의 모든 이슈에서 대립각을 세우면서 중도 좌파를 중심으로 한 국내 지지세력을 끌어모으는 정치적 계산을 철저히 실행하고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산체스 총리는 이날 대국민 연설을 통해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을 비판하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경제 보복 위협에도 불구하고 스페인은 이란 압박에 동참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일부의 보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세계에 해로운 일에 공범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첫 공격을 가한 이들의 목표가 무엇인지조차 분명하지 않다"고도 했다.
이에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백악관에서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와 회담한 뒤 기자들에게 "스페인은 끔찍하게 행동했다. 우리는 스페인과 그 어떤 일도 하고 싶지 않다"면서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에게 스페인과이 모든 거래를 끊으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미국이 이란을 공격할 때 스페인 내 기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요청했지만 스페인이 이를 거부한 데 따른 것이었다.
스페인은 그동안 주요 외교·안보 이슈에서 트럼프 행정부와 계속 부딪쳤다.
지난해 6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 중 유일하게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5%로 늘리라는 트럼프의 요구를 단칼에 거절했다. 산체스 총리는 국방비 대폭 증액이 "우리의 세계관과 양립할 수 없다"고 말했다. 스페인을 제외한 유럽의 모든 나토 회원국은 국방비 증액을 약속했다.
당시 트럼프는 스페인을 "끔찍하다(terrible)"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무임승차를 원한다. 나는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무역에서 그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베네수엘라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납치했을 때에는 "정글의 법칙을 조장하는 끔찍한 선례"라고 했다.
이어 지난 2월 초에는 NYT에 기고를 통해서 "서구 사회는 이민을 수용하지 않으면 몰락할 것"이라며 트럼프 행정부의 반이민 정책을 비판했다.
스페인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산체스의 이 같은 행보가 국내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려는 전략이라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스페인 국민들의 절반 이상은 산체스를 비호감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가 속한 중도좌파 집권여당 사회노동당(PSOE)은 의회 내 과반 의석에 미치지 못해 소수 내각으로 운영되고 있고, 최근 몇 년 동안 예산안을 제 때 통과시키지 못하고 있다.
또 스페인 정부는 각종 부패 스캔들에 시달리면서 지방선거에서 패배를 거듭하고 있다.
스페인 매체인 엘 콘피덴시알의 칼럼니스트 라몬 곤살레스 페리스는 "스페인이 기지 사용을 불허한 데 대한 트럼프의 반응과 그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은 정확히 산체스 총리가 원했던 것"이라며 "그는 트럼프와 공개적인 대립을 만들려고 해 왔다"고 했다.
정치분석가 파블로 시몬은 "산체스 총리가 스페인 내 정치적 지렛대를 확보하기 위해 외교 정책에 의존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좌파 진영에서는 그에 대한 지지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탈리아 좌파 시사주간지 레스프레소는 그를 '2025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고, 영국의 좌파 성향 잡지 뉴스테이츠먼은 그를 '좌파의 아이콘'이라고 했다.
NYT는 "지난 1년 이상의 기간 동안 산체스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에 맞서는 유럽 좌파 저항의 지도자로 자리매김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산체스 총리가 이 같은 트럼프 비판을 거칠게 이어갈 경우 실제로 미국의 경제 압박이 현실화되면서 스페인 경제가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스페인 중도우파 야당인 국민당의 알베르토 누녜스 페이호는 "산체스 총리가 국내에서 몇 표를 얻으려다 우리 안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며 "자신의 국내 정치적 이익을 위해 스페인의 국제적 명성을 훼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민당은 지난 2023년 실시된 총선에서 원내 1당을 차지했지만 과반 달성과 연정 구성에 실패하면서 집권에는 이르지 못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