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그리스 정부가 출산율 급감과 고령화 등 심각한 인구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총 16억 유로(약 2조6000억원) 규모의 세금 감면·출산 장려 대책을 내놓았다. 이번 세금 개혁안은 지난 1980년대 이후 가장 대담한 세제 변화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럽연합(EU)의 공식 통계기관인 유로스타트(Eurostat)에 따르면 그리스의 인구는 지금 추세가 계속된다면 현재 1020만명에서 오는 2050년 800만명으로 줄어들고, 그중 65세 이상이 전체의 36%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지난 2023년 기준 그리스의 합계출산율은 1.26명으로 EU 27개 회원국 중 세 번째로 낮은 수준이다. 몰타가 1.06명으로 가장 낮고, 스페인은 1.12명이다. 인구가 줄지 않는 대체 수준은 2.1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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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가 지난 6일(현지시간) 파격적인 세게개혁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는 6일(현지시간)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낮은 출산율은 국가적 위협"이라며 "전례없는 인구통계학적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파격적인 세제 개혁안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기가 없을 때와 두세 명의 아기를 낳을 때의 생활비는 전혀 다르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며 "국가 차원에서 출산이라는 선택을 하는 국민들에게 보상을 제공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세제 개편안은 내년부터 시행에 들어갈 예정이다. 미초타키스 총리는 "강력한 경제 성장과 예상을 뛰어넘는 예산 흑자, 보다 포괄적인 세금 징수가 이번 세금 감면안을 추진할 수 있는 재정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세제 개편안에 따라 그리스 국민은 자녀가 있든 없든 모든 소득세 구간에서 세율이 2%포인트 인하된다. 특히 자녀가 4명 이상인 경우에는 소득세가 전액 면제되고, 25세 이하이면서 소득이 2만 유로(약 3260만원) 이하인 경우에도 소득세가 면제된다.
25~30세 청년층의 경우 소득세율이 기존 22%에서 9%로 낮춰지고, 소득이 4만~6만 유로 사이의 중산층에는 최고세율이 기존 44%에서 39%로 인하된다.
그리스 정부는 인구 정책과 더불어 주거 문제 해결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버려진 군사 부지를 활용해 청년용 임대 주택을 공급하고, 세제 인센티브로 청년층의 귀농·귀촌을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인구 1500명 이하의 농촌지역 주민에게는 부동산세를 면제 또는 일부 감면하고, 주민이 2만명 이하인 섬지역 주민에게는 부가가치세(VAT)를 30% 낮춰주기로 했다.
미초타키스 총리는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곧 경제 성장과 국가 생존의 길"이라고 말했다.
그리스의 출산율 감소와 인구 위기는 지난 2009년 말 본격화한 재정위기 이후 가속화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리스는 국가 부도 사태에 몰리자 2010년부터 EU와 국제통화기금(IMF) 등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았다.
이 시기에 50만 명 이상이 해외로 떠나며 '두뇌 유출' 현상까지 겹쳤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그리스는 국제 사회의 구제 자금 지원을 받는 대가로 강력한 긴축 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었고 이때 젊은층이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며 "거의 10년간 계속된 경제위기가 출산율 급락의 원인이 됐다"고 말했다.
미초타키스 총리는 집권 2년차이던 지난 2020년 출산장려금 제도를 도입했다. 첫 아기 출산 때 1700 유로, 넷째 아기 출산 때 3500 유로를 주고, 자녀 한 명당 월 최대 140유로의 수당도 신설했다.
하지만 정책의 효과는 크게 나타나지 않았다. EU에서 임금이 가장 낮은데다 생계비까지 치솟았다.
로이터 통신은 "그리스는 여전히 유럽에서 가장 빚이 많은 나라이며 에너지와 식품, 주택 가격이 상승해 구매력이 떨어지면서 가처분소득은 여전히 EU 평균보다 낮다"고 말했다.
한편 그리스 정부는 새 학기를 맞아 학생 수 부족으로 초·중·고교 766곳의 문을 닫았다. 전국의 학교 1만4857곳 중 5%가 넘는 수치다. 그리스 교육부에 따르면 그리스의 초등학생 수는 지난 7년 동안 11만1000명 이상 줄었다. 지난 2018년에 비해 19% 감소했다.
중도우파 신민주당 소속인 미초타키스 총리는 지난 2019년 총선을 통해 집권에 성공했다. 당시 신민주당은 경제 성장의 성과를 보다 균등하게 재분배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워 41%를 득표했다.
하지만 생활비 상승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과 2023년에 57명의 사망자를 낸 열차 충돌 사고 등으로 지난 6월 이후 지지율은 22~25% 수준으로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