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vs 영풍, 원색적인 비방전으로 번진 여론전
75년 동업 후 승자의 저주로 결론나지 않게 '잘 이별해야'
[서울=뉴스핌] 조수빈 기자 = 아름다운 이별은 없다. 그것이 75년 동업의 결과물일지라도.
이번 고려아연과 영풍의 이별은 그야말로 세기의 여론전을 중심으로 흘러갔다. 추석 연휴와 주말 밤낮없이 서로를 비방하는 자료가 쏟아졌다. 두 기업은 각자의 미래를 위해서 갈라서기를 선택했지만 공개 매수 발표 이후 3주 가량이 지난 지금은 '누구에게 책임이 있느냐'를 묻기 급급한 모습이다.
조수빈 산업부 기자 |
최근에 끝난 드라마 '굿파트너'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나온다. 이혼 재판에서는 조정위원회를 통해 중재 절차를 진행하며 여기서 합의에 이르면 합의 이혼을, 합의를 하지 못하면 재판이혼으로 넘어가게 된다. 중재 절차에서도 서로를 비난하기 바쁜 부부의 모습에 영풍과 고려아연의 모습이 스쳐지나간다.
'누구의 잘못인가'
갈등의 시작점부터 양측의 해석이 다르다. 우선 영풍은 2022년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부임한 이후부터 갈등이 시작됐다고 봤다. 최 회장은 새로운 성장 동력인 신재생에너지, 이차전지 소재 등을 미래 먹거리로 삼는 '트로이카 드라이브' 사업을 토대로 고려아연을 한 단계 성장시키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최 회장은 현대차, 한화그룹, LG화학 등 다른 대기업들과 유상증자 또는 자사주를 교환하는 방식으로 투자 자금을 확보했고 이 방식에서 고려아연과 영풍이 부딪히기 시작했다는 것이 영풍의 설명이다.
반면 고려아연은 영풍이 산업폐기물을 고려아연에 떠넘기면서 감정의 골이 깊어지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석포제련소에는 50년 동안 제련업을 하면서 쌓인 폐기물 저장소가 있는데 당시 장형진 고문이 이 폐기물 처리를 고려아연 온산 제련소에서 해결하고 싶어했고 최윤범 회장이 이것을 막으면서 영풍과 본격적으로 갈등이 깊어졌다는 것이다.
양사의 여론전은 허위사실 사주까지 운운하며 상당히 격화된 상태다. 외신 역시 이번 경영권 분쟁을 주의깊게 지켜보고 있는 만큼 이러한 소모적인 여론전은 고려아연의 브랜드 이미지에도 결코 좋은 일은 아니다. 경영권 확보가 당장 급한 목표라고 해도 이럴 때일수록 본질을 잃으면 안된다.
이별 후에 오는 것들에 더욱 집중해야 할 때다.
지분 다툼에 들어가는 돈만 양측이 합쳐 약 5조원에 달한다. 누가 고려아연의 경영권을 갖게 되든 후폭풍은 불가피하다. MBK파트너스는 NH투자증권과 영풍으로부터 약 1억8000억원을 이율 5.7%에 9개월 만기로 차입했다. 만기가 돌아오는 내년 6월까지 내야 하는 이자만 700억원대다. 최 회장 역시 자사주 매입이든, 대항공개매수든 추가적인 대응을 위해 2조원에 달하는 실탄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느 쪽이 경영권을 갖게 되든 약 반 년 간 흔들렸던 고려아연의 정상화를 이루어내는 것은 또 다른 과제로 남는다. 이른바 승자의 저주다. 승자의 저주란 기업 인수·합병(M&A)에서 기업이 과도한 금액을 지불하고 인수한 후 실질적인 이익을 얻지 못하는 상황을 일컬어 '이겼지만 이긴 게 아닌 상황'을 가리킨다.
고려아연이 경영권을 잡게 될 경우 지분 다툼을 위해 투자된 돈을 어떻게 다시 회수하느냐가 관건이다. 이번 투자금은 고려아연의 미래를 위해 투자할 수 있는 재원이라는 점에서 최 회장 역시 출혈을 감안하고 자금을 유치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30%가 넘는 영풍의 지분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제2의 MBK가 등장할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영풍과 MBK파트너스가 경영권을 확보할 경우는 더 우려가 크다. 앞서 고려아연 기자회견에서 이제중 부회장을 비롯한 핵심 인력들은 영풍과 MBK파트너스 연합이 경영권을 잡으면 전원 사표를 내겠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여줬다.
영풍 연합의 고려아연 경영권 확보 이후 고려아연 임직원에 대한 안정성, 중국 매각 등 MBK파트너스가 진행했던 과거의 인수 사례를 토대로 한 우려도 끊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비철금속 제련 비전문가인 금융자본이 회사의 경영권을 가져갔을 때 고려아연의 현재 경쟁력이 흔들릴 수도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드라마 굿파트너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이혼은 결혼의 끝이지 관계의 끝은 아니잖아."
헤어짐이 모든 것의 끝이 아니다. 둘 싸움에 등 터지고 있는 고려아연이 너무 많은 상처를 입지 않도록 이별 후에 오는 것들을 돌이켜 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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