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부인 중 1명 사망시 남은 배우자가 상속세 내
미국·영국·프랑스 등 상속세 제도 국가도 배우자는 면세
[서울=뉴스핌] 한태봉 전문기자 = 남편과 부인 중 1명의 배우자가 사망했을 때 남은 배우자에게 상속세를 부과하는 게 과연 정당한 걸까? 최근 배우자에 대한 상속세 부과를 폐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뜨겁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상속세 제도가 있는 국가에서조차 배우자 상속세는 전액 면제이기 때문이다. 아예 상속세 자체를 폐지한 나라도 많다.
우리나라는 배우자가 사망하면 남편이든 부인이든 어느 한쪽은 상속세를 내야한다. 다만 여성이 남성보다 수명이 길고 남편 명의로 재산을 등록한 경우가 많아, 배우자 상속세 부과 문제는 여성한테 불리한 사례가 많다.
◆ 앞뒤 안 맞는 이혼 재산분할과 배우자 상속세
그런데 왜 선진국들은 배우자에 대한 상속세를 부과하지 않는 걸까? 배우자를 상속재산의 공동 소유자로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배우자마저도 상속재산을 이전 받는 피상속인으로 보는 게 선진국과의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게다가 한국의 증여∙상속세 최고과세율은 무려 50%로 OECD 국가 중 일본의 55%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상속세의 근본취지는 '부의 대물림을 막아 자산 불평등을 완화하고 기회의 평등을 강화'하는 데 있다. 부자 아빠에게 상속받은 재산은 '불로소득'이라는 개념이다. 따라서 세대 간의 부가 이전되는 자녀에 대한 상속세 부과는 꼭 필요하다. 단지 얼마나 적절한 세율을 적용하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그런데 한국의 배우자에 대한 상속세 부과는 그 논리 자체가 상당히 부실하고 상식에서 벗어난다. 실질적으로 남편이나 부인의 '상속재산'은 '혼인 중에 부부간의 협력으로 이룬 공유재산'인데도 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민법 제 829조의 '부부 별산제'를 적용해 배우자에게도 상속세를 부과한다.
반면 이혼 시에는 이 '부부 공유재산'이 애초부터 증여세 과세대상에서 제외된다. 따라서 남편과 부인이 절반씩 나눠 갖더라도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다. '재산을 이전한다는 개념'보다는 '원래의 각자 몫을 분할한다는 개념'에 더 가깝다.
부부는 사실상 경제공동체다. 이미 두 사람이 오랜 시간 같이 생활을 영위하며 늙어가다가 1명이 먼저 사망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부부 별산제'를 적용해 배우자에게 상속세를 부과하는 제도는 비합리적이다. 이혼 시의 재산분할제도와 비교하면 형평성에도 어긋나고 앞뒤도 맞지 않는다.
◆ 배우자 상속세율도 최고 50%? 이중과세도 문제
특히 배우자 상속세의 문제는 자녀 상속세율과 동일하게 최고 50%의 상속세율을 적용한다는 점이다. 물론 배우자는 법정 상속비율 한도 내에서는 최대 30억원까지 공제가 가능하다. 바로 '배우자 인적 공제 제도(5억~30억원)' 덕분이다.
하지만 이는 무려 28년 전인 1996년도에 결정된 금액이다. 과거에는 큰 공제액이었지만 지금 시대에는 맞지 않다. 28년 전의 30억원과 인플레이션으로 화폐가치가 폭락한 지금의 30억원은 가치가 크게 다르다.
예를 들어 보자. 만약 아무것도 없이 시작한 부부가 합심해서 100억원의 재산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면 이 재산은 모두 남편의 것일까? 설사 명의는 남편으로 돼 있다 하더라도 사실상 부부공동재산으로 봐야 한다. 그런데 만약 남편이 100억원을 남기고 사망하게 된다면 상속세를 얼마나 내야 할까?
피상속인이 2명(부인과 자녀 1명)인 경우 배우자와 자녀가 법정 상속비율대로 60%와 40%의 비율로 상속받는다면 최종 상속세는 약 27억1000만원이 부과된다. 배우자공제를 활용해 상속세를 최대한 줄인 게 이 정도다.
그런데 예시처럼 배우자 법정상속비율을 최대한 활용했을 때의 문제점은 바로 이중과세다. 이미 1차적으로 막대한 상속세를 낸 부인마저 10년 뒤에 사망할 경우 남은 자녀에게 또 다시 고율의 상속세가 부과된다.
이런 이중과세 문제를 피하고자 부인이 애초에 상속 받을 때부터 본인 몫을 충분히 챙기지 못하고 자녀에게 합의상속 비율을 더 높여주는 경우도 많다. 만약 부인이 상속재산 100억원의 법정상속비율 60%의 절반인 30%만 상속받고 나머지 70%인 70억원을 자녀에게 상속할 경우 이중과세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된다.
그런데 이중과세를 피하기 위해 자녀에게 상속재산을 법정상속비율보다 더 많이 몰아줄 경우 홀로 남은 남편이나 부인의 평안한 노후생활을 위협받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공동으로 노력해 재산을 형성한 배우자에게 고율의 상속세율을 적용하는 게 문제의 핵심이다.
삼성의 故 이건희 회장이나 넥슨의 고(故) 김정주 회장처럼 10조원 이상의 천문학적인 부자의 배우자들에게는 상속세가 더 가혹하게 적용된다. 이런 경우 고작 30억원의 배우자 인적 공제는 아예 의미가 없어진다.
◆ 삼성 그룹 사상 최대 12조원 상속세 폭탄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이 2020년에 별세한 후 남긴 상속재산 중 주식재산은 약 19조원이었다. 이건희 회장의 배우자인 홍라희 여사는 이 중 약 5조4000억원의 지분을 물려받았다. 주식의 경우 최고과세율 50%에 대주주 할증과세율 20%까지 얹은 60%의 상속세율이 적용된다.
이에 따라 배우자인 홍라희 여사에게 60% 상속세율로 무려 3조1000억원의 상속세가 부과됐다. 홍라희 여사는 삼성그룹의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공동으로 재산을 키운 배우자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세율 구조라 할 수 있다.
문제는 또 있다. 만약 홍 여사가 주식을 팔아 상속세 3조1000억원을 완납했다고 가정해도 남은 2조3000억원의 주식지분을 미래에 3남매가 재 상속받을 경우다. 10년 이내라면 기간에 따라 '단기 재 상속 공제'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10년 이후부터는 또 60% 최고세율로 약 1조4000억원의 상속세가 부과된다.
결과적으로 배우자에게 5조4000억원의 주식재산을 상속할 경우 이중과세 문제까지 더해져 약 4조5000억원이 국가에 귀속되고 자녀들에게는 1조원만 상속되는 셈이다. 아버지에게서 자녀로 한 세대 간 재산이 이동했을 뿐인데 실제로는 60%의 상속세를 두 번 부과해 무려 80%가 넘는 상속세 폭탄을 맞게 된다. 기형적인 구조다.
현재 삼성 오너 일가는 주식담보대출과 보유주식 일부 매도를 통해 매년 분납 형태로 힘겹게 상속세를 납부하는 중이다. 주식 외 다른 재산까지 합친 전체 상속세는 무려 12조원이 넘는다. 한국의 상속세 제도가 너무 가혹하다고 비판 받는 이유다.
◆ 넥슨 경영 참여한 배우자의 상속세 폭탄
또 다른 거액 상속세의 대표적 사례인 넥슨의 상속과정도 논란이 많다. 고(故) 김정주 넥슨 회장이 2022년에 별세한 후 남긴 상속재산은 넥슨 그룹의 지주회사인 NXC 지분 69.49%가 대부분이다. 이 지분의 가치는 약 10조원이 넘는 것으로 평가됐다.
주식 상속 전에는 배우자인 유정현 NXC 이사회 의장이 29.43%, 두 자녀가 각각 0.68% 보유하고 있었다. 이후 김정주 회장의 지분은 유정현 의장에게 4.57%, 두 자녀에게 각각 30.78% 상속했다. 상속절차가 완료된 후 최종적인 NXC 지분율은 배우자인 유정현 의장이 34%, 두 자녀가 각각 31.46%로 늘어났다.
하지만 넥슨 역시 최고과세율 50%에 대주주 할증과세율 20%까지 얹은 60%의 상속세율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결국 정부에 상속세를 주식으로 물납했다. 물납한 NXC 지분은 무려 29.3%로 4조7000억원에 달한다. 이런 이유로 두 자녀의 지분율은 반 토막이 났다.
이런 넥슨의 사례는 이례적인 상속세 주식 물납 형태와 정부의 NXC 주식 매각 시도가 번번히 실패하면서 관심이 집중됐다.
하지만 또 다른 문제점은 넥슨의 창업 초기부터 함께해 온 배우자 유정현 의장의 상속지분이 삼성그룹 상속 때와는 달리 매우 작다는 점이다. 이는 이중과세를 피하고자 부득이 대부분의 지분을 자녀들에게 몰아 줄 수밖에 없었던 현실 때문이다.
김정주 회장의 NXC 지분 67.49%는 온전히 다 김정주 회장의 것일까? 혼인 중에 부부간의 협력으로 이룬 배우자 기여분도 상당할 것이다. 특히 배우자인 유정현 의장은 넥슨의 초창기부터 2000년 초반까지 경영지원본부장 등을 맡으며 경영에 관여해 왔다.
그럼에도 유정현 의장은 아무 기여도가 없는 자녀들과 동일하게 무려 60%의 상속세율을 감당해야 했다. 지금의 배우자 상속세 제도가 불합리한 이유다.
◆ 과도한 배우자 상속세 여성에게 불리...위장이혼 부추겨
과도한 상속세는 기업 경영권을 위태롭게 한다. 하지만 일반인에게 재벌 이야기는 그저 남 얘기다. 그렇다면 재벌이 아닌 중산층이나 부유층에게 상속은 어떤 의미일까? 배우자가 남긴 상속재산은 남은 여생을 살아갈 소중한 생계비다.
통계청의 2022년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남자 79.9세, 여자 85.6세로 여자가 남자보다 5.7살 더 오래 산다. 또 현재의 60대나 70대들이 결혼할 당시에는 여자 나이가 남자보다 약 4살 적은 게 일반적이었다. 따라서 확률적으로 보면 부인들은 남편 사망 이후에도 10년 이상 더 오래 살 가능성이 높다.
반면 재산분포는 남편에게 집중된 경우가 많다. 특히 가부장적 문화가 보편화된 시기에 결혼생활을 한 지금의 60~70대 여성은 남편 명의로 재산이 등록된 경우가 많다. 그 당시는 아파트 공동명의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절이다. 결국 지금의 배우자 상속세 제도는 여자들에게 불리하게 작용될 가능성이 높다.
상속세의 본래 취지는 과도한 부의 대물림을 막기 위한 제도다. 재산 형성과정에서 아무 기여가 없는 자녀에게 부과되는 상속세는 꼭 필요하다. 하지만 '혼인 중에 부부간의 협력으로 이룬 재산'을 단지 배우자가 사망했다는 이유만으로 약탈적으로 부과하는 지금의 '배우자 상속세'는 분명 개선이 필요하다.
특히 이혼을 통해 남편과 아내가 재산을 분할하는 경우에는 증여세를 한 푼도 내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혼과 상속 간의 형평성 문제가 심각하다. 이로 인해 위장이혼 시도도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물론 위장이혼의 경우 조세회피 목적의 재산분할 규모가 과대한 경우 조세법상 '실질과세 원칙'에 의거 증여세 과세가 가능하다.
정부는 왜 미국, 영국, 프랑스가 배우자에 대해서는 상속세를 부과하지 않는지를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불합리한 세금 정책으로 위장이혼을 부추겨서는 안 된다. 이제 모순적인 '배우자 상속세'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방안을 고민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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