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이 서투른 자폐성 발달장애인
기념일에 약속 잡는 것도, 손 잡는 것도 어려워
소개팅 체험 프로그램 연 소소한소통
주위에서도 사랑할 권리 위해 꾸준히 지원해야
[서울=뉴스핌] 방보경 기자 = 지난해 크리스마스. 현성(36·가명) 씨는 소영(24·가명) 씨를 만나지 못했다. 두 사람이 만난 후 맞은 첫 번째 기념일이었다. 그럼에도 변변한 데이트를 하지 못한 건 현성 씨의 책임이 컸다. 자폐성 발달장애를 갖고 있는 현성 씨는 만나기 위해서는 따로 약속을 잡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현성 씨는 주위의 성화에 하루이틀 전에 연락을 했지만, 소영 씨는 가족 여행이 잡혀 있다고 했다.
최근 뉴스핌 취재진이 만난 현성 씨는 소영 씨가 자신에게 어떤 존재인지도 확언하지 못했다. 하지만 비장애인으로서 현성 씨를 돕는 백정연 소소한소통 대표는 그의 변화를 알아차렸다.
소영 씨가 다음 약속을 제안했을 때 현성 씨는 수줍게 응했고, 소영 씨의 얘기를 할 때마다 만면에 웃음을 띄웠다. 현성 씨와 가족 같은 관계를 맺은 지 10년간 그런 표정은 처음이었다. 백 대표는 그의 경험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다음 단계를 어떻게 밟아나가야 할지 알려주는 길잡이 역할을 했다.
서현성(36·가명) 씨와 백정연 소소한소통 대표. 백 대표는 자폐성 발달장애를 가진 현성 씨를 돕고 있다. [사진=소소한소통] |
백 대표가 현성 씨를 도운 것처럼 자폐성 발달장애인의 연애가 진행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현성 씨를 포함한 자폐성 장애인들은 의사소통 능력이 발달하지 않아 상대방의 감정을 읽고 내 감정을 상대방에게 표현하는 걸 어려워한다. 따라서 연애를 어떻게 하는지 훈련해야만 다른 사람과 쉽게 교류할 수 있다.
이에 사회적기업 소소한소통은 발달장애인에게 '연애할 기회'를 주고자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소소한소통은 발달장애인과 정보약자를 위해 쉬운 정보를 제공하는 잡지 '쉽지'를 발간하고 있는데 지난해 3월의 주제가 바로 '연애'였다. 이 잡지에는 연애란 무엇이고 서로의 마음을 어떻게 확인하는지는 물론 상대방과 싸우고 화해하는 방법까지 담겨 있다.
다음달 11일에는 소개팅 체험 프로그램 '우리 처음 만나'도 진행한다. 작년 처음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지만 한번 더 만들어달라는 반응이 쇄도해 올해도 열게 됐다. 이번 프로그램에도 40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렸다. 소소한소통은 그중 남녀 20명을 뽑을 예정이다. 곁에서 서로가 잘 소통할 수 있도록 거들어주고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질문지 목록도 준비했다.
프로그램의 효과는 분명하다. 현성 씨는 백 대표의 얘기를 들으며 천천히 변화했다. 식사에만 집중하던 현성 씨가 밥을 먹을 때 소영 씨의 말에 귀 기울이려고 노력한다. 다른 변화가 있냐고 묻자 "팔짱 껴도 되나 물어보는 거요." 라는 답이 돌아왔다. 마음이 앞서나간다는 이유로 무작정 스킨십을 하지 않고 상대방의 의사를 물어야 한다는 사실을, 그전의 현성 씨는 몰랐다.
현성 씨와 오랜 시간을 보낸 백 대표야 그의 비언어적 표현을 빠르게 알아채고 관계를 맺을 때 주의할 방법도 알려줄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장애인이 그런 기회를 가질 수는 없다. 사람에 따라 따라 다르지만 장애당사자 중 누군가는 자신의 삶에서 어떤 점이 부족한지를 판단하기 어렵다. 백 대표는 단발성 프로그램도 중요하지만 결국 관계에 대한 장기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백 대표는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이 사는 대구 한 지원주택의 사례를 들었다. 글을 잘 모르는 발달장애인이 있을 경우 다른 집의 문을 자기 집으로 착각하고 문을 열거나 두드리려고 할 수 있다. 밤늦게 이웃집과 갈등이 생길 수 있는 상황에서, 사회복지사들은 장애인이 좋아하는 물건을 자석으로 만들어서 문 앞에 붙여줬다. 백 대표는 "장애인에게는 이웃과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이웃에게는 장애인의 특성을 알려줘서 상호 이해를 도와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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