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번가 9900원샵 MD 인터뷰
묶고 쪼개며 새로운 상품 기획
제조업체에 아이디어 상품 제안도
생필품 넘어 취미 용품으로 확대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물가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는 요즘, 물가를 역주행하는 저렴한 상품을 개발하고 조달하는 이들이 있다. 고물가를 방어하기 위해 최전선에서 뛰고 있는 '물가사냥꾼'을 만나봤다.
[서울=뉴스핌] 노연경 기자 = "3900원, 6900원에 무료배송을 해주니까 고물가 시대에도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재미가 있다."
1만원으론 한 끼 식사도 어려운 고물가 시대지만, 11번가 9900원샵에선 캠핑 용품부터 마사지 기계, 청소용품까지 다양한 걸 살 수 있다.
지난 28일 서울시 중구 11번가 본사에서 (왼쪽부터) 강혜중 11번가 생활용품 담당 MD와 현민규 캠핑·낚시용품 담당 MD가 뉴스핌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11번가] |
"9900원샵은 필요한 걸 검색해서 사는 경우보다 들어가보니 괜찮은 상품을 발견해서 사는 재미가 있다. 가격이 저렴하다보니 생필품처럼 꼭 필요한 걸 구매하기도 하지만, 아이디어 상품도 도전해볼 수 있다."
지난 28일 서울시 중구 11번가 본사에서 만난 강혜중 생활용품 담당 상품기획자(MD)는 9900원샵의 인기 이유에 대해 이 같이 말했다.
9900원샵은 11번가가 지난 9월 문을 연 균일가 전문관이다. 모든 상품 가격이 900원 단위로 끝나고, 가장 비싼 상품의 값이 9900원이다. 여기서 판매하는 상품은 모두 무료배송한다.
실제로 9900원샵 거래액은 빠르게 늘고 있는 추세다. 이달 1~27일 기준 9900원샵의 거래액은 10월 같은 기간 대비 약 3.5배(265%) 증가했다. 같은 기간 구매자 수도 비슷한 수준(237%)으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좋은 성과 뒤에는 '사는 재미'를 만들기 위해 직접 제조업체를 발굴해 판매 상품을 역제안하는 11번가 MD들의 노력이 있다.
강혜중 11번가 생활용품 담당 MD(왼쪽)와 현민규 캠핑·낚시용품 담당 MD가 9900원샵을 소개하고 있다.[사진=11번가] |
강혜중 MD는 "최근에는 제조업체에 바지걸이지만 집게가 하나라 행주나 치마 등도 걸 수 있는 아아디어 상품을 제안했다"며 "담당 품목이 주기적으로 바뀌는 탓에 제조에 최소 반년 이상은 걸리는 아이디어 상품을 제안하기가 쉽진 않지만, 선기획을 통해 이런 상품을 제안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1~2인 가구에 맞게 묶음 상품을 쪼개서 팔 것을 제안하기도 한다. 20개, 30개 묶음이라 1만원이 넘는 옷걸이를 5개 혹은 10개 단위로 쪼개서 9900원 이하에 판매하는 식이다.
거꾸로 단가가 낮은 상품은 묶어서 파는 걸 제안하기도 한다. 캠핑·낚시용품을 담당하는 현민규 MD는 "낚시용 미끼처럼 단가가 1000원 이하로 낮은 상품은 묶음 상품으로 만들어 9900원샵에서 판매한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균일가와 무료배송 조건에 맞춰 여러 상품을 기획하다 보면 의외의 이유로 잘 팔리는 상품이 나오기도 한다.
현민규 MD는 "나들이 계절인 10~11월에 낚시용 접이식 의자 판매가 잘 돼서 이유를 봤더니 놀이동산에서 긴 줄을 기다릴 때 쓰려고 구매한 경우였다"라며 "값이 저렴하다 보니 의외의 용도로 인기를 끄는 상품도 나온다"고 덧붙였다.
11번가는 9900원샵 상품의 가격뿐 아니라 품질, 제품 이미지까지 신경쓴다. 최근 알리익스프레스 등 중국산 저가 상품의 공세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값싸지만 좋은 품질의 상품으로 승부를 걸기 위해서다.
강 MD는 "상품 판매 이미지가 엉성해 보이면 구매가 망설여진다"며 "제조업체 중에선 상품은 잘 만들지만, 이런 이미지까지는 신경을 못쓰는 곳들이 있다. MD들이 직접 확인하며 제조업체와의 협업을 통해 이미지 질까지 높이려고 한다"고 말했다.
고물가 시대에 맞춰 11번가는 9900원샵 상품을 계속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생활용품과 같은 필수 품목 위주로 시작했지만 앞으로는 문구나 캐릭터 용품 등 취미 용품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현 MD는 "9900원샵은 MD의 기획력이 가장 돋보이는 전문관이다. 9900원 이하와 무료배송 조건을 맞추려다 보면 다양한 기획을 제시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상품의 원가구조를 잘 이해하고 이 상품이 이 가격에 정말 경쟁력이 있는지 책임감을 갖고 판매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ykno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