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령 등 금융사고 발생 시 임원 책임 명문화
지주회장 책임 범위 놓고 당국·업권 시각 차
내년 6월 시행 후 6개월 유예기간 적용
CEO 리스크 등 부작용, 합리적 기준안 필요
[서울=뉴스핌] 정광연 기자 = 내년말 도입을 앞둔 '책무구조도'를 놓고 정부와 금융권의 온도 차이가 극명하다.
당국은 내부통제 강화를 위해 횡령 등 금융사고 발생 시 지주회장이 최종 책임을 지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금융권은 모든 사건사고를 회장이 책임지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합리적인 기준안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내년 6월 관련법 개정안 시행 후 6개월간의 유예기간이 있는만큼 양측의 충분한 논의가 우선이라는 지적이다.
[서울=뉴스핌] 최지환 기자 =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왼쪽 다섯번째부터)과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20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금융위원장 금융지주회장단 간담회' 시작 전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3.11.20 choipix16@newspim.com |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각 금융지주 및 은행들은 내부통제 관련 부서(준법 및 법무)를 중심으로 책무구조도 수립 절차를 진행중이다.
책무구조도는 금융사 스스로 임원별 내부통제 책임을 명확히 하는 제도다. 지난 8일 관련법(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이달 중 공포 후 내년 6월 시행을 예고한 상태다. 6개월간의 유예기간을 내년말 본격 적용된다.
업권 및 규모에 따라 책무구조도를 정부에 제출하는 시점은 다른데 특히 지주와 은행은 법 시행 후 6개월전까지로 우선 적용했다. 이에 따른 제출 시간은 내년 6월부터 연말까지다.
책무구조도의 핵심은 지주회장이나 은행장 등 CEO가 특정 업무에 대한 사고가 발생한 경우 그 책무(책임)가 어느 임원에게 있는지를 중복이나 공백, 누락없이 마련해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정부는 CEO에게 '내부통제 총괄 책임자로서 전사적 내부통제체계를 구축하고 각 임원의 통제활동을 감독하는 총괄 관리의무'를 부여한다는 방침이다. 위반 시 행정제재도 가능하도록 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최근 횡령 등 잇단 금융사고가 발생했지만 임원이나 CEO가 처벌받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꼬리자르기'라는 지적이 나오며 여론이 악화된 이유"라며 "앞으로는 내부통제 미흡으로 인한 사고가 발생하면 경영진이 직접 책임을 지는 근거를 만들어 이를 예방하고 재발방지에 집중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당국은 국내 금융그룹 대다수가 은행이나 증권, 보험 등 주요 계열사가 사실상 지주회장 영향력 아래에 놓여있는 만큼 책무조직도 최상위에는 회장에 대한 내용이 담겨야 한다는 의견도 내놓았다.
반면 금융사들은 난감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임원별 내부통제 책임을 명확히 하자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모든 사고 발생 책임을 최종적으로 CEO에게 묻겠다는 방침은 무리라는 입장이다.
금융지주 관계자는 "현재 지주는 계열사 운영에 관여하지 않는다. 인사 역시 계열사 대표 권한이다. 경영에 관여하지 않는 상황에서 계열사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했다고 해서 결국에는 회장에게 책임이 있다는 주장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지주는 그룹 전반을 방향성을 제시하고 이끌어야 한다. 예를 들어 영업단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했는데 그 책임을 물어 회장에게 제재를 가한다면 결국 그룹을 이끌 콘트롤타워가 흔들리는 셈이다. 각각의 역할에 맞는 책무구조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책무구조도와 관련된 세부 사항이 아직 미정이라는 점도 향후 전망이 쉽지 않는 요인이다. 개정안에서는 책무구조도의 상당 부분을 대통령령 또는 금융위 고시에 위임하고 있다.
따라서 쟁점이 되는 ▲책무구조도 대상 임원의 범위 ▲임원 책임이 명시돼야 하는 업무의 범위 ▲특정 업무의 연관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임원의 범위 ▲지주 및 계열사간 책무의 중복 여부 등에 대한 기준안 자체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이에 금융권에서는 법안 시행시점인 내년말까지 당국과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현실적인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작업이 우선이라고 입을 모은다. 특히 당국이 금융사 책무구조도가 미흡하다고 판단할 경우, 수정 및 개선을 요구할 권한도 가지고 있어 CEO 책임 명시화 여부에 대한 논란도 확산될 전망이다.
또다른 금융지주 관계자는 "결국 지주 회장의 책임 범위를 어느 수준으로 잡느냐가 관건이다. 임원은 비교적 명확한 업무가 있지만 지주회장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라며 "CEO 리스크를 막기 위해서라도 방어적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합리적인 기준점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peterbreak2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