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의 얼굴만 봤을뿐 세상의 모습을 보지 못했소. 파도를 만드는 건 바람인데 말이오."
필자가 몇 년 전 흥미롭게 본 영화 <관상>에서 주인공이 마지막에 내뱉는 말이다. 영화에서는 왕이 될 상인가 하는 관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그 사람의 얼굴 형체에만 집착해서는 안 되고 그가 처한 시대적 배경이나 맥락도 함께 분석했어야 한다는 뜻이다.
강호동 합천율곡농협 조합장 |
영화처럼 우리 농업의 오랜 숙원인 농산물 유통의 해법을 찾기 위해서는 유통의 트렌드와 변화 원인을 찾는 작업이 우선돼야 하고 그 시점부터 새로운 해법을 모색하는 지혜가 모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최근 유통의 변화를 선도하고 있는 변화의 바람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인터넷과 스마트폰 보급 확대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한 SNS의 폭발적인 성장으로 온라인 쇼핑이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통계청에 의하면 2022년 온라인 기반의 전체 쇼핑 거래액은 약 124조원으로 백화점과 대형마트, 편의점의 오프라인 매출 103조원을 넘어섰다. 농축수산물의 온라인 판매액도 2022년 연간 9.4조원을 넘어섰다. 흥미로운 것은 스마트폰을 활용한 모바일 쇼핑이 80조원 대로 인터넷쇼핑 28조원 대비 2.8배 크다는 점이다.
온라인 쇼핑은 물론이고 대형마트와 백화점, 편의점 등 유통의 모든 분야에서 대형 유통기업의 영향력이 여전히 막강하다는 점이다. 이마트와 홈플러스, 코스트코,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와 롯데와 신세계 등 백화점, CU, GS25, 세븐일레븐 등 편의점 대부분 유통 채널에서 대형 기업의 매출액 비중이 높으며 영향력도 더욱 커지고 있는 추세다.
또한 1인 가구의 증가와 MZ 세대의 등장 등 인구구조의 변화를 들 수 있다. 우리나라의 2022년말 1인 가구수는 750만 가구로 전체 가구수의 34.5%를 차지하고 있다. 2018년 584만 가구(29.3%)와 비교하면 4년 만에 1인 가구수는 무려 28.4% 증가했다. 1980년 이후에 출생한 젊은층을 지칭하는 MZ 세대는 모바일과 인터넷, 스마트폰, SNS에 친숙하다.
마지막으로 폭염과 폭우, 한파 등 지구 온난화에 의해 초래된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과제가 유통 전 채널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자연재해가 일상화되면서 연중 일관된 품질의 농산물을 안정적인 가격에 조달해야 하는 과제가 최대 해결 과제로 부상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유통 채널의 트렌드에 대응하여 농산물 유통은 어떤 해법을 제시하고 개혁을 추진해야 할까?
먼저 인터넷과 모바일, 유튜브, SNS 사용에 미숙한 농업인들이 많은데 이들이 온라인 판매를 확대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최근 온라인 판매를 주도하고 있는 인플루언서의 활용과 라이브방송 등 맘카페 인플루언서가 추천하는 분유나 동화책을 구입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따라서 농협이 나서서 많은 회원을 확보하고 있는 인플루언서를 조직화하여 농산물 홍보 채널로 활용하고 농업인이 직접 제품을 홍보할 수 있는 라이브방송 플랫폼을 농업인에게 지원해 주어야 한다.
둘째, 우리의 현재 소농 구조를 '디지털 대농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온라인·오프라인 채널을 불구하고 대형 유통업체의 영향력이 점차 커지는 추세다. 그런데 최근 일부 전문 스마트팜 업체들 중에서는 본인들이 보급한 스마트팜 농가들을 프랜차이즈 형식으로 연계해 대형 유통업체의 대량 구매 요구에 대응하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일부 선진 스마트팜 업체를 벤치마킹하여 전국의 지역농협이 공동으로 플랫폼을 구축하고 이를 통해 전국에 산재한 농업인들을 프랜차이즈 기반으로 연계시킨다면 대농구조의 산지 유통 채널을 구축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셋째, 증가하고 있는 1인 가구와 MZ 세대들을 겨냥하기 위해 '조금 담고 작은 소포장'과 여러 농산물을 조금씩 함께 담은 농산물 제품을 더 확대해야 한다. 또한 일시불로 제품을 구입하는 것보다 매달 일정 사용료를 지불하는 '구독경제'에 익숙한 이들을 타깃으로 하여 농협이 나서 '구독경제' 서비스 채널을 구축할 수 있다. 유통채널을 구축하고 농업인이 공급자로 채널에 참여하는 체계 구축을 통해 1인 가구와 MZ 세대의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다.
마지막으로 기후 위기에도 불구하고 일관된 품질의 농산물을 연중 안정적으로 보급받고 싶어하는 대형 유통업체의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정부와 농협이 나서 스마트팜 농업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시설원예 스마트팜 면적은 2016년 1912ha에서 2022년에는 약 7000ha로 266%로 증가했고 축사의 경우에도 2022년 약 5750개소에 스마트팜이 보급됐다.
고령화·소농구조 하에서 대부분의 농업인들은 온라인 마케팅 확대에 대응하고 대형 유통업체의 니즈를 충족시키며 스마트팜 농업을 도입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농산물 유통 채널이 디지털화·대형화·스마트화 추세로 진화하고 있기 때문에 개별 농업인이 아닌 협동조합이 나서 이러한 유통 트렌드를 이해하고 농업인이 이러한 유통 채널에서 애써 생산한 농산물을 제값 받을 수 있도록 다양한 유통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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