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기축통화의 태생적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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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발 금융위기 그리고 유럽 부채 위기 동안 주요국 중앙은행이 처한 공통의 문제는 명목 정책금리가 `제로 하한 (zero lower bound: ZLB)`에 봉착했다는 점이었다.
이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각자가 다양한 비전통적 정책 수단을 취했다. 양적완화(QE)가 대표적이다.
이걸로도 부족해 일부 중앙은행은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도입하기도 했고, 장기금리를 일정 레벨에 묶어놓는 정책(일본은행의 수익률곡선통제정책: YCC)을 폈다.
상상해보자.
중국의 경제 성장세가 장기 둔화 흐름을 지속하고 디플레이션 압력에서 헤어나지 못해 크든 작든 정책금리를 계속 내려야 한다면 언젠가 인민은행도 `ZLB`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인민은행도 저들처럼 QE와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손쉽게 구사할 수 있을까.
두눈 질끈 감고 그렇게 할 수도 있다 - 위안화 가치가 박살날 각오가 돼 있다면.
본토 금융시장에 유입된 외국인 자금의 비중이 주변국 대비 여전히 많지 않고 외환보유고도 넉넉하니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재산 가치의(화폐가치) 훼손을 피하려는 인민들의 달러 축장 욕구에 의해 위안화는 가장 안좋은 형태의 도전을 받게 된다.
대국은 외침보다 내폭으로 위기를 맞았고 통화의 훼손은 이를 앞당겼다.
*이미 올 들어 재개방 이후 중국인들은 홍콩의 보험사와 은행으로 몰려가 고금리 달러 자산에 돈을 맡기고 있다. 당국이 이들의 움직임을 제한하거나, 해외로 나가는 여행자의 환전 한도 및 해외에서 카드 지출 한도를 제한하다는 이야기가 들리면 외환보유고의 감소세가 빨라지고 있다고 의심해 볼 필요가 있겠다.
역외 달러-위안 환율 추이[사진=koyfin] |
주요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비전통적 수단을 과감하게 전개할 수 있는 것은 사실 연준이 제공하는 달러 핵 우산 덕분이다.
연준과 유럽중앙은행(ECB) 영란은행(BOE) 일본은행(BOJ) 그리고 캐나다와 스위스 중앙은행은 서로가 상설 스왑 라인으로 묶여 있다. 이를 통해 위기시 연준으로부터 달러를 언제든 끌어다 쓸 수 있다. 단기 외화 유동성 측면에서 안전 장치가 마련돼 있는 것이다.
이 동맹에 가입하지 못한 중국이, 아니 이들로부터 적대시되는 중국이,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명시적이고 공격적으로 편다는 것은 환율 측면에서 지옥 문을 여는 것일 수 있다.
그래서 인민은행은 수시로 "전통적(혹은 정상적) 통화정책 공간을 잘 유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울러 팬데믹 이후로는 정책금리와 지준율 외에 구조화 정책수단이라는 것(재대출 및 재할인율)의 활용빈도를 더 높이고 있다.
지정학적 측면도 보자. 현재 중국은 미국의 공세에 맞서 장기 진지전을 준비중이다. 외부 압력이 한층 거칠어지고 경제가 더 위축될 경우에 대비해, 가깝게는 내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반중(反中) 압박이 거세질 경우에 대비해, 정책수단을 아껴 놓아야 한다.
정책당국의 기조가 수시로 과주기와 역주기를 오가는 이유다.
*역주기 조정(逆周期调节)은 당면한 경기하방 위험에 적극 대응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과주기 조정(跨周期调节)은 안정적 경기 관리뿐만 아니라 다음 사이클까지 내다 본 정책의 안배와 비축, 그리고 장기 관점에서 성장과 위험 관리 사이의 균형 등의 의미를 함께 담고 있다.
통화정책의 제약 속에서는 재정정책이 한층 빛을 발휘해야 한다. 실제 하반기 중앙정부는 지방의 특수채 발행 한도를 추가 할당하고 국책은행을 동원한 준재정수단을 가동해 경기에 힘을 보탤 것 같다.
그러나 재정정책의 여력도 예전만 못하다. 속된 말로 간(肝)이 싱싱하지 않고 노폐물이 잔뜩 끼었다. 십수년간 누적된 부채가 지방정부의 공식 장부와 비공식 장부(LGFV 채권)에 가득 쌓여 있으며 만기 주기를 따라 지방정부융자플랫폼(LGFV)의 상환 위험이 수시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재정의 경기대응 능력이 약해질수록 민간의 창의와 활력이 절실해지지만 중국의 민간 경제는 아직 팬데믹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