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역량 키우기보단 홍보 집중 지적
고위직부터 하위직까지 탈공직 가속화
[세종=뉴스핌] 이경태 기자 = "고위직은 물갈이 인사에 버텨내기 어렵고 하위직은 공직 문화가 싫어 떠납니다."
최근 대통령실의 인사 정책을 두고 한 정부부처 과장급 공무원이 탄식하며 이처럼 말한다. 대통령실은 쇄신을 강조하고 있으나 이에 동의하지 않는 공직자들도 상당하다.
◆ 1급 대변인체제 전환하는 7개 부처…정책보단 홍보 치중 지적
정부부처의 정책홍보 기능을 강화하라는 윤석열 대통령실의 방침에 따라 정부부처 7곳이 1급 대변인 체제로 전환된다. 7곳의 정부부처에는 기획재정부, 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 산업통상자원부, 교육부, 고용노동부, 보건복지부 등이 포함된다.
지난주 고용부, 교육부 등의 부처에는 1급 대변인이 임명됐다.
정책을 보다 효과적으로 홍보하기 위해 대변인의 지위를 1단계 격상시켰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기도 하다. 정책 홍보에 대한 책임감을 갖도록 실장급의 대변인이 정부부처에 확대되는 모습이다.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 전경 2023.04.12 swimming@newspim.com |
다만 이같은 직제 개편에 대해 갸우뚱한 표정을 짓는 공무원들도 적지 않다.
한 정부부처 관계자는 "직제 개편을 한다면 사실상 정부 행정력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을 따져서 변화를 가져오는 게 맞다"며 "대변인의 직급만 높인다고 해서 정책의 효과가 날 수 있을 지는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경제성장률이 떨어지고 경기가 원활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제대로 된 정책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말 뿐인 홍보 역량을 키우라는 게 주객이 전도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들린다.
실제 올해 하반기 경제정책방향과 세법 개정안에서 정부는 실질적인 경기 부양보다는 정책의 차질없는 추진과 안정화 대안 제시에 그쳤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렇다보니 대변인의 직급만 올린 1급 대변인 체제는 '빛 좋은 개살구'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게 경제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기도 하다.
여기에 내부 조직 운영에서도 문제가 예고된다.
정책 브리핑을 총괄하고 장관 의전에 나서야 하는 상황에서 대변인에 업무가 집중된다. 기존 국장, 과장으로 구성됐던 대변인실이 실장, 과장으로 중간직급이 사라진다. 한 고위 공직자는 "국장을 따로 둬서 대변인을 보좌할 필요는 있겠으나 지금으로서는 인력 보충이 쉽지는 않아 보인다"고 우려했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요즘 같은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정책에 대한 실력을 보여줘야 할 때이지 포장에만 신경을 써서는 안된다"며 "총선을 염두에 둔 직제 개편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 일괄사표·배신감·싫증난 공직문화에 떠나는 공직자들
"사명감으로 일했는데, 이제는 떠나야 할 것 같습니다."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공직자의 글이다. 문제는 최근의 인사 정책이 이같은 공직자들의 이탈을 더 가속화하는 것 아니냐는 데 있다.
1급 대변인 체제로 변화하면서 정책 홍보를 강조한 이면에는 기존 고위급 공직자들에 대한 물갈이가 현실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환경부의 1급 고위직 공무원의 일괄 사표는 이미 예고된 물갈이 인사의 표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세종=뉴스핌] 홍근진 기자 = 정부세종청사 인근 지역 전경. 2023.04.24 goongeen@newspim.com |
관가에서는 이미 1급 공무원 물갈이가 전 부처에 걸쳐 진행될 것이라는 소문이 이미 돌았다. 다만 이같은 상황이 예상보다 이르게 진행된다는 점에서 고위직 공무원들도 당혹스럽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더구나 이런 상황에서 초고속 승진 역시 달갑지 않은 게 국·과장급 공무원들의 속내다. 1급으로 고속승진을 하더라도 차관 승진에서 밀려나면 저절로 짐을 싸야하는 분위기에 과장급에 머물거나 국장이어도 대변인이나 실장 승진보다는 주요 사업국의 국장을 더 맡는 게 낫다는 데 고위 공무원들은 공감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과장급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기업의 '러브콜'을 기다리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주요 사업을 추진했던 과장급 공무원들은 기업으로 이직할 경우, 고연봉의 이사직을 맡으면서 최고급 대우를 받는다. 능력에 따라 오히려 기업에서 더 오랜 시간을 버틸 수도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여기에 정부 조직에 대한 신뢰 역시 땅에 떨어진 것이 오래다.
한 과장급 공무원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감사를 받아 탈탈 털리는데 이렇다보니 소신 있게 공무를 집행하기는 더 어렵다"며 "지침에 따라 일을 하더라도 나중에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상황이어서 예민한 분야와 관련된 부서로 발령을 받는 것 자체도 부담스럽다"고 전했다.
에너지 분야와 관련해 정권 교체마다 부침이 있었던 산업부의 경우에는 최근 5년간 10여명의 과장급 이상 간부가 기업으로 떠났다.
이같은 상황에 공직에 입문한 MZ세대 공무원들 역시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모습이다.
정부부처의 과다한 업무에도 월급이 부족하다보니 기대와 다르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온다. 선배 공직자들의 신세가 그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불안감도 이어진다.
공무원연금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자발적으로 퇴사한 근무경력 5년 미만 공무원(국가직 지방직)은 1만3032명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의원면직 공무원의 67% 수준이다. 낮은 급여, 경직된 조직문화, 과로 등이 5년 미만 공무원들의 이탈 원인으로 꼽힌다.
차관을 지내고 퇴직한 한 인사는 "고위직 이후에는 예전같으면 산하기관으로 가기도 쉬웠지만 이제는 더 어려워진 게 현실"이라며 "쇄신도 필요하지만 인재들이 정부를 떠나는 것은 그만큼 정부의 실력도 그만큼 낮아질 수 있고 오히려 역량있는 수장을 임명하는 게 속도감있는 쇄신의 길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전했다.
biggerthanseoul@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