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지혜진 기자= 최근 정치권에서 너도나도 불체포특권 포기를 선언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김기현 대표의 교섭단체 대표연설 이후 소속 의원들로부터 불체포특권 포기 서약 서명을 받았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김은경 혁신위원회'가 1호 쇄신안으로 소속 의원 전원의 불체포 특권 포기를 제안했다. 특히 국민의힘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불체포특권 포기 선언을 하자 기다렸다는 듯 공동성명을 하자고 압박했다.
때아닌 '불체포특권 포기' 바람이 불게 된 계기는 이 대표를 비롯해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에 연루된 윤관석·이성만 의원의 체포동의안이 연달아 부결되면서 '방탄국회'라는 오명이 씌워지면서부터다. 그렇지 않더라도 불체포특권이 개인의 이익을 위해 악용되거나 국회의원의 방탄이 되어온 역사는 심심치 않게 반복됐다. 그럴 때면 한쪽에선 슬그머니 특권을 포기해야 한다는 자성 아닌 자성이 나온다.
한편으로는 국회의원들이 헌법이 보장한 권리를 너도나도 쉽게 포기하겠다고 외치는 게 불안하기도 하다. 현행범인 경우를 제외하곤 회기 중 국회의 동의 없이 국회의원을 체포 또는 구금하지 않는다는 헌법 44조는 개인을 위한 권리가 아니다. 국민을 대표하는 대의기관으로서 입법부에 부여한 권리이자 삼권분립을 보장하기 위한 장치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의 불체포특권 포기 선언은 개인의 '도덕 선서' 정도로 가볍게 들린다.
최근 만난 한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혁신위 1호 과제를 두고 "2015년 '김상곤 혁신위'보다 정치 환경이 퇴행한 것 같다"고 푸념했다. 국회의원의 도덕성 기준이 과거보다 도리어 낮아졌다는 지적이다. 더구나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인데 내던진다고 해서 실효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공허한 선언에 불과할 수 있다. 정치권은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겠다고 아우성이지만 그 진정성이 크게 와닿지 않는 이유는 이 때문일 것이다.
문제의 본질은 불체포특권이 아니라 특권을 방탄으로 오남용하는 데 있다. 성숙하고 책임 있는 정치는 특권을 포기하기 보다 오남용을 방지하는 장치를 고민하는 정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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