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심서 유무죄 엇갈려→대법, 유죄 취지 파기환송
"전화 걸면 '도달'한 것…통화 여부 상관없이 스토킹"
[서울=뉴스핌] 이성화 기자 = 상대방과 실제 전화통화가 이뤄지지 않았더라도 벨소리가 울리게 하거나 '부재중 전화' 문구가 표시되도록 한 것만으로도 스토킹 범죄에 해당한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일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유죄 취지로 사건을 부산지법에 돌려보냈다고 29일 밝혔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서울 서초구 대법원의 모습. 2020.12.07 pangbin@newspim.com |
A씨는 20년 이상 연인으로 지내던 B씨에게 사업자금 1000만원을 빌려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하자 2021년 10~11월 B씨의 의사에 반해 수십차례 전화를 걸고 문자메시지를 전송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B씨가 자신의 연락처를 차단한 사실을 알게 되자 타인의 휴대전화를 이용해 B씨에게 전화를 걸거나 발신자 정보를 알 수 없게 한 후 전화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어떤 날은 약 2분 동안 6회, 1시간30분 동안 12회에 걸쳐 전화를 걸었다.
1심은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해 A씨에게 징역 4월을 선고하고 40시간의 스토킹 치료프로그램 이수를 명령했다.
항소심은 1심 형량을 유지하면서도 A씨의 일부 전화통화는 스토킹처벌법에서 정한 스토킹 행위로 볼 수 없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타인의 휴대전화로 단 1회 전화를 걸었을 뿐이고 통화 내용도 밝혀지지 않아 피해자에게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켰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또 "피고인이 전화를 걸어 피해자의 휴대전화에서 벨소리가 울렸더라도 피해자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면 정보통신망을 통해 음향을 보냈다고 할 수 없고 피해자의 휴대전화에 표시된 '부재중 전화' 문구는 전화기 자체의 기능에서 나오는 표시에 불과해 피고인이 보낸 글이나 부호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스토킹처벌법은 우편·전화·팩스 또는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물건이나 글, 말, 부호, 음향, 그림, 영상, 화상을 도달하게 하는 행위를 스토킹 행위로 규정한다.
그러나 대법원은 "스토킹처벌법의 문언과 입법목적 등을 종합하면 피고인이 전화를 걸어 피해자의 휴대전화에 벨소리가 울리게 하거나 부재중 전화 문구 등이 표시되도록 해 상대방에게 불안감이나 공포심을 일으키는 행위는 실제 전화통화가 이뤄졌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스토킹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며 항소심 판단을 뒤집었다.
A씨가 전화를 걸어 B씨의 휴대전화에 나타났다면 A씨 전화기에서 출발과 장소적 이동을 거친 음향(벨소리)과 글(발신번호 표시, 부재중 전화 문구 표시)을 B씨의 휴대전화에 도달하게 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취지다.
대법은 "피해자가 전화를 수신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스토킹 행위에서 배제하는 것은 우연한 사정에 의해 처벌 여부가 좌우되도록 하고 처벌 범위도 지나치게 축소시켜 부당하다"며 "피해자가 전화를 수신해야만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킨다고 볼 수 없고 오히려 스토킹 행위가 반복돼 불안감이나 공포심이 증폭된 피해자일수록 전화를 수신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원심은 피고인의 행위가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정당한 이유 없이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이뤄져 스토킹 범죄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할 필요가 있다"며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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