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맞춰 계약금·물품 대금 가로채고 범죄 융합화도
"돈 뺏기면 끝"…환급률 26.1% 그쳐
전문가 "상시감독 AI 개발·보이스피싱 보험 마련 등"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이 진화했다. 어눌한 말씨로 전화해 계좌번호를 요구하던 보이스피싱은 가고 마약을 이용해 피해자를 범죄에 연루시켜 협박하거나 정확한 정보로 특정 집단을 타깃 삼아 맞춤형 사기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기준 1만2816명의 피해자, 1450억원의 피해액이 발생했지만 해결책은 요원하다. 개인이 어떻게 피해를 예방할 수 있는지, 국가 차원의 역할은 무엇인지 뉴스핌이 짚어본다.
[서울=뉴스핌] 조민교 기자 = 최근 보이스피싱은 수법이 날로 촘촘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전화금융사기가 1세대(계좌이체)에서 2세대(대면범죄)를 지나 3세대(다른 범죄와 결합)까지 나아갔으며 앞으로도 수법이 더욱 발전할 것이라 내다보고 있다. 국가 차원의 사전 예방 대책안 등이 다방면으로 강구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직접적인 '피해 구제'에 좀 더 힘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27일 경찰에 따르면 지난 10일 재건축아파트 조합원 A씨는 입주 계약일이 임박한 시점에 옵션비 등을 문의하러 조합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다. 이때 용의자는 조합 사무실에 통신사 직원을 사칭해 전화를 건 뒤 '장애 발생으로 통화가 어렵다'면서 다른 번호로 착신을 전환했다. 용의자는 이후 A씨로부터 약 1500만원가량의 옵션비를 가로챘다.
경찰은 용의자가 입주 계약일이 임박한 시점에 조합원들이 사무실에 옵션비 납부 관련 문의할 것을 미리 알고 저지른 범죄로 보고 있다. 경찰은 현재 용의자를 추적 중이다.
[서울=뉴스핌] 조민교 기자 = 지하철 광고판에 보이스피싱을 주의하는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2023.04.27 mkyo@newspim.com |
지난해 6월에도 착신을 전환해 물품 대금을 가로챈 사건이 발생했다. 식품업체 B사는 대기업 식품회사인 삼양사 직원이라는 사람이 알려준 계좌로 식용유 대금 3000만원을 선입금했다. 그러나 이는 보이스피싱 일당이 착신 전환을 통해 중간에서 물품 대금을 가로챈 것이었다.
최근에는 범죄 융합화를 이뤄 충격을 안기기도 했다. 지난 3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서 마약 판매 일당은 학생들에게 필로폰과 우유를 섞은 '마약 음료'를 무차별 배포한 뒤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금전을 요구했다.
이 밖에 자녀가 휴대폰을 잃어버린 것처럼 부모에게 문자를 보내 금전을 갈취하는 수법도 성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가정의 달을 앞두고 결혼식 또는 돌잔치를 빙자한 보이스피싱이 빈발하고 있다.
보이스피싱 범죄의 몸집은 날로 커지고 있다. 금감원이 지난 21일에 발표한 '2022년 보이스피싱 피해 현황 및 주요 특징'에 따르면 지난해 보이스피싱 피해자 수는 1만2816명으로 집계됐다.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1450여억원에 달했다.
보이스피싱으로 갈취된 돈은 회수가 어렵다. 윗선이 해외 등에 퍼져 있어 용의자를 제때 찾는 것조차 어렵기 때문이다. 같은 자료에서 지난해 보이스피싱 환급률은 26.1%에 그쳐 전체 피해액 중 379억원만 피해자에게 환급됐다.
갈수록 진화하고 있는 보이스피싱 수법에 대응해 정부도 잇달아 예방책을 내놓고 있다. 정부는 최근 '보이스피싱 범정부 태스크포스(TF)'에서 네이버·카카오 등과 협업해 예방수칙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겠다고 밝혔고, 금융감독원 또한 금융회사와 소비자 등 금융현장에서 수집된 신종 사기 수법을 분석한 후 알리고 있다.
다만 사건이 터진 후에야 신종 수법을 공개해봤자 피해자의 구제가 요원한 실정이다.
일각에서는 은행을 통한 거래 시 의무적으로 보이스피싱 보험 등에 가입시키는 방법 등이 제시된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해당 방안에 대해 "은행권에서 수상한 계좌 등을 AI를 이용해 상시 감독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한다거나 보이스피싱 관련 보험을 마련하는 등의 얘기는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보인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 일단 피해를 당하면 국가 차원에서 피해 금액을 보상해줄 수는 없다. 전세 사기와 마찬가지로 개인의 사기 피해를 모두 국가가 보상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금감원 등에서 업데이트되는 신종 유형을 유심히 살피고 조심하는 방법밖에 없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는 강력범죄 위주로만 차후 구조금 형태로 일부 지원금을 제공하는 시스템"이라며 "보이스피싱이라고 유달리 특별히 피해 금액을 물어줄 수는 없기에 개인의 주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mkyo@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