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인센티브 위한 투자계획...강제성은 없어"
美 반도체 공급망 확보 전략일 수도
[서울=뉴스핌] 김지나 기자 = "삼성전자의 투자는 미국 내 반도체 제조 산업을 변혁하는 동시에 수천 개의 고임금 일자리를 만들고 우리에게 21세기 전 세계의 혁신을 선도할 능력을 보장할 것입니다."
21일(현지 시각)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부 장관는 미국 상무부 홈페이지에 이 같은 성명을 게재했다. 삼성전자가 앞으로 20년에 걸쳐 2000억 달러를 투자해 텍사스주에 반도체 공장 11곳을 신설한다는 중장기 계획을 추진한다는 미국 현지 언론 보도에 대해 환영의 뜻을 밝힌 것이다.
하지만 정작 삼성전자는 미국의 이 같은 보도와 성명 발표 등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텍사스주 인센티브를 받기 위해 제출한 신청서에 담긴 강제력 없는 투자 계획이 마치 기정사실인 양 현지 언론에서 보도되고, 미국 고위 관료들이 이를 확정해 잇따라 성명을 발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 텍사스 250조 투자계획, 강제력 없는 단순 계획일뿐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사진=윤창빈 기자] |
이날 월스트리트저널 등은 삼성전자가 텍사스주 오스틴 2곳, 테일러 9곳에 반도체 생산 공장을 투자로 건설할 계획을 텍사스주 감사관실에 제출했다고 보도했다. 텍사스 감사관실이 지난 20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투자 계획서를 언론에 공개하자, 현지 언론들이 이를 인용해 보도한 것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1월 텍사스주에 170억 달러를 들여 파운드리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는데, 신청서 안에는 삼성전자가 여기에 더해 테일러 신공장 9곳에 1676억 달러(약 220조4000억 원), 오스틴 신공장 2곳에 245억 달러(약 32조2000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기재했다.
이 신청서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20년 동안 약 250조 원을 미국 텍사스주에 반도체 공장 투자를 위해 투입한다.
미국 현지 언론들은 이 투자액이 마치 기정사실인 것 마냥 보도했지만, 실제론 확정되지 않은 인센티브 신청용 계획에 불과하다. 텍사스주에는 지역 일자리를 많이 창출하는 외국기업에 10년 동안 재산세 감면 혜택을 제공하는 '챕터 313 세금 프로그램'이 있는데, 이것이 올해 말 만료되기 때문이다. 이에 삼성전자 측은 텍사스주에서 세금 감면 혜택을 받기 위해 신청서를 제출한 것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오스틴과 테일러의 삼성전자 부지에 지금 수준에서 공장을 지으면 얼마의 돈이 필요할지 대략적으로 추산해 넣은 금액일 뿐"이라며 "신청서 안의 투자 계획은 지키지 않아도 페널티가 없는 계획으로 단순히 인센티브를 확보하는 차원에서 제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 美, 삼성에 우회적 투자 압력...반도체 공급망 확보 차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과 지난 5월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을 방문, 차세대 GAA(Gate-All-Around) 기반 세계 최초 3나노 반도체 시제품에 사인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
일각에선 미국의 이 같은 움직임이 반도체 공급망을 자국 내 확보하기 위해 삼성전자에 우회적으로 투자 압력을 가하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미국은 중국과 기술패권을 두고 경쟁하고 있는 상황에, 반도체 공급망을 자국 내 확보하기 위해 전방위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산업의 쌀'로 불리는 반도체는 미-중 간 기술패권 전쟁의 핵심이다. 이에 미국은 '칩4동맹'을 제안하며 우리나라, 대만, 일본을 하나로 묶어 미국 주도의 반도체 동맹을 강화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또 반도체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들의 공장을 미국 내 유치하기 위한 치열한 물밑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 일환으로 지난 5월 방한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방한 첫날 삼성전자 평택 공장부터 찾아 삼성 챙기기에 나섰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11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새로운 칩 공장을 건설하기 위해 170억 달러(약 21조 원)를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도 미국의 요청에 화답한 것이다.
반도체 업계 고위관계자는 "미중 기술패권에서 가장 중간에 있는 것이 바로 반도체"라며 "미국은 어떻게든 반도체 제조업을 통해 제조 강국으로 발돋움하려 하고, 이를 위해 미국에 더 투자해 달라고 삼성전자에게 요구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abc123@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