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 병원 상대 손배소 1·2심 패소→대법 "다시 판단"
"사고 발생 19시간 후 검사·수술…곧바로 조치했어야"
[서울=뉴스핌] 이성화 기자 = 엑스레이(X-ray) 검사 도중 바닥에 넘어진 환자에게 곧바로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아 뇌출혈 및 뇌부종으로 숨진 사건에서 대법원이 병원 의료진의 주의의무 위반을 인정하는 판단을 내놨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A씨의 유족 3명이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2일 밝혔다.
대법원 [사진=뉴스핌 DB] |
A씨는 2014년 11월 11일 공단이 운영하는 중앙보훈병원에서 흉부 엑스레이 검사를 받던 도중 갑자기 뒤로 넘어져 머리를 바닥에 부딪혔다. 이후 A씨는 병원 응급실에서 입원을 기다리는 도중 양쪽 팔다리에서 경련 증상이 나타났으나 담당 의료진은 알코올 중단에 따른 금단성 경련으로 보고 항경련제만 투약했다.
의료진은 사고 발생 19시간이 지난 다음날 A씨에 대한 뇌 CT 검사를 시행했고 그 결과 외상성 뇌내출혈, 급성 뇌출혈 및 뇌부종 등이 발견돼 혈종 제거 수술을 시행했다.
A씨는 수술 후 약 2주가 지난 같은 달 28일 외상성 뇌출혈과 뇌부종으로 인한 연수마비로 사망했고 A씨의 배우자와 자녀들은 병원 의료진의 과실로 A씨가 사망했다며 2억6000만원대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의료진이 망인의 병명을 진단하는 데 필요한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아 뇌출혈 및 뇌부종을 조기에 진단하지 못했다거나 망인에 대한 치료 및 경과 관찰의무를 소홀히 함으로써 이를 적절한 시기에 치료하지 못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병원 측 손을 들어줬다.
1심 재판부는 의료진이 엑스레이 검사시 낙상방지조치를 취해야 할 필요성은 없었던 점, 의료진은 A씨가 엑스레이 검사실에서 되돌아온 직후 즉시 A씨의 상태를 관찰했고 외상을 의심할 만한 이상소견은 발견되지 않은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또 "망인은 알코올 금단에 따른 발작증상 등으로 치료를 받아왔고 내원 당시에도 정신착란 증세를 보였는데 엑스레이 검사 직후 불안정한 상태로 뇌 CT나 MRI 등 영상검사에 적합한 상황이 아니었다"며 "이후 뇌 CT 검사와 수술을 통해 뇌내 혈종이 충분히 제거된 상태로 당시 별도의 뇌압감압술은 필요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유족들은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으나 항소심도 같은 판단을 내렸다.
그러나 대법원은 의료진에게 사고 후 A씨에게 나타나는 증상을 살펴 위험을 방지할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볼 여지가 있다며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고 했다.
대법은 "환자가 병원에서 검사나 수술을 받는 과정에서 넘어지는 등의 사고가 발생했다면 담당 의사는 이러한 사정을 고려해 환자의 건강 유지와 치료를 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담당 의사가 바뀌는 경우 나중에 담당할 의사에게 이러한 사정을 알려 지속적으로 환자의 상태를 살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A씨는 이 사건 사고 이전에는 뇌출혈 발생이 예상되는 증상이 없었고 사고 발생 4시간 정도 지났을 무렵 양쪽 팔다리에 경련 증상이 나타났는데 통상적인 의료수준에 비춰 병원 의료진으로서는 이 사건 사고로 발생한 뇌출혈이 경련 증상의 원인이 됐을 가능성을 예상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만일 의료진이 이 사건 사고 직후 A씨의 사고 부위를 지속적으로 살피면서 경련 증상이 나타났을 때 곧바로 뇌 CT 검사를 시행했다면 뇌출혈 또는 뇌부종을 보다 일찍 발견하고 적절한 조치를 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의료진이 이 사건 사고 발생 이후 A씨에게 뇌출혈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음을 인식하고 그에 필요한 조치를 다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대법은 "원심 판단에는 의료행위에 요구되는 주의의무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아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파기환송 이유를 밝혔다.
shl2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