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교착국면 타개 위한 전략적 유연성 확보
'노보로씨야' 선전과 軍 사기 증진 효과
[서울=뉴스핌] 최원진 기자= 러시아가 침공한 이래 줄곧 점령 대상으로 삼았던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 우크라이나가 21일(현지시간) 마리우폴을 항복하라는 요구를 거절하면서 러시아군이 공격 수위를 높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러시아군이 마리우폴 점령에 혈안이 되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국 BBC방송 등 주요 외신들은 마리우폴의 지리적 이점 외에도 군사 전략과 정치적 메시지 면에서도 중요하다고 분석했다.
◆ 크림반도와 돈바스 지역 육교 역할...전략적 유연성 확보
러시아군이 마리우폴 점령에 성공한다면 우크라와 전쟁 교착 국면을 깨고 심지어 전략적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마리우폴이 위치한 곳은 우크라 남동부 아조우(아조프)해 연안이다. 이곳은 러시아가 지난 2014년에 강제병합한 크림반도의 북쪽, 친러 반군 장악 지역이 있는 동부 돈바스 지역과 밀접해 있다. 아조우해만 건너면 러시아 영토다.
러시아가 마리우폴을 차지하면 크림반도와 돈바스 지역을 잇는 다리가 된다. 뿐만 아니라 아조우해 연안 모두 러시아가 통제할 수 있게 되는 데 러시아군 입장에서는 여러 군사적 전략 옵션을 택할 수 있게 된다.
마리우폴에는 각 1000명의 정예 병력과 군사장비로 구성된 대대전술그룹(BTG) 최대 6개가 위치해있다. 마리우폴 점령에 성공하면 이 부대를 다른 지역 공격작전에 투입시킬 수 있다. 돈바스 지역의 부대가 합류하거나 러시아에서는 아조우해만 건너면 되기에 신속한 추가 파병도 가능하다.
영국 합동군사령부 사령관 출신의 리처드 배런스는 러시아군의 마리우폴 점령은 "주요한 전략적 승리"라며 부대를 재정비해 ▲ 북동쪽으로 향해 돈바스 지역 우크라 정부군 포위 및 말살 ▲ 서부 항구도시 오데사 전선에 합류해 마지막 흑해 연안 도시 점령 ▲북서부 도시 드니프로 진격 등 여러 선택지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남부와 동부 돈바스 지역의 부대를 수도 키이우 인근에 집결시키는 것도 가능해진다.
◆ 해상 교역 차단해 우크라 경제 압박
러시아 전문가인 칼 퀄스 미 디킨슨대 역사학 교수는 러시아가 마리우폴을 점령하면 결과적으로 우크라 남부 연안의 80%를 장악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전략적으로 이곳은 (블라디미르) 푸틴의 부대가 우크라의 해상 공급로를 옥죌 능력을 부여한다"며 마리우폴이 함락되면 나머지 항구 도시인 오데사가 취약해진다고 설명했다.
남부 연안 도시 모두를 점령한다는 것은 해상에서 오고 가는 물품을 원천차단할 수 있다는 의미인데 아조우해는 우크라산 철·철강은 물론이고 밀·옥수수 등을 중동국가로 보내는 주된 수출로다. 농산물 수출이 중요 경제 산업인 우크라에 있어 큰 타격일 수 밖에 없다.
[마리우폴 로이터= 뉴스핌] 주옥함 기자= 현지시간 14일 러시아군의 폭격을 받은 우크라니아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의 건물이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2022.03.15.wodemaya@newspim.com |
◆ '노보로씨야' 정치적 선전 효과
마리우폴은 '아조프 대대'의 근거지다. 러시아가 '네오나치'(neo-Nazi)로 규정하는 극우 극단주의 무장세력인데 이번 '우크라 특별군사작전'의 명분 중 하나가 바로 '우크라의 탈(脫) 나치화'다. 푸틴 대통령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정권이 나치정권이고, 국민들을 해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러시아 국방부는 지난 20일 마리우폴에 있는 우크라군에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면 안전한 대피를 약속하겠지만 남는 이들은 군사재판에 넘겨질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러시아는 아조프 대원을 체포해 군사재판에 세웠다며, 소소한 목적 달성을 선전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밖에 옛 소련의 영토를 되찾는 이른바 '노보로씨야'(새로운 러시아)의 재건은 푸틴 대통령과 민족주의자들의 염원이다. 노보로씨야 지역은 우크라 남서부 오데사부터 동남부 루간스크까지다.
마리우폴은 우크라 동부와 크림반도를 이을 뿐만 아니라 오데사까지 점령하면 접경 몰도바의 친러 반군 지역인 트란스니스트리아까지 연결시켜준다.
퀄스 교수는 "푸틴 대통령이 강조하는 것은 이곳이 러시아 땅이라는 것"이라며 "18세기 러시아 제국의 일부 영토이긴 했지만 당시 거주 인구는 러시아인이 아니었다. 루마니아인이 훨씬 많았고 우크라인이 우세했다"고 설명했다.
역사적 사실이 어찌됐든 푸틴 대통령은 '노보로씨야' 재건에 성공했다며 대대적인 선전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마리우폴을 점령함으로써 러 크렘린궁은 국영 방송을 통해 "친서방 우크라 정권의 탄압으로부터 러시아 동포들을 구했다"는 메시지 전달이 가능하다.
무엇보다도 마리우폴 점령은 떨어진 러시아군의 사기를 증진시키고, 반면 우크라군의 사기는 떨어뜨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리처드 배런스는 "(침공 초기) 러시아군은 마리우폴 군인과 주민들의 결사항전에 장갑차 진입도 어려웠다. 그래서 공습과 폭격으로 지금은 잔해더미로 만들어버렸다"며 "마치 '마리우폴처럼 저항하다가는 이런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는 메시지를 다른 도시들에 전하는 듯 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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