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변어촌계가 주도...울진군·죽변수협·한울본부 지원
[울진=뉴스핌] 남효선 기자 = 정월대보름을 하루 앞둔 14일 밤 10시30분. 동해안의 최고의 어업전진기지인 경북 울진군 죽변항을 지키는 죽변 성황사 앞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숨을 죽인 채 엄숙한 표정으로 서 있다.
성황사 안에는 의관을 갖춘 제관들이 정숙한 표정으로 성황제사를 올리는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울릉도에서 파도를 타고 죽변항에 닿아 뿌리를 내렸다는 죽변 후정리향나무(천연기념물 제158호) 품에 안긴 듯 좌정한 성황사에 향촉(香燭)이 밝혀지자 엄숙하면서도 비밀스런 제의가 시작된다.
임인년 정월보름 죽변 성황제사는 조학형 죽변수협장이 초헌관을, 방학수 죽변어촌계장이 아헌관을, 조경철 죽변수협 총대가 종헌관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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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뉴스핌] 남효선 기자 = 경북 울진의 죽변어촌계가 주도하는 정월보름 죽변 성황제사에서 초헌관을 맡은 조학형 죽변수협장이 헌작례를 하고 있다. 2022.02.15 nulcheon@newspim.com |
죽변성황사에 모셔진 신은 남(男)서낭과 여(女)서낭이 함께 모셔진 부부성황이다. 죽변사람들은 이들 부부 신이 죽변항과 자신들을 지켜준다고 여기며 친근하게 '서낭할배' '서낭할매'라고 부른다.죽변사람들은 정월보름 밤 치러지는 성황제사를 '서낭제사'라고 부른다.
죽변사람들은 남신인 '서낭할배'는 마을의 안녕을 지키고, 여신인 '서낭할매'는 용왕신으로 죽변사람들의 생업터전인 바다를 관장한다고 여긴다.
'서낭할매'라고 친근하게 부르는 여신은 본래 이곳 죽변 성황사가 아닌 용추곶에 모셔졌다.
용추곶은 죽변항을 감싸고 있는 등대산이 바다로 뻗친 끄트머리 부분으로 사람들의 용의 머리에 해당한다는 말한다.
여서낭은 일제강점기인 1935년 여서낭당 인근의 암석을 채취하면서 지금의 죽변성황사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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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뉴스핌] 남효선 기자 = 동해안 어업전진기지인 경북 울진군 죽변항의 죽변성황사 정월보름 성황제사에서 제관들이 고축과 함께 소지를 올리고 있다. 2022.02.15 nulcheon@newspim.com |
정월보름이 다가오면 죽변성황제사를 주관하는 죽변어촌계는 마을제사 준비로 부산해진다.
죽변어촌계장의 주도로 제사가 치러지는 사흘 전부터 성황당 주변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금줄을 둘러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한다. 또 성황당 입구와 주변에는 붉은 황토를 뿌린다. 이때부터 사실상 엄격한 비의(秘儀)의 세계로 들어간다.
정월보름 성황제사에 들어가는 제비(祭費)는 죽변어촌계 기금과 죽변수협, 선주들의 찬조기금으로 마련한다.
지난 2005년부터 한울원자력본부가 일부 예산을 지원하며 울진군이 지역문화유산 보존 기금을 지원한다.
죽변수협도 정월보름 성황제사 비용 일부를 지원했다.
이들 기관들이 성황제사 비용 등을 지원하는 것은 정월보름 세시기간 죽변성황사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성황제사 등의 일련의 제의가 지역사회의 통합과 결집, 지역의 생업과 연계된 독특한 제의를 지닌 전통문화이기 때문이다.
죽변성황 보름제사는 성황제사와 용신제로 짜여있다.
성황제사는 엄격한 기준을 통해 선정된 삼헌관이 엄격한 유교적 제의절차에 따라 진행한다. 헌작과 독축, 소지, 유식, 음복의 절차를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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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뉴스핌] 남효선 기자 = 동해안 어업전진기지인 경북 울진군 죽변항의 죽변어촌계가 주도하는 정월보름 죽변 성황제사. 2022.02.15 nulcheon@newspim.com |
방학수 죽변어촌계장은 고축을 통해 "성황신이시여 합의동심하시여 정성들여 빚은 제물을 흠향하시고 임인년 한 해 죽변항 선적을 둔 어민들에게 무사고와 만선의 기쁨으로 가정에 웃음꽃이 피도록 복을 내려주시고 죽변면민의 화합과 무궁한 발전, 울진원자력이 무사고로 운영될 수 있도록 해주시소"라며 죽변항을 지키고 가꾸는 어민들과 주민들의 안녕과 평안, 풍어를 기원했다.
헌작과 고축이 끝나고 제관들은 정갈하게 갈무리한 성황소지와 제관소지, 동민소지,선주소지를 말아 소지의례를 치룬다.
이어 차려진 제물을 한지에 조금씩 떼어내 성황사를 감싸고 수 백년을 지키고 서 있는 향나무 앞에 진설하고 재배와 함께 비손한다.
마지막 절차로 성황제사에 참석한 참제자들인 선주와 주민들이 성황신에게 술잔을 올린다.
올해의 경우 성황사 앞에 펼쳐진 백사장에서 모시는 용왕제는 코로나19 사태를 반영해 성황제사와 동시에 치러졌다.
이날 전찬걸 군수와 장세석 죽변면장, 장시원 군의원 등 기관단체장들도 성황제사에 참석해 헌작례를 갖추며 울진군과 군민들의 평안과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기원했다.
성황제사에 참석한 한 선주는 "매년 정월보름 성황제사에 참석한다며 성황할배와 할매에게 잔을 드리고 비손하면 한 해 조업이 무탈하고 풍어를 가져다 준다"고 말했다.
또 대를 이어 배 사업을 잇고 있는 한 선주는 "해마다 성황제사에 참석하고 다음날 조업에 나서면 항상 만선을 이뤘다"며 "예전 성황제사를 지낼 때면 호랑이가 향나무 뒤에서 제사 지내는 모습을 보고 갔다는 옛 어른들의 이야기가 전해온다"고 말했다.
이번 성황제사에서 초헌관을 맡은 조학형 죽변수협장은 "성황제는 단순한 전통문화를 넘어 죽변항을 무대로 살아가는 어업인들에게는 자신을 지켜주는 믿음을 주고 죽변주민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결속과 통합의 상징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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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뉴스핌] 남효선 기자 = 경북 울진군 죽변항의 정월보름 죽변성황제사. 2022.02.15 nulcheon@newspim.com |
◇ "동제는 엄숙한 비의(秘儀)의 세계"
마을제사(동제)는 울진지방에서는 '성황제'나 '서낭제' '용신제' 따위로 불리며 마을의 구성원이 모은 '마을기금(동네기금)'으로 제수를 장만해 구성원 모두가 공동으로 수행하는 대동 제의이다.
울진지방 농어촌의 성황제는 주로 정월보름이 드는 날 자시(子時)에 마을 구성원 중에서 선출된 제관과 제물을 장만하는 자가 함께 참여해 치룬다.
동제는 유교적 절차에 따라 매우 엄격하게 수행된다.
특히 동제는 남성중심의 제의로서 여성과 외부인은 절대 참여가 허용되지 않는, 엄격한 '비의적.폐쇄적' 구조를 띠고 있다.
정월보름이 드는 전날인 열나흘 저녁 무렵이면 마을은 '엄숙한 비의의 세계'로 들어간다. 마을의 개 울음마저 경계하는 '정적의 세계'를 연출한다.
동제가 치러지는 정월 열나흘 날부터 대략 일주일 전부터 성황당과 동사, 제관들의 집에 금색이 둘러지면 제관들은 일체 바깥출입이 금지된다. 또 동제가 치러지는 열나흘 날에 마을의 여성들은 바깥출입을 삼간 채, 집안에서만 생활한다.
해촌인 울진지역의 보름제사는 크게 두 개의 구조를 갖고 있다.
하나는 마을 개척 신이자 마을 수호신인 '성황'을 기리는 제의와 해촌의 생업인 해사(海事)의 안녕과 풍어를 관장하는 신인 '용신'을 기리는 제의이다.
때문에 울진지방의 정월 보름 제의는 한양명 교수가 정의하는 "달과 용이 펼치는 축제"인 셈이다.
이날 마을의 각각의 집에서는 보름이 드는 새벽 2시 쯤에 자신의 4대조에게 찰밥을 차리고 보름제사를 올린다.이를 울진사람들은 '찰밥제사'라고 부른다.
성황제가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집단의례라면 찰밥제사는 가정의 안녕과 자손의 발복을 기원하는 가정단위의 개인의례이다.
보름이 드는 정월 열나흘날 밤에는 온 가족이 모여 덕담을 나누며 호두와 땅콩 등 부럼을 깨며 온 가족이 건강하기를 기원했다.
호두나 땅콩을 구하기 어려웠던 예전에는 "무구덩이"에 묻어 놓은 생무를 꺼내 깨물어 먹기도 했다.
정월보름 아침이면 밥을 먹기 전에 온 가족이 모여 '귀밝이술'을 나눴다. 아침밥은 찹쌀, 조, 수수, 콩, 팥 등 오곡을 넣어 지은 '오곡찰밥'을 먹는데 이는 한 해 농사의 풍년과 잡귀의 접근을 막는 유감 주술적 벽사의 의미를 담고 있다.
동제를 치른 보름날 아침이면 마을주민 모두가 마을회관에 모여 '동제 음복'을 나눈 뒤, 마을의 한 해 살림살이를 결산하고 계획을 짜는 '연시총회(동네공사, 마을총회)'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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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뉴스핌] 남효선 기자 = 경북 울진지방의 대표적 전통 여성대동놀이인 '달넘세'. 2022.02.15 nulcheon@newspim.com |
지나온 한 해의 살림살이와 마을 공동기금의 쓰임새 따위를 결산하고 새 한 해의 살림살이를 구상하는 셈이다.
연시총회가 끝나면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풍물을 앞세우고 윷놀이와 줄당기기를 펼치며 신명의 세계를 펼쳤다.
특히 갓 시집 온 새댁들이나 아낙들은 '남색'을 하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집집마다 걸립을 하고 해촌에서는 마을 앞 '불(백사장)'에 모여 '달넘세'를 즐겼다.
'달넘세'는 울진지방 해촌에 전승되는 여성중심 집단놀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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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뉴스핌] 남효선 기자 = 경북 울진의 대표적 전통 대동놀이인 '월송큰줄당기기' 2022.02.15 nulcheon@newspim.com |
이 무렵 마을의 아이들은 바가지를 들고 집집마다 다니며 오곡밥을 얻어 반드시 '방앗간의 디딜방아'에 걸터앉아 걸립한 오곡밥과 나물을 함께 나누어 먹었다.
한 해의 건강과 특히 부스럼이 나지 않기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았다.
저녁이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마을 앞의 밭이나 동산에 올라 '보름달 보기'를 즐겼다.
이 때 아이들과 청년들은 '쥐불놀이'나 '망월이'를 행했다. 울진지방에서는 주로 '망월이'라는 이름으로 연행됐다.
망월이는 주로 깡통에 '옹이불(소나무 옹이덩이)'을 담아 마을의 동산에 올라 옹이불이 담긴 깡통을 빙빙 돌리며 "망월아"를 연호하면서 보름달을 향해 소원을 빌었다.
망월이는 "보름달을 끄실려 풍년의 기원"을 담은 집단놀이로 해석된다.
최근에는 행정 지원이 이뤄지면서 소규모 마을단위가 아닌, 읍.면단위로 대규모로 연행된다. 주로 읍면의 청년회가 주도적으로 진행한다.
nulcheo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