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심, 원고 승소한 1심 뒤집고 '패소' 판결…"불필요한 이성 접촉 차단 도움"
대법 "개인의 자율성 보장돼야 할 사적 영역에 지나치게 개입…헌법 위반"
[서울=뉴스핌] 장현석 기자 = 독서실 남녀 혼석을 금지한 지방자치제 행정 조례가 헌법 가치에 위반돼 위법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주식회사 잇올(전 이티아이티지교육그룹)이 전주교육지원청을 상대로 제기한 교습정지처분 취소 소송 상고심 선고기일에서 원고 승소 취지로 파기·환송했다고 13일 밝혔다.
대법원 [사진=뉴스핌 DB] |
대법은 "이 사건의 쟁점은 이 사건 조례 조항이 과잉금지원칙에 반해 독서실 운영자와 이용자의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해 무효인지 여부"라며 "독서실 운영자와 이용자의 자율이 보장돼야 하는 사적 영역에 지방자치단체가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으로서 목적의 정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우선 대법은 "사람들은 저마다 학습 습관과 방식에 대한 선호를 가지고 있다"며 "남녀가 옆자리에 나란히 앉아 학습할 것인지 등 사적 공간에서 학습 방법을 선택하는 것은 타인의 법익과 특별한 관련이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 이용자 각자의 자율적 판단에 맡길 일이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먼저 개입할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법은 "남녀 혼석을 금지함으로써 성범죄를 예방한다는 입법 목적을 보더라도 남녀가 한 공간에 있으면 성범죄 발생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불합리한 인식에 기초한 것이므로 정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남녀 혼석을 하면 학습 분위기를 저해하는 상황이 더욱 빈번하게 발생한다고 볼 만한 자료도 없다"고 설명했다.
또 "이 사건 조례 조항은 이를 위반할 경우 별도 경고 조치 없이 곧바로 10일 이상의 교습 정지 처분을 하도록 하면서도 운영 시간, 열람실 구조, 이용자 성별과 연령 등 구체적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며 "독서실 운영자의 직업 수행의 자유를 필요 이상으로 제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법은 "이 사건 조례 조항은 과잉금지원칙에 반하여 독서실 운영자의 직업수행의 자유와 이용자의 일반적 행동자유권 내지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헌법에 위반된다고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법원에 따르면 원고는 지난 2012년 관리형 학원 프랜차이즈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유명해진 교육 회사로 2017년 전북 전주시에서 A 독서실을 운영해 오고 있었다.
전북전주교육지원청은 2017년 12월경 A 독서실을 점검하던 중 원고가 사업 등록 당시 제출했던 좌석 배치도와 다르게 남자 좌석으로 지정된 곳에 여자가 앉아 있고, 여자 좌석에 남자가 앉아 있는 사실을 적발했다.
전주교육지원청은 '전라북도 학원의 설립 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조례'에 따라 원고가 독서실 내 남녀 좌석을 제대로 구분하지 않고 독서실을 운영했다는 이유로 교습정지 10일의 처분을 내렸다.
원고는 같은 해 12월18일 전라북도교육행정심판위원회에 재결 청구를 했지만 이듬해 3월 기각 결정을 받았다. 이에 전주교육지원청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이 사건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1심은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1심 재판부는 "좌석 배열을 구별한다고 해서 범죄가 예방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며 "가사 범죄 예방을 위해 남녀 혼석을 금지하는 것이 최소한의 조치에 해당된다고 해도 1차 위반만으로 교습정지 처분을 부과한 것은 벌점제로 운영되는 타 시도 조례에 비춰볼 때 지나치게 무겁다"고 판단했다.
반면 2심은 원고 패소 판결했다. 2심 재판부는 "독서실 주 이용자들의 연령 등에 따라선 혼석하는 남녀 사이 빈번한 대화나 행위로 인해 인접 좌석자들의 학습권이 저해될 가능성이 있다"며 "남녀 혼석이 성범죄 발생 가능성을 반드시 높인다고 단정할 수 없으나 원하지 않는 이성과의 불필요한 접촉 등을 차단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교육의 자주성과 지방교육의 특수성을 존중한다는 지방교육자치 이념에 비추어 볼 때 지자체가 정한 조례나 시행규칙이 타 시도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헌법의 과잉금지원칙, 평등의원칙에 위반된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대법은 원심이 사적 자율 영역에 대한 공권력 개입의 헌법적 한계, 헌법상 기본권 제한의 한계로서 과잉금지원칙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했다고 보고 관여 대법관 일치된 의견으로 사건을 다시 판단하도록 광주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kintakunte87@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