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급적용 여부 놓고 소모적인 논쟁만
코로나19 장기화…보상체계 시급해
지원 대상도 자영업 아닌 소상공인
[세종=뉴스핌] 민경하 기자 = "자영업 손실보상이라고 하시면 큰일납니다. 정확히 소상공인 손실보상제라고 표현하시는 게 정확합니다."
민경하 경제부 기자 |
최근 만났던 기획재정부 예산실 관계자는 표현을 주의하라고 당부했다. 자영업자는 근로자를 고용하거나 혼자서 사업을 하는 사람을 뜻하는 통계적 용어인 반면 소상공인은 상시근로자 수 5인(제조업 10인) 미만인 기업자를 뜻하는 법률 용어다.
자영업 손실보상제라고 표현할 경우 영세 자영업자 외에 농·어민은 물론 억대 수입을 버는 건물주도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 되는 셈이다.
정부가 소상공인 손실보상제 검토를 공식화한지 4개월이 지났지만 이처럼 용어조차 헷갈리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 세계 최초로 도입되는 손실보상제가 본격적인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한 채 여전히 수면 아래서 표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손실보상제가 언제, 누구에게, 어떻게 적용될지 정해진 것이 없다.
손실보상제는 늦어도 5월 중 윤곽이 나올 것으로 예상됐으나 오는 25일 입법청문회를 거쳐 빨라야 6월에나 큰 틀이 잡힐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4월까지 마치겠다고 했던 연구용역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지만 국회와 정부는 벌써부터 의견 차이를 보이고 있다. 쟁점은 소급적용인데 국회에서는 여·야 모두 찬성하고 있고 정부는 반대하고 있다. 소급적용 유무를 따지느라 막상 손실보상제에 대한 논의는 시작조차 못하는 모양새다.
소급적용이 과연 옳을까. 정부가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재정문제다. 지난해 발생한 코로나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는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펼쳐왔다. 이 때문에 지난해 실질적인 재정상태를 나타내는 관리재정수지는 112조원 적자를 기록했다. 54조20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던 지난 2019년의 2배다. 올해 1분기 관리재정수지 또한 48조600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한국의 국가채무가 역사적으로 높은 수준에 있다"며 "장기간 유지해온 한국의 재정규율을 시험하는 잣대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미 국내·외 주요 기관에서 국가채무의 절대량보다 위험한 것은 증가속도임을 여러차례 경고한 바 있다.
여기에 소상공인 손실보상제가 더해지면 어떨까. 소상공인 단체인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는 영업금지·제한 명령을 받은 자영업자 약 200만명에게 매출 손실분 20%(한도 3000만원)을 지급하자고 제안했다. 이들은 정부가 지급할 예산을 1인당 약 1000만원씩 20조원 가량으로 추정했다.
또다른 단체인 '소상공인연합회'는 영업금지 업종에 매출 손실분 80%, 영업제한 업종은 70%를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미 한 차례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하면서 지출조정을 실시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재원은 적자국채 발행으로 충당할 수 밖에 없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소상공인들에게 지급한 재난지원금 규모는 적지않다. 정부가 지금까지 지급해온 재난지원금 중 2~4차 지원금은 소상공인 등 취약계층에게만 지급된 선별지원 방식이었다. 소상공인들에게 지급된 2·3·4차 재난지원금을 합치면 총 지원규모는 14조원이다. 거기에 초저금리 대출, 각종 세금·요금 납부 면제·유예 등이 이뤄졌다. 비록 소상공인들의 피해 규모에는 턱없이 부족하겠지만 어떤 계층보다도 지원이 이뤄져온 것은 사실이다.
코로나 사태가 시작된지 1년 반이 다 돼가지만 지금도 끝을 예측할 수 없다. 손실보상제 소급적용이라는 문제에 갇혀 정말 지원이 필요한 곳을 놓치는 것은 아닌지 국회와 정부 모두 경계할 필요가 있다.
204mk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