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승현 기자 =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 지면 보수 우파는 궤멸한다" "더 이상 지면 당이 존재할 수 있는 근간이 없다"
4·7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한 달도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기자와 만난 야권의 전·현직 중진의원들은 한 목소리로 야권 후보 단일화의 '절박함'을 쏟아냈다.
중진(重鎭), 어떤 집단이나 분야에서 지도적인 영향력을 가진 중요한 인물을 일컫는 말이다. 간혹 3선 의원도 포함되지만, 정가에서는 통상 4선 이상 의원들을 중진의원이라고 부른다. 국회의원만 16년 이상을 했다는 의미다.
'반문(반문재인)연대'의 기치 아래 순조로울 것 같던 오세훈 국민의힘 예비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예비후보 사이의 야권 최종 단일화가 파열음을 내며 야권 중진의원들의 절박함은 더 커지고 있다. '단일화 실패→선거 패배'로 이어지는 '악몽같은' 시나리오가 어른거려서 일 것이다.
오세훈·안철수 단일화가 삐걱거리는 지점은 여론조사 문구, 토론 횟수 및 방식에 대한 이견이다. 여론조사에서 "누가 야권 후보로 적합한가" 또는 "누가 박영선 후보를 이길 수 있는가"라는 이른바 적합도와 경쟁력 문구를 두고, 양측 실무협상단은 좀처럼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최근 협상장에서는 밖에서 대기 중인 기자들이 들으란 듯이 고성을 주고 받는 상황도 나왔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단일화 파열음은 오 후보의 '흥분'과 안 후보의 '불안'이 어우러지지 못하며 커졌다.
오 후보는 당초 당내 경선에서조차 나경원 후보에 뒤쳐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경선 결과 발표날 '낙선 인사문'을 준비해갔다는 후문은 그냥 웃어넘길 수 없는 대목이다. 그만큼 판세가 어두웠다. 하지만 오 후보는 여론조사에서 대역전극을 펼치며 국민의힘 공천장을 거머줬다.
이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신도시 투기 사태가 여권을 덮치며 오 후보의 지지율은 계속 우상향했다. 급기야 지난 주말을 기점으로 1대 1 가상대결에서 안 후보를 앞서 가기 시작했다. 서울시장 선거전에 뛰어든 더불어민주당의 박영선 후보, 그리고 안철수 후보와의 3자 대결에서도 1위다. 그야말로 기염을 토하는 결과다.
당연히 자신감이 붙었고, 이는 안 후보를 깎아내리며 큰 당의 뜻을 따르라는 '흥분'으로 이어졌다.
안 후보는 당초 쉽게 갈 것이라 생각했던 단일 후보의 길이 험난해지면서 불안감이 드러났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멘트는 최근의 야권 단일화 분위기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여론조사에서 기호·정당을 빼자는 건 무식한 소리다" 안 후보는 김 위원장의 이같은 발언에 "모욕적"이라고 그 답지 않은 격한 반응을 보였다.
이제 안철수 대세론이었던 당초 야권 단일화 시나리오는 180도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국민의힘이나 국민의당 모두 셈법이 복잡해졌다. 김 위원장이 연일 안 후보를 압박하는 모양새를 보이면서 양당의 어느 의원도 중재안을 제시하기 쉽지 않은 국면이기도 하다.
하지만 굽은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말이 있다. 범야권에선 산전수전 공중전을 모두 거친 중진의원들의 '관록'이 필요하다는 말이 여러 군데서 나온다. 중진들은 의원 생활만 20년 정도 한 정치인들이다. 온갖 풍상을 다 겪었고 정치권의 협상 테이블을 차릴 줄 아는 균형감각이 몸에 배였다.
특히 지금 야권의 중진의원들은 집권여당 생활도, 천막당사 경험도, 대통령 탄핵도, 전국 선거 4연패(敗)도, 참으로 처절한 경험을 겪었다. 정계개편을 주도하기도 했고, 개혁의 대상이 돼 적지 않은 고초를 겪기도 했다.
그렇기에 중진들은 대체로 한 쪽 편을 들기보다 중립적인 해법을 모색할 줄 안다.
협상의 정치, 타협의 정치가 사라졌다는 시대다. 내줄 것을 내줘야 받을 것을 받을 수 있다. 이른바 기브앤테이크다. "정권교체가 국민의 목소리"라고, "야권 단일화에 대한 시민의 열망이 크다"고 야당 정치인들이 당당하게 외치려면 그에 합당한 협상을 해야 한다.
확실히 '물밑 조율'을 좋아하는 중진들이지만, 지금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 흥분과 불안 상태에 있는 후보들의 이해관계를 묶고 엮어서 단일화를 이루도록 돕는 중재자가 아쉬운 야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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