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거리두기 한 스웨덴, 재확산 심하지 않아
집단 면역 달성 못했다...12만명 조사 양성률 1.2%
[서울=뉴스핌] 김선미 기자 = 유럽 내 코로나19(COVID-19) 재확산세가 3월 말~4월 중순 정점 수준을 넘어선 반면, 다른 유럽국과 달리 자발적 거리두기에 의존했던 스웨덴의 일일 확진자가 최저 수준을 기록해 이른바 '집단 면역'에 대한 관심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하지만 집단 면역이라는 개념 자체가 현재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상황에서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과 함께 스웨덴은 집단 면역과는 거리가 멀고 방역에 성공했다고 판단하기에도 아직 이르다는 경계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스톡홀름 로이터=뉴스핌] 김선미 기자 = 유럽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빠르게 확산되는 가운데 스웨덴 스톡홀름 중심가에 위치한 쇼핑몰에서 쇼핑객들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2020.03.17 TT News Agency/Fredrik Sandberg via REUTERS gong@newspim.com |
◆ 자발적 거리두기 의존한 스웨덴, 1차 급확산 후 재확산 심하지 않아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스웨덴 일일 확진자 수는 6월 1000명을 넘다가 8월 들어 200명대로 내려간 후 9월 첫 주 평균이 108명까지 떨어졌다. 현재 스페인과 프랑스, 영국, 독일 등에서 매일 수천명의 확진자가 발생하는 것과 비교하면 재확산세가 심하지 않은 것.
유럽질병예방통제센터(ECDC)에 따르면, 최근 2주 간 스웨덴 인구 10만명 당 신규 확진자는 30.4명이다. 유럽에서 가장 높은 편에 속하는 스페인(281.6명), 프랑스(162.8명), 체코(129.4명)에 비해 현저히 낮고, 북유럽 이웃국인 덴마크(52.4)보다도 양호하다.
안데르스 텡넬 스웨덴 공공보건청장은 "다른 유럽국과 달리 스웨덴에서는 재확산이 발생하지 않고 있다"며 "봉쇄 등 극단적 조치 대신 지속 가능한 방역 정책의 성과"라고 설명했다.
스웨덴은 다른 유럽국과 달리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대대적 제한 조치 대신 개인의 책임과 자발적 거리두기를 강조하며 학교와 요식업체, 체육시설 등을 대부분 그대로 운영토록 했다.
코로나19 1차 확산이 정점에 이르렀을 시기 사망자가 급증할 때에도 스웨덴 정부는 마스크 착용조차 장려하지 않았다. 당시 텡넬 청장은 "마스크 착용이 코로나19 전염을 확실히 막아줄 것이라 믿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며 "마스크만 쓰면 붐비는 버스나 쇼핑몰에 있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실수"라고 말했다.
공식 전략은 아니지만 자연적으로 집단 면역을 달성해 코로나19를 통제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됐으나, 스웨덴 정부는 집단 면역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무기한 유지할 수 없는 봉쇄 대신 지속 가능한 대책을 선택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당시 이처럼 느슨한 대처로 인해 스웨덴 확진자와 사망자는 급격히 증가했다. 지난 7월 초만 해도 인구 100만명당 사망자 수가 미국보다 40% 많고, 북유럽 이웃국 노르웨이·핀란드·덴마크보다는 각각 12배, 7배, 6배 많았다.
하지만 8월부터 여름철 휴가를 맞아 유럽 전역에서 재확산이 시작된 이후에는 상황이 역전돼 스웨덴은 반대로 일일 확진자 수가 줄고 있다.
◆ 스웨덴 집단 면역 달성 못했다
이 가운데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신임 보건 자문역이 집단면역을 추구하고 있어 보건 전문가들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11일에 임명한 백악관 코로나19(COVID-19) 대응 태스크포스(TF) 의료정책 자문, 스콧 아틀라스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미국도 '스웨덴식 집단면역론'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스웨덴에서는 집단 면역이 전혀 현실화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집단 면역이란 총 인구의 50~75%가 면역력을 갖춰 감염병이 더 이상 확산되지 않는 상태를 뜻하는데, 스웨덴 정부 발표에 의하면 인구 12만명 대상 조사 결과 양성 비율이 1.2%에 불과했다.
지난 5월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64세 인구 중 6.7%, 19세 미만 인구 중 4.7%, 65세 이상 인구 중 2.7%만이 항체 양성 결과를 보였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바이러스 학자 레나 아인혼은 "스웨덴 항체 검사 결과가 집단 면역과는 거리가 있다"고 전했다.
또한 스웨덴은 자유 방임 조치로 많은 인명 피해를 자초했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지금까지 발생한 5800여명의 사망자 중 70세 이상이 90%를 차지한 만큼 취약한 인구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스웨덴식 집단 면역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건강한 사람들 사이 바이러스가 확산되도록 방치하는 대신 고령자와 기저질환자 등 취약한 인구를 보호한다는 전략이지만 스웨덴은 이에 실패했다는 설명이다.
또한 스웨덴이 다른 유럽국보다 방역을 느슨히 했다는 평가도 정확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스콧 고틀립 전 미국 식품의약국(FDA) 국장은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문에서 스웨덴 시민 상당수가 젊은층조차 외부 활동을 삼가고 자택 격리를 택했다고 설명했다.
FT도 지난 8월 스웨덴의 방역 지침이 프랑스나 오스트리아, 노르웨이보다 더욱 엄격하다고 보도한 바 있다. 봉쇄나 휴교령 등 대대적 조치만 없었을 뿐이지 사실상 엄격한 거리두기가 유지되고 있었다는 지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스웨덴 방역이 성공했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팬데믹이 올해 내내 진행되고 있는 만큼 한두 달 사이 확진자 추이로 방역 성공을 논하기에는 이르다는 것이다.
볼프강 뮌차우 FT 칼럼니스트는 "코로나19는 현재 진행 중인 팬데믹"이라며 "관련 통계가 모두 완전히 분석되기 전까지는 어떠한 방식의 방역이 성공을 거뒀다고 평가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 집단 면역 개념 자체가 모호
미국 시사지 애틀랜틱의 에디터인 제임스 햄블린 박사는 집단 면역이라는 개념 자체를 현재 팬데믹 상황에 적용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집단 면역은 백신 접종 계획을 세울 때 사용하는 것으로 현존하는 백신이 없는 지금의 팬데믹 상황에서는 의미 없는 개념"이라고 지적했다.
다시 말해 집단 면역이란 백신이 있는 상태에서 전체 인구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수의 인구에 백신을 접종해야 하느냐를 결정할 때 사용하는 개념이라는 뜻이다.
당초 집단 면역은 1920년대 수학자들이 만들어 낸 미분 방정식에 기반한 개념으로, 인구를 면역자와 비면역자 두 그룹으로 나눠 비면역자는 반드시 감염돼야 면역이 된다는 그야말로 근거 없는 가설에 지나지 않는다는 설명도 제기되고 있다.
한편 고틀립 전 국장은 무증상 감염자 인구를 과대평가해 이미 상당수 인구가 코로나19에 면역을 갖췄다고 믿는 것은 큰 오류라고 지적했다.
그는 항체 검사에서는 인구의 50%가 T세포라는 면역세포를 갖춘 것으로 나올 수 있지만, 이는 다른 계절성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후 생긴 면역력일 가능성이 높지만 코로나19 면역으로 오인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go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