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광주서 보수정당 대표 최초로 무릎 꿇어
"5·18 사과는 혁신의 시작…국민소통정당 거듭날 것"
대구서는 박근혜 작심 비판…"당선 후 약속 안 지켜"
[서울=뉴스핌] 김태훈 기자 =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대구와 광주를 연이어 오가며 기존 보수정당 대표들과는 다른 행보를 보여 주목받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9일 광주 5·18 민주묘지를 참배했다. 당시 김 위원장은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독일 서독 수상이었던 빌리 브란트의 행동을 연상시켰다. 반면 대구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당 쇄신 작업에 속도를 높였다.
김 위원장의 상반된 행보에 당 안팎에서도 적지 않은 파장이 일었다. 그러나 통합당 내부에선 전반적으로 쇄신에 박차를 가하는 시발점이 될 것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통합당 핵심관계자는 "광주에서 (김 위원장이) 무릎을 끓고 눈물을 흘리며 사과할 줄은 정말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며 "뒤에 서있던 김선동 사무총장 등 당직자들도 놀라는 모습이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즉흥적이라기보다 (김 위원장이) 사전에 결심하고 행동으로 옮긴 것 같다"며 "어찌됐든 탄핵으로 보수정당의 쇠퇴를 불러온 박 전 대통령과 명확하게 선을 긋고, 정치적 불모지인 호남과는 관계 회복을 모색하겠다는 강한 의지 아니겠느냐"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최근 지지율 상승의 기세를 몰아 김 위원장이 5·18 민주화운동 사과를 시작으로 당 혁신 작업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광주=뉴스핌] 전경훈 기자 =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9일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2020.08.19 kh10890@newspim.com |
◆ 광주서 무릎 꿇은 김종인, 빌리 브란트 연상시켜…"5·18 사과는 혁신의 시작"
김종인 비대위원장을 비롯한 통합당 지도부는 지난 19일 5·18 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했다. 김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다. 보수정당 대표가 5·18 묘역에서 무릎을 꿇은 것은 헌정사에서 처음이다.
당 고위관계자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동서독 화합의 기틀을 마련한 서독 빌리 브란트 총리가 연상됐다"며 "수행했던 주요 당직자들 조차 김 위원장이 갑자기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릴 줄은 아무도 몰랐다"고 전했다.
당 지도부의 핵심관계자는 "당직자들이 미리 짜맞춘 듯 모두 무릎을 끓었다면 진정성이 느껴졌겠느냐. 김 위원장이 홀로 진정성 있는 사과를 했기 떄문에, 더욱 더 큰 울림이 있는 것 아니겠느냐"면서 "가슴 아픈 역사에 무릎을 끓고 사과함으로써 더 이상 적대적인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보이고 싶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통합당에 따르면 이날 김 위원장의 행동은 서독의 빌리 브란트 수상을 연상케 했다.
지난 1970년 12월 7일 서독 수상이었던 빌리 브란트는 폴란드 바르샤바의 유대인 추모지를 방문했다. 브란트 수상은 당시 헌화를 하는 도중 무릎을 꿇고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사죄하는 모습을 연출한 바 있다. 광주 5·18 민주묘지에서의 김 위원장의 행동이 빌리 브란트를 연상시켰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20일 당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어제 광주에서 보여드린 모습은 역사의 매듭을 풀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시작에 불과하다"고 방점을 찍었다.
김 위원장은 특히 "낡은 이념간의 대립은 발가락에 박힌 가시와 같아 미래로 향한 여정에 대한 걸림돌이라고 생각한다. 부족하고 모자라지만 과거를 인정하고 반성의 모습을 보일 때 얼키고 설킨 실타래를 풀어나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러면서 "신뢰를 되찾기 위해 행동으로 실천할 것"이라며 "시대정신에 부응하고 국민소통정당으로 거듭날 것을 다시 한 번 약속드린다"고 힘줘 말했다.
당내 평가도 대체로 긍정적이다. 장제원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고(故) 김영삼 대통령께서 '역사 바로세우기'를 통해 계승하고자 했던 5·18 정신이 그동안 당의 몇몇 인사들에 의해 훼손돼 있던 것이 사실"이라며 "만사지탄(晩時之歎, 시기가 늦어 기회를 놓친 것이 원통함)이지만 다행"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조수진 통합당 의원 역시 "역시 김종인, 김종인답다고 생각한다"며 "80이 넘은 노정객이 무릎을 꿇는데 백 마디 말이 무슨 필요가 있나"라고 지지했다.
[서울=뉴스핌] 국회사진취재단 =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1주기 추도식이 지난 18일 국립서울현충원 김 전 대통령 묘역에서 열렸다. 추도식에 참석한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이 함세웅 신부의 청으로 추도사를 하고 있다. 2020.08.18 photo@newspim.com |
◆ 대구 찾아 박근혜 전 대통령 비판한 김종인…무소속 의원 복당도 미뤄
김 위원장은 지난 18일 보수 정당 텃밭인 대구를 찾았다. 그는 이날 대구시당에서 연 지방의회 의원 온라인 연수 강연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김 위원장은 "박 전 대통령은 2012년 대통령 선거 당시 국미에게 한 약속을 당선된 후 글자 하나 남기지 않고 지우는 우를 범했다"며 "그렇게 시작한 정권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왜 우리가 탄핵이라는 사태를 맞이하게 됐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며 "결과적으로 탄핵 받고 난 다음에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라고 비판했다.
김 위원장은 취임 이후 통합당이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이 징역형을 받은 것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그는 지난 15일 광복절을 맞이해 박 전 대통령의 사면을 요청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을 단호하게 묵살하기도 했다.
그는 무소속 의원들 간의 복당 문제에 대해서도 "당이 수습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는 지금 거론할 상황이 아니라고 본다"며 "당이 정상화 되면 더이상 머무를 이유가 없기 때문에 그 사안은 다음 분이 알아서 처리를 하면 된다"고 말했다. 사실상 임기 동안 무소속 의원들의 복당을 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이는 홍준표 무소속 의원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홍 의원은 자강론을 강조하며 김 위원장의 취임을 반대해왔다. 김 위원장 취임 이후에도 각종 비판을 쏟아내며 각을 세워왔다.
통합당 핵심 관계자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김 위원장이 무소속 의원들의 복당 문제를 신경쓰지 않는 것은 사실상 홍준표 의원과의 관계 때문"이라며 "당 지지율이 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극우로 분류되는 홍 의원이 입당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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